brunch

상트페테르부르크 : 거대한 성당과 한국의 아픈 흔적

화려한 성당과 깊은 역사, 그리고 한국의 아픈 기억이 남아 있는 곳

by 타이준

화려한 성당과 깊은 역사, 그리고 한국의 아픈 기억이 남아 있는 곳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문화와 종교가 집약된 도시입니다.


러시아 정교회의 위엄을 보여주는 거대한 성당들, 유럽과 러시아 건축 양식이 절묘하게 섞인 건축물들, 그리고 한국 역사와도 연관이 있는 장소까지.


이 도시를 걷다 보면 각 시대의 중요한 순간이 새겨진 공간들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러시아 정교회의 상징적인 성당들과 한국의 아픈 역사가 남아 있는 곳들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성 이삭 성당 – 황금빛 돔이 빛나는 거대한 성당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어디에서든 눈에 띄는 건물이 있습니다.


바로 성 이삭 성당(Исаакиевский собор)입니다.


이 성당은 러시아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정교회 성당 중 하나로, 돔을 덮고 있는 100kg 이상의 순금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프랑스 출신 건축가 몽페랑이 설계했으며, 완성되기까지 무려 40년이 걸린 대규모 프로젝트였습니다.

IMG_20180131_125308.jpg?type=w1

황금빛 돔과 거대한 기둥들, 그리고 내부의 웅장한 성화까지.


러시아 제국의 막강한 권위를 보여주기 위한 건축물이라는 것이 단번에 느껴졌습니다.


특히, 이 성당은 러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러시아 군이 이곳에서 승리를 기원하며 기도했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종교 활동이 금지되면서 박물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소련 시절에는 돔 위에 독일 폭격기의 방향을 탐지하는 실험 장비가지 설치 된 적도 있습니다.


현재는 다시 정교회 성당으로 복구되었지만, 과거 러시아의 정치적 격변을 함께해 온 역사의 산증인 같은 장소였습니다.


카잔 성당 – 전쟁과 신앙, 그리고 러시아의 승리


성 이삭 성당이 황제와 권력을 상징한다면, 카잔 성당(Казанский собор)은 국민과 군대의 신앙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IMG_20180131_140352.jpg?type=w1
IMG_20180131_140852.jpg?type=w1
IMG_20180131_140752.jpg?type=w1

이곳은 19세기 초 러시아가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를 격파한 역사적인 순간과 관련이 깊습니다.


당시 러시아군을 이끌었던 쿠투조프 장군은 전쟁에 나서기 전, 이 성당에서 카잔의 성모에게 승리를 기원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IMG_20180131_141121.jpg?type=w1

그리고 실제로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는 다시 이곳에 돌아와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해 카잔 성당 앞에는 쿠투조프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성당의 건축 양식도 독특합니다. 러시아 정교회의 전통적인 둥근 돔이 아니라,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기둥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의 신앙과 서구식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종교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피의 구원 성당 – 화려한 외관과 비극적인 역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화려한 성당을 꼽으라면, 단연 피의 구원 성당일 것입니다.

IMG_20180131_142041.jpg?type=w1

이 성당은 모스크바의 바실리 성당과 닮은 러시아 정교회 전통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붉은 벽돌과 다채로운 색상의 둥근 돔이 조화를 이루며, 외관만으로도 러시아 정교회의 웅장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이 성당에는 비극적인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1881년, 이곳에서 알렉산드르 2세 황제가 암살당했습니다.


그를 기리기 위해 아들이었던 알렉산드르 3세가 성당을 짓기 시작했고, 그 결과 "피의 구원 성당"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구 대한제국 주러 공사관 터 – 한국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하면서 뜻밖에도 한국과 깊은 연관이 있는 장소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IMG_20180131_101735.jpg?type=w1

바로 구 대한제국 주러 공사관 터입니다. 1902년, 대한제국은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이곳에 공식적인 외교 공관을 설립했습니다.


당시 이곳에서 활동했던 외교관 이범진 공사는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박탈당하자, 끝까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러시아에서 일본의 침략을 알리는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1910년, 대한제국이 강제 병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범진 공사는 자결을 선택하며 순국했습니다.

IMG_20180131_101816.jpg?type=w1

현재 이 공사관 건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자리에 한글과 러시아어로 된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에 서서,멀리 러시아 땅에서 대한제국의 마지막을 지켜보던 외교관들의 심정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문화와 역사, 그리고 한국의 흔적을 따라 걷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각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심지어 한국의 역사도 느낄 수 있는 역사의 도시였습니다.


황금빛 돔의 성 이삭 성당에서 러시아 제국의 권위를 느끼고, 카잔 성당에서 전쟁과 신앙이 연결된 순간을 마주하며, 피의 구원 성당에서 러시아 황제의 암살과 정치적 변화를 생각하고, 구 대한제국 주러 공사관 터에서 한국의 아픈 역사를 되새겼습니다.


이곳을 걸으며, 도시 안에 담긴 의미와 역사를 함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러시아 문학의 신 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