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북쪽에서 함흥냉면을 맛볼 수 있는 곳 중 하나
강원도 고성군은 휴전선에서 멀지 않은 접경 지역입니다.
분단 이전엔 이곳 역시 38선 이북, 즉 북한 영토에 속했던 땅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저는 이 지역에 위치한 ‘대성면옥’이라는 냉면집을 다녀왔습니다.
냉면이라 하면 보통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곳 대성면옥은 지리적으로 함흥과는 거리가 있지만, 대한민국 안에서는 가장 북쪽에서 함흥냉면을 맛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방송도 잡지도 주목한 오래된 식당
식당 외관은 마치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소박한 모습입니다.
대단한 간판이나 깔끔한 인테리어는 없지만, 오히려 그 점이 이 식당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진짜 노포’라는 인상을 줍니다.
이곳은 SBS <생활의 달인>에도 소개된 바 있고, 놀랍게도 해외 배낭여행자들에게 익숙한 여행 가이드북 ‘론리플래닛’에도 이름이 올라갔습니다.
지역 주민들뿐 아니라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나름대로 알려진 장소라는 얘기겠죠.
대표 메뉴인 함흥식 비빔냉면을 주문했습니다.
함흥냉면이라 하면 보통 맵고 강한 맛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대성면옥의 냉면은 생각보다 자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양념은 분명 붉지만, 맵기보다는 새콤하면서도 깔끔한 뒷맛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고기 대신 올라간 명태포.
말린 명태살이 조각져 얹혀 있었는데, 쫀득한 식감과 특유의 감칠맛이 양념과 잘 어울렸습니다.
면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분 위주의 쫄깃한 면이 아니라, 메밀 함량이 높은 담백한 면발이었습니다.
질기지 않고 부드러워서 자극적인 양념과 함께 먹기에도 부담이 없었습니다.
지도에서는 가까워 보이지만
식사를 하며 문득 ‘이 맛의 고향’인 함흥은 지금 어디쯤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지도상으로 보면 이곳 고성에서 북쪽으로 200km 남짓 올라가면 그곳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거리입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먹는 냉면 한 그릇은 단순한 지역 음식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맛에 대한 기억, 가볼 수 없는 곳에 대한 그리움,
그 모든 것이 조용히 담겨 있는 듯한 한 끼였습니다.
냉면 맛집은 전국 곳곳에 많습니다.
하지만 이곳 고성 대성면옥은 그 지리적 배경과 가게에 깃든 시간 덕분에 더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메밀면 위에 올라간 명태포, 자극적이지 않지만 깊은 양념, 그리고 38선 이북에 닿아 있는 땅에서의 식사.
누군가에겐 그냥 냉면 한 그릇일 수 있지만, 조금 특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