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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고프 여름궁전 : 러시아 베르사유, 겨울 모습은?

황금빛 조각상은 빛나지만, 물줄기는 없다 – 겨울 페테르고프

by 타이준

겨울의 페테르고프 – 얼어붙은 분수의 궁전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남서쪽으로 약 한 시간.


이곳에는 러시아의 위대한 황제, 표트르 대제가 남긴 여름 궁전 페테르고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름궁전을 겨울에 방문한다는 것이 다소 아이러니할 수도 있지만, 이곳까지 왔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궁전의 별명은 ‘분수의 궁전’, ‘분수의 수도’.


하지만 한겨울, 이곳의 상징인 수많은 분수들은 작동을 멈춘 채 눈과 얼음에 덮여 있었습니다.


여름철이라면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며 황금빛 조각상들과 함께 빛났겠지만, 지금은 그 위를 덮은 눈이 또 다른 매력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페테르고프 가는 길 – 얼어붙은 바다말고 버스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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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고프는 유람선을 이용해 도착할 수도 있지만, 겨울에는 바다가 얼어버려 배가 운항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버스를 이용해 이동했습니다.


지하철 1호선(레드라인) 압토보(Автово) 역에서 하차한 후, 출구를 나서면 ‘Петергоф(페테르고프)’라고 적힌 버스를 볼 수 있습니다.


탑승 후,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해 두면 도착할 때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1시간쯤 지나자,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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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을 벗어나자 눈 덮인 들판과 낮은 건물들, 그리고 그 사이로 거대한 궁전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궁전 입구에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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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에 도전한 표트르 대제의 궁전


페테르고프는 표트르 대제(Пётр Великий)가 직접 설계하고 건설을 지시한 궁전입니다.


그는 서유럽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했고, 특히 프랑스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을 방문한 후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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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도 베르사유 못지않은 궁전을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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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완성된 곳이 바로 페테르고프 여름궁전입니다.


궁전과 분수, 정원을 하나로 묶어 웅장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이곳은, 여름철이면 분수와 운하를 통해 바다까지 연결되며 더욱 화려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침공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궁전은 파괴되었고, 많은 예술품과 조각상들이 약탈당했습니다. 하지만 전후 복원 작업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삼손 분수 – 얼어붙은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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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앞마당을 가로질러 삼손 분수로 향했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괴력의 전사 삼손의 가장 유명한 모습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페테르고프 분수 주에 가장 유명한 작품 입니다.


거대한 분수대 중앙, 삼손이 사자의 입을 벌리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원래라면 강한 물줄기가 나오며 삼손과 사자를 뒤덮고 있겠지만, 겨울이라 모든 것이 멈춰 있었습니다.


대신 눈과 얼음이 덮인 조각상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마치 차가운 설원에서 삼손과 사자가 얼어붙은 채 영원히 사투를 벌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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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 분수를 중심으로, 그리스·로마 신화 속 신들의 조각상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황금빛 조각상들은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물이 흐르지 않으니 다소 쓸쓸해 보이긴 했지만, 겨울만이 줄 수 있는 색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운하와 바다 – 얼어붙은 귀족들의 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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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앞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운하가 나옵니다.


이 운하는 여름철에 왕족과 귀족들이 배를 타고 핀란드만으로 나가는 항로였습니다.


한때 이곳에서 왕족들은 유유히 배를 띄우며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얼어붙어, 거대한 은색 얼음길이 바다까지 연결된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풍경을 보니, 여름철 이곳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느낌이 어떨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겨울의 페테르고프 – 여름에 다시 오고 싶은 곳


여름궁전이지만, 겨울의 페테르고프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분수는 얼어 있었고, 바다는 굳어 있었으며, 한때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상징했던 궁전은 조용히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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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왔다면 분수들이 뿜어내는 시원한 물줄기와 화려한 정원의 색감들을 감상할 수 있었겠지만, 겨울의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이곳을 바라보는 것도 나름의 운치가 있었습니다.


다만, 분수의 궁전이라 불리는 곳에서 분수가 멈춘 모습을 보고 나니,언젠가 꼭 다시 여름에 방문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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