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 3국의 유일한 내륙 수도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를 한눈에
샤울레이의 십자가 언덕을 뒤로하고, 저는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로 향했습니다. 버스로 꼬박 세 시간이 걸리는 길이었지만,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은 묘하게 눈을 붙잡아 두었습니다. 황량한 들판 위로 얇게 내려앉은 겨울 햇살, 드문드문 서 있는 작은 마을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숲. 그 속에서 시간은 지루함보다 묵직한 사색을 안겨주었습니다.
빌뉴스에 도착했을 땐 이미 어둠이 도시를 덮고 있었습니다. 낯선 골목마다 희미한 불빛이 퍼져 있었고, 눈 내린 듯한 정적이 골목 구석에 웅크려 있었습니다. 숙소에 몸을 맡긴 뒤 여행 일정을 정리하고는 이내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전설에서 비롯된 수도의 이름
다음날 아침, 저는 언제나 하던 대로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을 먼저 찾았습니다. 멀리서 도시의 윤곽을 바라본 뒤 천천히 발길을 옮기는 것. 그것이 제 여행의 방식이자 의식 같은 습관입니다. 빌뉴스에서는 그곳이 바로 게디미나스 요새였습니다.
요새의 이름은 리투아니아의 위대한 왕, 게디미나스에서 비롯됩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왕이 이 언덕에서 사냥을 마친 뒤 꿈을 꾸었는데, 그 속에 커다란 무쇠 늑대가 울부짖는 모습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대신들은 그 꿈을 “이곳에 도시를 세우라는 신의 계시”로 해석했고, 왕은 실제로 이 언덕에 도시를 세웠습니다. 강의 이름 ‘빌니아(Vilnia)’에서 따온 이름이 오늘날의 빌뉴스가 된 것이지요.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
돌 계단을 따라 요새에 올랐을 때, 찬바람이 세차게 몰아쳐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시야는 맑게 트였습니다. 붉은 지붕들이 파도처럼 이어진 도시 풍경은 내륙 도시 특유의 단단함과 고요함을 동시에 품고 있었습니다.
아래로는 리투아니아 대공의 궁전이 보였습니다. 한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 왕국의 중심이었던 곳. 철거와 파괴로 사라졌다가, 오랜 세월을 돌아 최근 복원되어 시민 곁에 다시 서게 되었습니다.
화려함보다 복원 속에 깃든 자부심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곳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잃어버린 역사를 기어이 되찾아 세운 의지의 증거였습니다.
발트 3국의 유일한 내륙 수도
게디미나스 요새에서 내려다본 빌뉴스의 모습에서 여러가지가 보였습니다. 무너지고, 잊히고, 다시 세워진 흔적이 도시 곳곳에 새겨져 있었고, 그 속에서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지켜온 뿌리와 의지가 보였습니다.
빌뉴스는 발트 3국의 유일한 내륙 수도입니다.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오히려 그 고립이 역사를 단단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도시의 매력은 단순한 경치가 아니라, 무너진 뒤에도 다시 세우려는 기억과 고집, 바로 그 힘에서 비롯된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언덕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순간 그들의 지난 역사와 오늘을 함께 바라보는 목격자가 된 듯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