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심장에서 내려다 본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에 도착하고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바로 오스탄키노 타워(Останкинская телебашня)였습니다.
다른 여행기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높은 곳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는 걸 좋아합니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기대를 안고 타워로 향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근처 정류장에서 내린 후, 타워로 걸어갔습니다.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거대한 구조물. 하지만 이곳은 관광지일 뿐만 아니라 국가 중요 시설이기 때문에 보안이 철저했습니다.
소총으로 무장한 경비가 지키고 있었고, 입장 전에는 짐검사와 신체 수색, 여권 확인까지 해야 했습니다. 러시아 여행을 할 때 여권을 항상 소지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했습니다. 가격은 무려 1000루블. 꽤 비싸다고 느꼈지만, 모스크바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겠다고 생각하며 표를 끊었습니다.
타워 입구를 따라 걷는 길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끝없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안으로 들어섰고, 지하에 옷을 맡긴 후 1층을 잠시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로 향했습니다.
엘리베이터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습니다. 불과 1분도 채 되지 않아 전망대 층에 도착. 문이 열리자, 드넓은 모스크바의 전경이 펼쳐졌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모스크바는 거대하면서도 조용했습니다. 끝없이 이어진 도로, 빼곡한 건물들, 그리고 그 위를 덮은 눈.
해가 떠 있는 동안 보는 도시의 모습은 차분했지만, 해가 질수록 서서히 다른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전망대 한쪽에는 세계의 유명한 타워들과 비교한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반가운 이름, 서울 N타워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바닥 일부가 강화유리로 되어 있는 구역이 있었습니다.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지만, 발을 디디기엔 살짝 긴장되었습니다. 높이를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전망대 아래층에는 레스토랑이 있었습니다. 저는 크바스(Квас)와 빵을 하나 사서 창가에 앉았습니다. 따뜻한 실내에서 모스크바를 내려다보며 한참을 그렇게 있었습니다. 해가 질 무렵, 도시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둠이 내리자 거리마다 불이 하나둘씩 켜졌고, 모스크바의 밤은 빛으로 가득 찼습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지도처럼 펼쳐져 있었고,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러시아 소설 《메트로 2033》에서는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모스크바에서 생존자들은 오스탄키노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왜 그런지는 소설을 읽어야 알게 되지만, 아무튼 지금 저는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현실 속의 모스크바에서 저는 도시를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 타워에서 내려왔습니다. 다시 아래에서 올려다본 오스탄키노 타워는 조명에 감싸여 있었습니다. 눈 덮인 도시 위로 우뚝 선 타워는 웅장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해 보였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소련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유산이자 여전히 모스크바를 굽어보는 존재. 저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다시 한번 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