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고속철도 삽산 –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까지 4시간의 여정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이동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끝에, 저는 러시아의 고속철도 삽산(Сапсан)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비행기, 야간 열차, 버스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지만, 러시아 철도의 속도를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습니다.
특히 러시아가 철도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고속철도의 역사는 비교적 짧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가 생겼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약 650km.
삽산은 최고 시속 350km까지 달릴 수 있는 열차이지만, 현재 이 구간은 전용 고속선이 아니라 기존 철도망을 공유하기 때문에 시속 200~250km 정도의 속도로 운행합니다.
그래서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4시간 정도.
러시아 철도청에서는 2030년까지 소요 시간을 2시간 30분으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직접 삽산을 타고 이동한 여정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러시아에서 기차를 타고 여행하다 보면 역 이름 때문에 혼란스러운 순간이 많습니다.
특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길이라면 한 번쯤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모스크바역(Московский вокзал)’은 모스크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습니다.
반대로, 모스크바에는 ‘레닌그라드역(Ленинградский вокзал)’이 있는데, 이는 과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이름이었던 ‘레닌그라드’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즉,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스크바역’에서 출발해, 모스크바의 ‘레닌그라드역’에 도착하는 셈이죠.
그렇다면 모스크바에는 기차역이 없냐고요?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조금 복잡합니다.
모스크바에는 ‘모스크바역’이라는 이름의 역이 없고, 대신 다양한 지역을 연결하는 기차역이 9개나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몇 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레닌그라드역(Ленинградский вокзал) → 상트페테르부르크 방향
야로슬라블역(Ярославский вокзал) → 시베리아 횡단열차 출발역
카잔역(Казанский вокзал) → 카잔, 우랄, 중앙아시아 방향
벨라루스역(Белорусский вокзал) → 벨라루스, 폴란드, 유럽 방향
키예프역(Киевский вокзал) → 우크라이나, 몰도바 방향
즉, 모스크바에서는 목적지에 따라 기차역이 다르기 때문에 ‘모스크바행’이라고 해서 무조건 같은 역에 도착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러시아에서 기차 여행을 할 때는 반드시 미리 기차역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특히 러시아어가 익숙하지 않은 여행자라면, 기차표를 예약할 때 ‘출발역’과 ‘도착역’을 꼼꼼히 확인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엉뚱한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거나, 목적지가 다르다는 사실을 늦게 깨닫고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배경을 알고 나니, 제가 출발할 ‘모스크바역’이 모스크바가 아니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다는 사실이 더욱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아침 9시 출발하는 삽산(Сапсан) 열차를 타기 위해 저는 8시 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역에 도착했습니다.
초행길이라 혹시 모를 변수를 대비해 한 시간 정도 여유를 두고 움직였습니다.
역사 앞에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고, 건물 외관은 공사 중이라 어수선한 분위기였습니다.
러시아에서 장거리 기차를 탈 때는 보안 검사를 거쳐야 하므로 미리 도착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짐 검사를 마치고 대합실로 들어가, 안내 데스크에서 탑승할 플랫폼을 확인한 후 미리 가서 위치를 체크해 두었습니다.
이후 다시 대합실로 돌아와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9시 정각, 모스크바행 삽산 열차가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플랫폼으로 나가니 아까보다 눈이 더 쌓여 있었고, 날씨도 더욱 쌀쌀해진 듯했습니다.
저는 빠르게 탑승할 객차를 찾아, 객차 앞에서 대기 중이던 승무원에게 탑승권과 여권을 보여주고 열차에 올랐습니다.
러시아에서 장거리 기차를 탈 때는 탑승권과 함께 신분증(여권) 확인이 필수적입니다.
특히 외국인은 여권 없이는 기차를 탈 수 없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이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스크바역’에서 출발해, 모스크바의 ‘레닌그라드역’에 도착하는 4시간의 기차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열차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깔끔함이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이용했던 여러 교통수단 중에서 단연 가장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탄 KTX 나 일본 신칸센을 처음 탔을 때 받았던 인상과 비슷했는데, 좌석 간 공간도 충분히 넓어 장거리 이동이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제 좌석 바로 뒷편에는 짐 보관대가 있었고, 많은 승객들이 이쪽으로 몰려와 짐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옆자리가 비어 있어서 한 컷 찍어 보았는데, 사진으로 구분이 될지 모르겠지만 좌석 간 공간이 꽤 넓은 편이었습니다.
출발 후에는 좌석 앞에 비치된 안내 책자를 펼쳐 보았습니다.
러시아어뿐만 아니라 영어 안내 책자도 준비되어 있어서 관광객들도 어렵지 않게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다 보니 슬슬 배가 고파졌습니다.
아침부터 신경 쓰느라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탓인지, 점점 허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열차 내 매점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있는 객차에서 두 칸 정도 이동하니 매점 칸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콜라와 즉석 햄버거를 주문했는데, 맛은 마치 고등학교 매점에서 먹던 햄버거 같았습니다.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배가 고파서인지 나름 만족스러웠습니다. 물론 가격은 고등학교 매점보다 훨씬 비쌌지만요.
삽산 내부에서는 따뜻한 음료나 간단한 식사 메뉴를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배고픔을 참을 필요 없이 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열차 안에서 다음 일정을 고민하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러시아의 설경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역(Ленинградский вокзал)에 도착했습니다.
시간은 딱 정오를 조금 지난 시점. 상트페테르부르크보다 날씨가 한결 따뜻해 보였고, 눈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역 밖으로 나가자 며칠간 쌓인 눈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곳곳에서 사람들이 눈을 치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렇게 삽산을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까지 4시간의 여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삽산을 타고 모스크바까지 이동하면서, 러시아의 고속철도 시스템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이라 약간 긴장했지만, 실제로 이용해 보니 매우 편리하고 쾌적한 이동 수단이었습니다.
✔ 장점
좌석 간 공간이 넉넉해 장거리 이동에도 불편함이 없음
열차 내부가 깔끔하고 관리가 잘 되어 있음
기차 내 매점이 있어 간단한 식사가 가능
영어 안내 책자가 비치되어 있어 관광객도 이용하기 편리
✖ 단점
전용 고속선이 아니라 최고 속도를 내지 못하고, 소요 시간이 다소 긴 편
기차 내 음식 가격이 비싼 편
전체적으로 보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까지의 이동 수단으로 삽산은 충분히 좋은 선택지였습니다.
초행길이라 걱정을 많이 했지만, 탑승 플랫폼 확인과 승무원 안내만 따르면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에서의 고속철도 체험, 삽산은 한 번쯤 타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