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낙동강 전선, 다부동을 가다
9월의 끝자락, 늦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졌지만, 이곳이 한때 전쟁의 포화 속에서 수많은 생명이 스러져 간 전장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다부동 전투.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나라의 운명이 걸려 있던 최후의 방어선이었습니다.
이곳이 무너지면 대구가 함락되고, 대한민국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것입니다. 전투의 치열함 때문에 다부동 전투는 ‘동양의 베르됭’이라 불립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이 파리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베르됭 전투처럼, 국군과 유엔군 역시 마지막까지 이곳을 사수하며 절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다부동 전적지로 향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로 들어서자 웅장한 기념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비석에 새겨진 이름들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그 이름들 사이에는 전장의 기억이 흐르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적힌 이름이 전부가 아닐 것입니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병사들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묻히지 못하고, 가족조차 모르게 스러져 간 이들은 얼마나 많을까요? 그들의 희생을 떠올리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전쟁 당시의 기록을 전시한 기념관이 나왔습니다. 기념관에는 당시 사용된 무기, 낡은 군복, 녹슨 철모, 그리고 전투의 흔적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먼지 쌓인 사진 속 병사들의 얼굴은 젊었고, 결연했습니다. 이곳에서 싸운 이들이 지금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기념관 꼭대기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낙동강과 너른 들판은 참으로 평화로웠습니다. 하지만 불과 70여 년 전, 이곳을 넘어 북한군이 몰려왔고, 국군과 유엔군은 마지막까지 방어선을 사수했습니다. 빗발치는 총탄과 쏟아지는 포탄, 아비규환의 전쟁터가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다부동 전적지는 단순한 기념지가 아닙니다. 이곳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운 이들의 희생을 직접 느끼고 기억해야 하는 공간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누군가의 피와 땀 위에 세워진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역사는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역사를 기억할 때만이, 다시는 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부동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삶의 터전입니다. 하지만 그 하루하루 속에는, 70여 년 전 이곳을 지켜냈던 이들의 숨결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