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발상지, 개혁의 황제, 그리고 그의 흔적을 따라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이 도시는 한 사람의 비전에서 시작되었고, 그 비전이 그대로 현실이 된 곳입니다.
그 인물은 러시아를 근대 국가로 이끈 개혁 군주, 표트르 대제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 자체가 "표트르의 도시"라는 뜻을 지닙니다. 그가 꿈꾸었던 개혁과 발전의 상징이 바로 이 도시에 담겨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표트르 대제가 직접 세운 도시를 걸으며 그가 남긴 유산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가로지르는 네바강 한가운데 자리한 자야치 섬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가 있습니다.
1703년, 표트르 대제는 강력한 해양 강국이었던 스웨덴과의 전쟁(대북방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곳에 요새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는 당시 서유럽과 비교하면 뒤처진 국가였습니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를 유럽의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그 시작점이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였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그는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기로 결심했고, 이 도시는 러시아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결국, 이 요새가 없었다면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새 한가운데에는 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이 있습니다. 이 성당은 표트르 대제를 비롯한 로마노프 왕조 황제들이 영면한 곳입니다.
황금빛 첨탑이 우뚝 솟아 있는 이 성당은 다른 러시아 정교회 성당과는 달리 유럽풍 바로크 양식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이는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를 유럽형 국가로 변화시키려 했던 철학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 자체가 러시아를 서유럽화하려는 그의 개혁 정신이 담긴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도시를 만든 황제들이 잠들어 있는 이곳에서, 그가 꿈꾸었던 러시아의 미래가 무엇이었는지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에서 조금만 이동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벽돌 건물 하나가 보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러시아 황제가 살았던 곳입니다.
그것도 궁전이 아닌 오두막에서.
이곳이 바로 표트르 대제가 직접 거주하며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했던 오두막집입니다. 사실 일반인의 거처라고 하면 나쁘지 않은데 황제의 집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누추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황제라면 누구나 화려한 궁전에서 생활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표트르 대제는 달랐습니다.
그는 직접 도시 건설을 관리하기 위해 이곳에서 6년 동안 머물렀습니다.
러시아의 황제이면서도 스스로 개혁을 실행한 그는 말 그대로 "행동하는 리더"였습니다.
표트르 대제는 해양 강국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당시 러시아는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길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직접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가서 조선술을 배우고, 조선소에서 일했습니다. 러시아가 유럽의 해상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력한 해군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오두막집에서 그는 직접 나룻배를 만들어 네바강을 다니며 공사를 감독했다고 합니다.
그가 꿈꿨던 해양 강국 러시아의 첫걸음이, 이 작은 오두막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한 나라의 황제가 직접 배를 만들고, 도시를 세우고, 개혁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부, 데카브리스트 광장에 서면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동상 중 하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표트르 대제의 기마상, 일명 "청동 기마상(Медный всадник)"입니다.
이 동상은 표트르 대제를 기리기 위해 여제 예카테리나 2세가 제작하도록 한 것입니다.
동상은 거대한 바위 위에 세워진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이 바위는 "천둥의 돌(Гром-камень)"이라 불리는 거대한 자연석으로, 러시아 역사상 가장 거대한 석재 운송 프로젝트를 통해 이곳까지 옮겨졌습니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를 근대화하고, 서구화를 추진했으며,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를 상징하듯 동상 속 표트르 대제는 말을 타고 손을 뻗어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반면, 그의 말발굽 아래에는 짓밟힌 뱀이 있습니다. 이는 표트르 대제의 개혁을 반대했던 구 러시아 세력을 상징합니다.
즉, 이 동상은 그가 남긴 정신과 철학을 담고 있는 하나의 상징이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한 황제의 강력한 개혁 의지와 도전 정신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이 도시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에서 시작된 도시 건설, 황제가 직접 거주하며 감독했던 오두막집, 러시아를 개혁하고 발전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긴 기마상까지.
이 모든 것이 표트르 대제라는 한 인물이 만들어낸 유산입니다.
표트르는 직접 행동하고, 개혁을 주도하고, 변화를 일으킨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러시아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졌을 것입니다.
도시를 세운 황제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개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 여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