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지만 역사에 많은 걸 남긴 장소
주말을 맞아 가볍게 나들이할 만한 곳을 찾다가, 마침 충남 홍성이 떠올랐습니다.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이기도 하고, 예전부터 한 번쯤 홍주읍성을 직접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조선시대 충청도 4대 목 중 하나였던 홍주목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지금은 일부만 남은 성벽과 건물들을 중심으로 홍주성 역사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도착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성 안쪽에 있는 홍주성역사관이었습니다.
작은 전시관이지만, 홍성의 과거와 홍주성의 역사, 그리고 이 일대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을 잘 정리해두고 있었습니다.
이곳 성곽이 신라 말~고려 초의 토성을 기반으로 조선 초 왜구를 막기 위해 석성으로 확장되었고, 19세기 말 대대적으로 개축되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박물관을 둘러본 후에는 조양문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조양문은 현재 복원된 성문이지만, 조선시대에도 실제로 사용되던 정문이었습니다.
문을 지나면 성 안쪽으로 넓은 공터와 함께 복원된 관아 건물들이 드문드문 나타납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천주교 성지순례센터가 있습니다.
홍성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가 극심했던 지역 중 하나로, 많은 신자들이 이 일대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센터는 조용한 분위기였고, 내부에는 당시 박해의 역사와 관련 인물들, 순교자 명단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현대식 성당 건물도 함께 있어 잠시 들러보고 나왔습니다.
이제 성곽을 따라 걷기로 했습니다. 홍주성은 원래 둘레 1.7km에 달하는 큰 읍성이었지만, 지금은 남쪽 구간 약 810m 정도만 복원되어 있습니다. 성 위로 올라가면 주변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성 안팎 모두를 내려다볼 수 있는 낮은 고지대처럼 느껴집니다. 방어 목적으로 설계된 구조라는 점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지금은 공원처럼 조용하고 한산했지만, 한때 이곳에 36동 이상의 관청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고 하니
그 당시의 규모와 위상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조용하지만 많은 걸 남긴 장소
임진왜란, 이몽학의 난, 동학농민운동, 그리고 을사늑약 직후 의병의 항쟁까지 여러 격동의 순간들이 이곳에서 벌어졌습니다.
1906년에는 민종식과 이세영 등이 이끄는 홍주의병이 이 성을 거점으로 일본군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평화롭지만, 이곳은 분명 살아 있는 기록의 공간이었습니다.
걷기 좋은 크기, 이해하기 쉬운 설명, 그리고 적당히 남은 유적들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었습니다.
복잡하거나 부담스럽지 않게, 짧은 역사 산책을 하기에 딱 좋은 장소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마치 역사 교과서에서 봤던 내용들을 한 줄 한 줄 직접 밟아보는 느낌이 들었던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