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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별장이 왜 여기에? 고성 화진포 김일성 별장

북한의 독재자가 남긴 그림자

by 타이준

강원도 고성, 화진포에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단순했습니다.


“김일성 별장이 왜 여기에 있지?”


그 순간, 자연스레 머릿속에 분단과 전쟁, 그리고 이 땅을 가로지른 38선의 흔적이 스쳐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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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독재자가 남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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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군은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38선 이북, 그러니까 북한 땅이었습니다.


해방 직후 이 일대는 김일성 정권의 통치 아래 있었고, 그는 화진포의 이 아름다운 해변에 자신만을 위한 별장을 지어 휴양지로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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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가 여길 ‘쉼의 장소’로 이용하던 그 시절 북한 내부에서는 반대파 숙청과 독재의 기틀이 다져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정작 김일성은 맑은 바다와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이 땅에서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휴식을 취했지만 그의 통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감시와 공포 속에 몰아넣고 있었죠.


그 자리에 지금 우리가 서 있습니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고성은 남한 지역으로 편입되었고, 한때 철거되었던 이 별장은

1995년 군 휴양소로 재건되었으며, 현재는 김일성 별장 안보전시관으로 일반 공개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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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3층 구조로 옥상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화진포 바다와 인근 해변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풍경은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역사적 맥락을 모른 채 보기엔 불편한 면이 있습니다.



김일성의 별장, 이승만의 별장, 그리고 이기붕의 별장


흥미롭게도 화진포 일대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별장, 그리고 이기붕의 별장도 함께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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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한 권력자들의 흔적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서로 마주보듯 근처에 나란히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권력자들이 남긴 흔적은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이승만이 무엇을 잘했고, 이기붕이 어떤 평가를 받든 그들은 독재통치에 반발한 국민들의 4.19 혁명으로 무너졌고 대한민국 체제 안에서 검증과 심판을 받았습니다.


반면 김일성은 그가 만든 권력구조를 물려준 뒤 죽어서까지 ‘태양절’로 기려지고 있는 세습 독재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가 머물던 이 별장을 우리가 지금 안보전시관으로 바꿔 개방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의 체제가 승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아름다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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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화진포는 정말이지 아름다운 장소였습니다.


넓게 펼쳐진 바다, 잔잔한 파도, 그리고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풍경은 잠시 전쟁과 권력의 역사를 잊게 만들 정도로 평화로웠습니다.


그 평화로움이 어쩌면 과거의 무거운 그림자와 더욱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지도 모릅니다.


돌아서며, 다시 던져보는 질문


“김일성 별장이 왜 여기에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히 위치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우리 현대사가 안고 있는 아이러니 그 자체였습니다.


남의 땅이 내 땅이 되었다는 사실, 독재자가 누렸던 풍경을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기억을 어떻게 바라보고 남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 별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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