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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사에서의 마지막 날

꼭 다시 찾아오고 싶은 오데사

by 타이준

오데사에서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오늘도 오데사의 거리를 거닐며 오데사 구석구석의 모습들을 마음속에 담아 보기로 했다. (사실 겨울철이라 해수욕장 같은 곳을 구경하기에는 어려웠으니까). 다른 곳보다 오데사를 여행하며 많이 걸었던 거 같은데 지금도 오데사를 걸어 다니던 촉감이 기억날 정도다.


장모님의 다리를 지나면서 들었던 생각


항구 뒤쪽 그리스 공원이라고 불리는 공원을 지나가며 오데사 바닷가의 풍경들을 볼 수 있다. 오데사 도시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디세우스`에서 유래한 것을 보면 이곳이 왜 그리스 공원인지 짐작이 간다. 이날도 역시 비가 조금씩 내리며 바닥은 젖어 있고 날씨가 흐렸다. 날씨가 흐리면 흐릴수록 여름철 그 아름답다는 오데사를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만 커졌다. 언제 저곳에 다시 가 볼 수 있을까?

이 다리 이름은 툐신 다리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툐신이지만 러시아어 발음으로는 `쬬신`에 가깝다) 러시아 혁명 50주년을 기념해서 지은 보행자 전용 다리이다. 툐신은(Тёщин)러시아어로 장모님을 뜻하는 단어다. 왜 이 다리가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에 대한 재미있는 설이 있다. 이 다리는 길고 좁은데 다리를 지나는 동안에 매서운 바람이 많이 분다. 그 매서운 바람이 사위를 혼내는 장모님 같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동유럽에서는 사위가 장인, 장모를 모시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한국의 고부갈등보다는 동유럽에서는 사위와 장모님의 갈등이 두드러지곤 한다. 항상 매서운 바람이 분다는 다리였지만 내가 지나다닐 때는 그런 바람이 불지 않았다. 나중에 내가 결혼하게 되면 장모님에게 그렇게 시달리지 않을 거라는 암시로 받아들이고 있다.


뭔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랑의 자물쇠'


다리를 건너면 우리나라 유명 관광지에도 많이 있는 사랑의 자물쇠를 채우는 곳이 있다. 원래는 다리에 자물쇠를 채워놨다고 하는데 다리에 자물쇠를 다 이곳으로 옮긴 뒤 하트 모양의 조형물로 만들었다. 저 자물쇠를 모두 열 수는 없었을 테니 다리 옆 난간의 철골을 새로 공사하면서 통째로 뜯어서 연결했다고 한다. 원래 저 다리에 자물쇠를 걸던 연인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저기 자물쇠를 뜯어 저쪽에 새로 만들어 두는 것이 좀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장모님의 꾸지람을 피해서 도망해 온 부부의 모습일지도 몰라 한 편으로는 재미있기도 하다.


오데사의 시작과 함께한 성당


오데사 최초의 성당 '오데사 축일 성당'이다. 이곳은 오데사 포템킨 계단 편에서 언급된 오데사의 초대시장 리셀리아의 지시로 오데사 탄생과 거의 동시에 건축된 성당이다. 프랑스인 리셀리아가 이탈리아 건축가를 초청하여 지은 성당이라고 한다. 그렇게 설명을 듣고 나서 보니 기존 동유럽 정교회의 전형적인 성당의 모습보다는 이탈리아 피렌체나 밀라노 성당의 모습과 비슷하다.

성당 광장 앞에는 나폴레옹 전쟁 시절의 러시아 제국의 장군이었던 미하일 보론소프의 동상이 있다. 보론소프는 나폴레옹 전투에 참전하여 공을 세우고 육군 원수로 진급하여 은퇴 후 이곳에서 지내다가 사망하였다. 그의 유해는 앞서 본 `오데사 축일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이것으로 오데사 여행기가 끝났다. 오데사를 다니면서 중간중간 날씨가 안 좋아서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그 또한 오데사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생각이 든다. 우크라이나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는 매우 다르다. 하지만 그 다른 문화 중에서도 유독 공감되고 우리와 비슷하다는 점이 많이 느껴져서 우크라이나 여행이 매우 특별했다. 빠른 시기에 우크라이나의 도시들 특히 가보지 못한 곳을 찾아가 보고 싶다. 다음 여행기는 우크라이나의 서부 중심지 리비우 여행기로 독자분들께 찾아가려고 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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