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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금광호수 : 시인이 사랑했던 산책길

고요한 물, 뱅글뱅글 이어진 길

by 타이준

– 박두진의 시가 머무는 호숫가를 걷다


그날은 추웠습니다.

햇살은 있었지만, 바람은 매서웠고 겨울 공기는 살을 스치는 듯 서늘했습니다.


그래도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안성 금광호수, 그 이름처럼 맑고 조용한 곳이 겨울 바람 속에서도 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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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물, 뱅글뱅글 이어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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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호수는 1965년 9월에 준공된 인공호수입니다.


V자 계곡형 수면을 따라 데크 산책로가 빙 둘러 나 있고, 호수를 감싸는 풍경은 한적하면서도 단정합니다.


전망대로 이어지는 길은 천천히 굽이쳤습니다.


겨울이라 그런지 호수에는 낚시꾼도 적었고, 산책객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공기 속의 정적과 물결의 고요를 더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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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쯤 걸었을 때, 멀리 뱅글뱅글 돌아 올라가는 전망대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그곳에 서서 바라보는 금광호수는 정말로 ‘금광(金光)’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겨울 햇살이 수면 위에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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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꾼의 호수, 산책자의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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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호수는 빙어 낚시 명소로도 유명합니다.


겨울이면 얼음을 깨고 빙어를 낚는 이들로 북적이고, 봄에는 떡붕어가, 여름엔 하류에서 다양한 어종이 잡힌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날은 그 어떤 낚싯대보다, 조용히 걸을 수 있는 길과 햇살 아래 멈추어 있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시인의 고향에서 마주한 겨울의 시


안성은 박두진 시인의 고향입니다.

자연과 햇살, 생명에 대한 시를 썼던 ‘해의 시인’.

금광호수의 겨울 햇살을 바라보다 문득 그의 시 「해」의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해야, 고운 해야.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에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보리라.”


바람은 차가웠지만, 햇살은 시처럼 고왔습니다.

그 순간, 금광호수는 단지 낚시터도, 산책로도 아닌 시 한 편이 천천히 흘러가는 장소처럼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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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 더 좋았던 풍경

그날 금광호수는 많은 것을 조용히 전해주는 장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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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겨울 바람, 멈춰 있는 얼음 위의 흔들림, 그리고 시 한 줄처럼 단정한 햇살.

박두진의 시가 태어난 이 땅에서, 그가 사랑했던 자연의 고요함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겨울의 안성 금광호수.


그날 저는 물고기를 낚지 않았지만, 대신 고요한 마음 하나를 건져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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