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신부의 숨결이 깃든 곳, 도깨비의 배경이 된 성지 여행
겨울날 문득 조용한 곳을 찾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미리내 성지가 떠올랐습니다. 신앙과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곳은, 겨울의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더욱 깊이 느껴질 것 같았습니다.
성지로 가는 길은 한적했습니다. 차창 밖으로는 앙상한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하늘은 낮게 내려앉아 겨울 특유의 쓸쓸한 정취를 자아냈습니다. 눈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공기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미리내 성지에 도착하자마자 고요함이 먼저 반겨주었습니다.
이곳은 한국인 최초의 가톨릭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묘가 있는 곳으로, 천주교 박해 시절 신자들이 숨어 살던 마을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신앙을 지키며 항아리를 만들어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박해가 거셌던 시절, 천주교 신자들은 옹기장수로 위장해 전국을 떠돌며 교인들을 돌보고 선교를 했다고 하니, 신념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지 입구에서부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자, 예수의 탄생과 죽음을 형상화한 조각상들이 길을 따라 놓여 있었습니다. 바람에 살짝 몸을 움츠리면서도, 그 길을 따라 한 걸음씩 내디뎠습니다.
얼마 걷지 않아 성지의 중심부, 103위 순교 성인 기념 성당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곳은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도 유명해졌습니다. 방영이 끝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방문객들 사이에서는 "여기가 도깨비에 나왔던 곳이야"라는 대화가 오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한 촬영지가 아닙니다.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리는 성스러운 공간입니다.
드라마 속에서 지은탁이 김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부른 장소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한국 천주교의 오랜 역사가 스며 있는 곳입니다.
성당 안은 경건한 분위기가 가득했습니다. 높은 천장과 엄숙한 내부 공간이 차가운 겨울 공기와 어우러져 더욱 깊은 고요함을 만들어냈습니다.
성당을 둘러본 후 안쪽으로 더 걸어가 보았습니다. 그러자 조용한 공간 속에 자리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 성당이 나타났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그곳이 가지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이곳에는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안치된 관이 놓여 있었습니다. 관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과연 그는 어떤 마음으로 이 땅을 걸어갔을까. 박해 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킨 그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겨울의 미리내 성지는 그 이름처럼 맑고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차분했고, 바람도 소리 없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잠시 벤치에 앉아 성지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신앙의 이유든, 역사의 의미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저마다의 이유를 품고 있을 것입니다.
하늘은 맑았지만, 날이 점점 어두워 지는게 느껴졌습니다.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성지를 뒤로하고 돌아서는 길,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돌아보았습니다.
미리내 성지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그저 시간이 흐르는 장소가 아니라, 시대를 넘어 신념과 희생이 깃든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