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작가의 마지막 흔적,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에서 본 진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흔히 ‘문화 예술의 도시’라고 불립니다. 과거 제정 러시아 시대까지 오랜 세월 수도였고 러시아의 수많은 문호와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명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그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박물관의 첫 번째 섹션에서는 도스토옙스키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가 태어난 배경부터 유년 시절, 문학적 성장 과정, 유배 생활, 그리고 그의 주요 작품들이 탄생한 과정까지,
작가로서의 도스토옙스키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유리 칸막이 너머 전시된 원고와 편지, 초판본들은 LED 조명 아래에서 더욱 강조되어 보였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바로 데드마스크(사망 직후 얼굴 본을 뜬 것)였습니다.
그의 생애를 따라 전시를 관람한 후,그의 마지막 순간이 담긴 이 마스크를 마주하는 것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또한, 도스토옙스키가 살아온 시대적 배경과 그가 겪었던 정치적 박해와 유배 생활에 대한 기록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청년 시절 반체제 운동에 연루되어 시베리아로 유배되었고, 그 경험이 이후 그의 문학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를 살린 여자, 안나
나머지 한쪽에는 그가 마지막까지 살았던 집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오랜 가난에서 벗어나 안정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그의 두 번째 아내, 안나 그레고리예브나가 있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 유배 후 첫 번째 아내와 사별한 뒤 술과 도박에 빠져 폐인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열렬한 팬이자 속기사였던 안나가 나타났습니다.그녀는 도스토옙스키에게 제안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가 초안을 작성하면, 안나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정리해 출판사에 넘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가까워졌고,당시 도스토옙스키 45세, 안나 21세의 24살의 나이 차이를 넘어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알뜰한 안나 덕분에 집안 경제 사정도 나아졌고, 도스토옙스키는 그녀를 위해 술과 도박을 완전히 끊었습니다.
그가 후반기에 남긴 위대한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안나의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 박물관에는 도스토옙스키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용했던 물건도 함께 보존되어 있습니다.
작가의 마지막 순간이 멈춘 공간
도스토옙스키가 마지막까지 사용하던 담배와 담뱃갑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담뱃갑 위에는 그의 딸이 남긴 글귀가 있었습니다.
"1월 28일, 사랑하는 아버지가 하늘로 갔다."
그날의 슬픔이 고스란히 담긴 듯한 문장이었습니다. 그가 글을 썼던 집필실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마지막 작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1881년 1월 28일 저녁 8시 38분, 그는 이 방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놀랍게도 그의 방에 걸려 있는 벽시계는 그 시각에서 멈춘 채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책상 위에는 그가 마지막으로 사용한 원고지가 여전히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그가 떠난 이후에도 시간이 그대로 정지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만든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으며, 그의 작품 대부분은 이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무려 20번이나 이사를 다녔다고 합니다.
그만큼 도시 곳곳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의 소설 속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시민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민들은 그를 이 도시의 일부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문학뿐만 아니라 철학, 심리학, 그리고 과학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을 찾는 의미
이곳을 방문하면서 위대한 작가의 흔적을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을 읽어본 독자라면, 이곳에서 더욱 깊은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그의 마지막 집, 그가 마지막으로 집필했던 공간, 그가 마지막으로 사용한 물건들.
이 모든 것이 도스토옙스키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이 탄생한 배경을 더욱 선명하게 이해하게 해주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을 해부한 작가."
도스토옙스키를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가 그려낸 인물들은 단순한 소설 속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하는 ‘실제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의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을 꼭 방문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