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원효대사의 해골물 전설을 찾아서 : 평택 수도사

평택 수도사 : 깨끗하지 않은 해탈수? 원효대사의 가르침을 다시 생각하다

by 타이준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날, 수도사를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평택 포승읍을 따라 차를 몰고 가다 보면 산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시골 마을을 가로지르는 좁은 길을 따라 수도사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20240518_145706.jpg?type=w1

대개의 사찰들이 깊은 산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과는 달리, 수도사는 평범한 시골 마을을 지나 도착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주변은 한적했고, 매미 소리만이 경내의 고요함을 깨뜨리고 있었습니다. 관광객이 붐비는 사찰과는 다른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수도사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조용히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도사의 역사, 그리고 원효대사의 깨달음

20240518_145449.jpg?type=w1
20240518_145532.jpg?type=w1

수도사는 신라시대 852년, 염거 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이곳의 역사는 단순히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신라 시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섰을 때, 원효대사는 이곳의 토굴에서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유명한 ‘해골물의 전설’이 전해지는 동굴은 현재 해군기지 내부에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효대사의 수행과 깨달음을 기리는 의미에서 현재의 수도사가 다시 세워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곳이 처음부터 지금의 위치에 자리했던 것은 아닙니다.


전쟁과 화재로 인해 사찰은 여러 차례 소실되었고, 중건을 반복하며 지금의 장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수도사는 단순히 오래된 사찰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신앙과 역사 속에서 살아남아 변화를 거듭한 공간인 것입니다.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

SE-99c682a0-fe55-4985-83ee-9096f5003e73.jpg?type=w1

수도사 내부에는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이라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전설을 짧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20240518_143821.jpg?type=w1
20240518_144114.jpg?type=w1
20240518_144121.jpg?type=w1
20240518_144138.jpg?type=w1

짧은 동굴을 따라 내부로 들어가면, 당시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의 이야기가 영상으로 소개됩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당시 원효대사가 겪었던 일들과 그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구성이었습니다.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친근하게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해탈수를 만나다

20240518_145228.jpg?type=w1

사찰을 둘러본 뒤, 뒤편으로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걸어보았습니다.


잠시 걷다 보니 ‘해탈수’라는 작은 연못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곳은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었던 물을 상징하는 장소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20240518_145238.jpg?type=w1

하지만 물의 상태는 그리 깨끗하지 않았습니다.


연못 표면에는 녹조 같은 이물질이 둥둥 떠 있었고, 맑은 샘물 같은 느낌보다는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한 연못의 인상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물이 꼭 깨끗해야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원효대사가 마셨던 물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맑은 샘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는 해골 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나서야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해탈수의 모습 역시, 그 의미를 되새겨보면 그대로 충분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도사에서 얻은 깨달음

20240518_143300.jpg?type=w1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도착한 수도사,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원효대사의 흔적.


직접 그의 전설이 깃든 동굴을 볼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웠지만, 수도사의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한여름의 더위도 잠시 잊을 만큼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사찰을 떠나기 전, 다시 한 번 원효대사의 말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곳에서 보낸 여름날의 기억처럼, 우리의 마음도 조용하고 평온하게 머물 수 있기를 바라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련 록의 전설, 고려인 뮤지션 빅토르 최의 공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