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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살리고 자신은 쓰러진 사나이 : 춘천 신숭겸 묘

왕건을 살리고 죽은 신하와, 그 신하의 충절을 끝까지 기억한 왕의 마음

by 타이준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제가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문장을 온몸으로 증명한 인물이 강원도 춘천에 묻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신숭겸, 고려의 개국공신입니다.


저번에 신숭겸 장군이 전사한 대구의 전장을 소개해 드렸다면 이번에는 그가 죽어서 묻힌 곳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비 오는 날, 그의 묘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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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춘천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촉촉이 젖은 나무와 잔디 사이를 걸으며 묘역으로 오르는 길.

비 때문이었을까요, 더 깊은 고요와 함께, 문득 927년의 그날 공산전투가 상상되었습니다.


왕건의 생명을 대신해 죽음을 택한 신하의 선택.

비 내리는 풍경 속에서, 그 결연한 순간이 더욱 선명하게 그려졌습니다.



묘역을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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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북배산 자락을 따라 조용한 숲길을 오르면, 묘역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새 탁 트인 시야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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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무덤앞에 서면 춘천 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명당이라 불릴 만한 자리였습니다.


왕건이 생전에 자신의 무덤으로 아껴뒀던 터를, 결국 자신을 대신해 죽은 신하에게 내주었다는 이야기, 그 마음이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묘역에는 세 개의 봉분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가운데가 장군의 본묘, 나머지 두 개는 도굴을 막기 위한 미끼묘라는 설과 부인묘라는 설이 함께 전해집니다.



오래된 전설, 살아있는 이야기


이곳에는 몇 가지 오래된 전설이 전해집니다.


하나는 도굴을 시도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도굴을 하려고 무덤에 들어간 순간 순간 발이 꼼짝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그들은 아무것도 손대지 못하고 물러났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일제강점기, 일본군 장교가 말을 타고 이 일대를 지나가다가 말이 갑자기 멈춰버린 사건입니다.

이유를 몰라 당황하던 중, 이곳이 신숭겸 장군의 묘라는 설명을 듣고 공손히 참배를 하자 말이 다시 움직였다고 하지요.


진실 여부를 떠나, 이곳에 서린 숭고함과 존경의 정서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장절공을 기리는 공간

묘 앞에는 조선 순조 때 세워진 장절공신도비가 있습니다.

그의 충절과 죽음, 그리고 왜 이곳에 세 개의 봉분이 생겼는지를 설명한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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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절이란 무엇인가

조용히 묘 앞에 서 있으니 여러 생각이 스칩니다.

충절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자신을 인정해 준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


그것은 단순한 희생이라기보다, 자신의 신념에 대한 끝없는 충실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왕건을 살리고 죽은 신하와, 그 신하의 충절을 끝까지 기억한 왕의 마음.

그 둘의 이야기가 지금 이 땅 위에 조용히 살아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비 내리는 날의 묘역은 조용하고 묵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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