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러시아에서 에스토니아로 넘어가는 길

에스토니아에서 발트 3국 여행의 시작하다

by 타이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어느 겨울, 짧은 방학이 찾아왔습니다. 2~3주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소중한 틈을 그냥 모스크바에서 흘려보내고 싶진 않았습니다.


멀지는 않으면서도 전혀 다른 공기, 조금은 생경하고 신선한 도시. 그렇게 지도를 펴고 고개를 돌린 곳이 ‘발트 3국’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첫 행선지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출국심사, 여행의 첫 고비 모스크바 북쪽, 셰레메티예보 공항.

KakaoTalk_20250715_104008391_14.jpg?type=w1
KakaoTalk_20250715_104008391_15.jpg?type=w1

대한민국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항공기의 대부분이 도착하는 이곳에서, 저는 탈린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출국심사는 언제나 긴장됩니다. 괜한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기에, 저는 늘 단답으로만 응답하려고 하죠.


“러시아어 하세요?”

“예.”

“학생입니까?”

“예.”

“어디로 가세요?”

“탈린이요.”

“잘 다녀오세요.”

KakaoTalk_20250715_104008391_13.jpg?type=w1

이 짧은 대화 하나를 무사히 마치면, 그제야 ‘여행이 진짜 시작됐구나’ 싶은 기분이 듭니다.



통째로 나온 사과 하나

KakaoTalk_20250715_104008391_11.jpg?type=w1
KakaoTalk_20250715_104008391_12.jpg?type=w1

기내식으로 나온 건 작고 간단한 스낵. 그런데 그 안에 눈에 띄는 게 있었습니다.


껍질도, 꼭지도 달린 진짜 통사과 하나.


어떻게 먹어야 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손에 들고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한 입이 탈린 여행의 시작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줬던 기억입니다.

KakaoTalk_20250715_104008391_04.jpg?type=w1

“에스토니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시간 남짓의 짧은 비행을 마치고, 저는 탈린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유럽연합 국가답게 입국심사는 철저했지만, 질문은 간결했습니다.



“처음 방문이세요?”

“네.”

“다음에는 어디로 가세요?”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요.”

“그 다음은요?”

“모스크바로 돌아갑니다.”


입국 도장을 받는 그 순간, 마음이 툭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정말 발트에 왔구나.’ 그렇게 여행이 시작됐습니다.


공항 한가운데 전시된 대통령의 벤츠


짐을 찾으러 가던 중, 예상치 못한 풍경이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삼각별 로고가 박힌 고급 세단 한 대. 가까이 다가가 보니 벤츠 SE-300, 그리고 옆엔 작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KakaoTalk_20250715_104008391_02.jpg?type=w1

그 차량은 에스토니아의 2대 대통령 렌나르트 메리가 재임 시절 사용했던 관용차였습니다. 작가이자 영화감독 출신이기도 했던 그는 에스토니아의 독립운동 지도자로, 1990년대 초반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두 차례 임기를 지냈습니다.


이 벤츠 SE-300은 렌나르트 메리가 1993년부터 사용했던 차량으로,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이 차는 오랜 시간 동안 국방 방위대 사령관의 관용차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은 탈린 공항 한가운데 조용히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문득, 차 한 대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에스토니아라는 나라의 첫인상이, 아주 깊게 새겨졌던 순간이었습니다.



유심과 교통카드, 그리고 도시의 첫 호흡

KakaoTalk_20250715_104008391_01.jpg?type=w1
KakaoTalk_20250715_104008391_08.jpg?type=w1

짐을 찾아 나온 뒤, 공항 내 편의점에서 유심(3.5유로)과 대중교통 3일권(7유로)을 구매했습니다.


편의점 옆 통로를 따라 나가니 바로 트램 정류장이 나옵니다.


역시 ‘IT 강국’답게, 실시간 버스・트램 위치가 앱에 정확히 표시됩니다. 덕분에 초행길에도 큰 헤매임 없이 시내 숙소까지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KakaoTalk_20250715_104008391_06.jpg?type=w1
KakaoTalk_20250715_104008391_07.jpg?type=w1
KakaoTalk_20250715_104008391_05.jpg?type=w1

탈린은 모스크바와는 공기부터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차분하고, 조용하며, 마치 도시 전체가 긴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내쉬는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담백하지만 깊은 첫인상이 남은 도시.

KakaoTalk_20250715_104008391.jpg?type=w1600

앞으로 며칠간 어떤 골목을 걷게 될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가슴이 조금씩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탈린 도심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침묵의 도시,라트비아 리가를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