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 자국까지 지워서 도용했습니다” – 저작권 침해가 무너뜨린 감정
“이거, 혹시 네가 찍은 사진 아니야?”
지인이 보내준 링크를 열어본 순간, 저는 익숙한 이미지를 마주했습니다.
리투아니아의 작은 마을, 버스 창구에서 아주머니가 제게 건네준 한 장의 종이쪽지.
그것은 외국인 승객이 오면 보여주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둔 버스 시간표였습니다.
종이에는 리투아니아어와 영어로 시간과 목적지가 적혀 있었고,
몇 시에 타면 되는지 버스요금이 얼마인지 아주머니가 볼펜으로 동그라미 쳐 주셨습니다.
손때 묻은 종이, 펜으로 표시된 흔적, 그리고 창구 앞에 서서 쪽지를 건네받던 그 순간의 공기까지 모두가 하나의 풍경이자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 장면이 너무 인상 깊었고,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저는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이, 어느 블로그에서 누군가의 ‘정보 콘텐츠’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출처 표시는 없었고, 사진은 확대되어 있었으며, 볼펜으로 표시됐던 자국은 지워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마치 자신이 직접 받은 것처럼 위장된 이미지였습니다.
저는 여행을 하며 기록을 남깁니다.
예쁜 풍경도 찍지만, 무엇보다 인터넷으로는 알 수 없는 현장의 정보를 더 소중히 여깁니다.
낯선 언어로 된 안내문, 손글씨로 적힌 표지, 그리고 누군가의 손을 거쳐 온 종이 한 장.
그 쪽지 시간표도 그런 의미였습니다.
구글에도 없고, 버스 회사 웹사이트에도 올라오지 않은 작은 마을에서만 알 수 있는 실제 운행 정보.
저는 그것을 기억하고 싶었고,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블로그에 조심스럽게 올렸습니다.
나누기 위해 만든 기록이었지, 누군가에게 빼앗기기 위해 만든 건 아니었습니다.
사진이 도용된 것을 확인한 저는 즉시 저작권 침해 신고를 접수했습니다.
원본 게시물 링크, 업로드 시점, 도용 이미지와의 비교 캡처, 종이의 구김 자국과 배경까지
정리해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결정적인 단서도 있었습니다. 도용한 블로그가 제 브런치 글에 접속한 기록이 로그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사진이 게시되기 직전, 그 방문자는 분명히 제 글을 본 것입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단호했습니다. “증거 불충분으로 판단되어 게시 중단 조치를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은 제가 찍은 것이고, 정황도 충분했으며, 기록과 흔적까지 갖추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은 법적으로 ‘증명’되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작권 침해는 단지 법적 분쟁이 아니라, 창작자가 스스로의 작업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립되고 힘든 싸움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현실이라는 것을요.
그 사건 이후 저는 워터마크를 넣기 시작했습니다.
사진마다 이름을 넣고, 해상도를 일부러 낮췄습니다.
혹시 또 누군가가 무단으로 사용하더라도 “이건 제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 작업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편집 프로그램을 열고, 사진마다 워터마크의 위치를 조정하고,
이미지 구성을 다시 고민하는 일은 창작의 흐름을 계속 끊어놓았습니다.
결국 워터마크도 빼게 되었고, 그만큼 포스팅도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기억이 조금씩 희미해졌고, 제 글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많아져 예전보다 다시 열심히 기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또 누군가가 제 글을 가져가 자기 것처럼 쓰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남아 있습니다.
창작의 시작은 설렘이지만, 도용을 겪고 나면 그 설렘 위에 늘 경계심이 함께 따라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나도 누군가의 콘텐츠를 출처 없이 사용한 적은 없었을까?”
SNS에서 본 이미지, 인용구 하나, ‘다들 쓰니까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출처를 밝히지 않았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그건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기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도용은 반드시 악의를 품고 시작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대부분은 무심함에서 비롯되며, 그 무심함은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을 조용히 지워버립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의 기록과 감정이 익명의 콘텐츠로 바뀌어 떠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날의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네이버 블로그의 저작권 침해에 대한 부주의한 취급을 규탄한다’는 글을 브런치에 올렸습니다.
도난당한 사진, 명백한 정황, 그리고 피해자의 절실한 소명이 얼마나 쉽게 무시당하는지를 직접 겪고 나서, 저는 분노와 무력함을 글로 풀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경험은 단지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창작자들이 얼마나 쉽게 피해자가 되고, 또 얼마나 어렵게 그 피해를 증명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사례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말하고, 기록하고, 증명하고, 문제를 제기한다면 언젠가는 창작자가 ‘지켜진다’고 느낄 수 있는 세상이 조금은 더 가까워질 것이라 믿습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저는 계속 말할 것입니다.
“그 사진, 제가 받은 쪽지를 제가 직접 찍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