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여인들이 지어낸 사치의 극치, 푸쉬킨의 예카테리나 궁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남쪽으로 약 25km 떨어진 푸쉬킨 시(옛 짜르스코예 셀로). 이곳에는 러시아 황제들의 화려한 궁전, 예카테리나 궁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푸쉬킨 시는 원래 “황제의 마을”이라는 뜻의 짜르스코예 셀로(Царское Село)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쉬킨이 이곳에서 집필 활동을 했던 인연으로, 소련 시절 그의 이름을 따 현재의 푸쉬킨 시로 바뀌었습니다.
예카테리나 궁전은 러시아제국 최초의 여황제 예카테리나 1세가 건립을 명령한 궁전으로, 이후 러시아 황실의 거처로 사용되며 여러 차례 개조를 거쳤습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격으로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모습은 전후 복원된 것입니다.
지금도 궁전 곳곳에서는 복원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아침 일찍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예카테리나 궁전으로 가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지만, 저는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지하철 2호선 종점인 쿠프치노(Купчино) 역에서 내려, 출구를 나서면 푸쉬킨 시로 향하는 버스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버스에 ‘푸쉬킨·파블롭스크(Пушкин·Павловск)’라고 적힌 차량을 찾으면 됩니다. 근처에서 기사들이 "푸쉬킨! 파블롭스크!"라고 외치며 손짓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한 버스를 골라 탑승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심을 벗어나자, 주변 풍경이 점점 달라졌습니다. 높은 건물들이 사라지고,
넓은 들판과 작은 마을들이 창밖으로 스쳐 지나갔습니다.
버스에서 내릴 곳을 몰라 기사 아저씨께 "예카테리나 궁전에서 내리려면 어디에서 하차해야 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러시아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기사에게 목적지를 미리 말해두면, 도착할 때 친절하게 알려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러시아어를 모른다면 지도나 미리 적어논 글을 보여줘도 쉽게 이해 가능합니다.
정류장에서 내려 몇 분 걸으니,멀리서 푸른색과 흰색으로 장식된 궁전이 보였습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입구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중 상당수는 단체 관광을 온 중국인들이었습니다. 궁전 입구에서 표를 구매한 후, 줄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카테리나 궁전의 역사는 예카테리나 1세(Екатерина I)에서 시작됩니다.
그녀는 원래 지방 출신의 평범한 여성이었지만, 뛰어난 미모로 귀족 사회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초상화를 보면 그렇다 생각은 안들지만 젊을때는 미모가 뛰어난걸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이후 당시 황제였던 표트르 1세(표트르 대제)의 후궁이 되어 총애를 받았고, 정식 황후로 임명되며 러시아 황실의 중심에 섰습니다.
표트르 1세가 사망한 후, 예카테리나 1세는 전처 소생의 황태자를 제치고 러시아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황태자가 반역죄로 처형 된 이후 표트르 1세의 측근과 근위대의 지지에 힘입어 여제로 등극 할 수 있었죠.
다만 그녀는 정치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문맹이었기 때문에 국정 운영은 대부분 귀족들의 손에 맡겨졌습니다.
예카테리나 1세가 황후 시절 건립을 명령한 이 궁전은, 정작 그녀가 살아 있을 때 완공되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딸이자 러시아 여제였던 엘리자베타(Елизавета Петровна) 시기에야 완공되었고, 이후 예카테리나 2세(예카테리나 대제)가 대대적인 개조를 거쳐 지금과 같은 웅장한 궁전으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궁전 내부로 들어서자 러시아 특유의 양식과 서유럽식 건축이 조화를 이룬 공간이 펼쳐졌습니다.
특히 벽과 천장에 아낌없이 사용된 황금빛 장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곳곳에는 러시아 황제들과 귀족들이 사용하던 식기, 의복, 가구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궁전의 대표적인 장소 중 하나인 연회장에 들어서니,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황금빛 벽면과 거대한 샹들리에가 시선을 압도했습니다. 이곳에서 황제와 귀족들이 성대한 연회를 열고, 화려한 사교문화를 즐겼다고 합니다.
궁전을 둘러보며, 이곳이 러시아 황실의 권력과 부를 과시하는 공간이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예카테리나 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공간은 바로 호박방(Янтарная комната, Amber Room)입니다. 이 방은 이름 그대로 호박(Amber)으로 만든 벽면과 장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래 프로이센(현 독일)에서 러시아 황실에 선물한 것이었지만, 이후 러시아에서 더욱 정교하게 개조하여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방으로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호박방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러시아 정부는 원본을 바탕으로 수십 년에 걸쳐 호박방을 복원했으며, 현재 관람이 가능하지만 촬영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직접 눈으로 본 호박방은, 러시아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다시 복원된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푸쉬킨 시까지의 이동이 번거롭긴 하지만 , 궁전 내부의 화려한 장식과 황실의 흔적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 중 충분히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호박방을 직접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예카테리나 궁전은 더욱 매력적인 여행지가 될 것입니다.
러시아 황제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그들이 남긴 유산을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