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충주 탄금대: 가야금을 타던 우륵, 목숨바친 신립

충주 탄금대, 한 절벽 위 두 이야기 – 우륵과 신립

by 타이준

– 신라의 가야금, 임진왜란의 화살, 그리고 지금의 침묵


비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충주시내에서 차를 타고 조금 달려 도착한 이곳, 탄금대.


비에 젖은 흙냄새가 짙게 퍼져 있었고, 적막한 숲길을 걷는 내내 어디선가 오래된 시간의 냄새가 느껴졌습니다.

20250405_155800.jpg?type=w1


첫걸음, 신립 장군의 위령탑 앞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신립장군 팔천 고혼 위령탑이었습니다.

20250405_160151.jpg?type=w1

임진왜란 당시 충주 탄금대에서 팔천의 병력으로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신립 장군과 병사들의 넋을 기리는 탑입니다.


전쟁에서 진 장수는 기록에 따라 평가가 갈리기 마련이지만,


그 패전 속에서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던 결연함이 지금까지 이곳을 지키는 이유 아닐까 싶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오진 않았지만, 우중충한 날씨와 축축한 공기가 오히려 그 전투의 절박함을 상상하게 했습니다.


“그날, 이곳도 이런 비가 내렸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벽 위 작은 정자, 탄금정

20250405_161337.jpg?type=w1

위령탑에서 조금 더 걸으면 탄금정이 나옵니다.


충주의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아담한 정자입니다.


신라의 악성 우륵이 이곳에서 가야금을 탔다고 하여 ‘탄금(彈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지만,


이 정자가 더 유명해진 건 역시 신립 장군의 마지막 전투 때문입니다.

20250405_161640.jpg?type=w1

이곳 근처에는 ‘열두대’라 불리는 깎아지른 절벽이 있습니다.

20250405_161423.jpg?type=w1

전설에 따르면 신립 장군이 이 절벽을 오르내리며 활을 물에 적셔가며 싸웠고, 패전 후에는 이곳에서 투신하여 자결했다고 합니다.

20250405_161826.jpg?type=w1

강과 절벽, 그 사이에 놓인 정자.

20250405_161504.jpg?type=w1

비 내리는 날씨는 경치를 가리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런 안개 낀 풍경이 전장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듯했습니다.


오래된 절터 위에 세워진 대흥사


정자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대흥사가 있습니다.


절 자체는 1950년대에 지어진 근대사찰이지만, 그 자리는 신라시대 때부터 절터가 있던 곳으로 전해집니다.

20250405_162533.jpg?type=w1
20250405_162618.jpg?type=w1
20250405_162628.jpg?type=w1

신라의 가야금 소리가 울려 퍼졌던 탄금대의 땅 위에, 임진왜란의 절규가 스며들고, 그 위에 다시 스님의 염불이 내려앉은 셈입니다.


절 마당은 고요했고, 불상도 작고 검소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라앉는 정적이 있었습니다.


돌아나오며

탄금대는 생각보다 넓지 않았고, 유명 관광지처럼 번쩍이는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말하지 않고도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곳이었습니다.


가야금을 타던 우륵, 화살을 들고 물러서지 않았던 신립, 그리고 지금은 아무 말 없이 탑을 지키고 있는 위령비까지.


날씨가 맑았다면 더 멀리 볼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오히려 덜 보이기 때문에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탄금대.


그 이름을 다시 떠올릴 때,제 머릿속에는 풍경보다 소리가 먼저 떠오를 것 같습니다.


가야금 소리, 전장의 함성,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빗소리.





keyword
작가의 이전글커피 서열 1위라길래 가봤습니다 : 블루보틀 광화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