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에 저항했던 리투아니아인들의 흔적
내가 발트 3국을 여행하면서 주로 영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하였다. 내 경험상 젊은 사람들은 주로 영어를 사용하고 중장년층들은 러시아어가 유창한 것 같다. 리투아니아 아니 리투아니아뿐만 아니라 발트 3국 국가 모두 과거 소련의 가맹국이었지만 소련에 대한 감정은 그렇게 좋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을 고려하여 당시에 될 수 있으면 러시아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중장년층에서 먼저 러시아어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경우도 흔했다. 아무래도 과거 구소련 국가들에서 주로 이곳을 여행해서 중장년층에게 있어서 외국인이라면 러시아어를 할 것이라는 생각이 큰 거 같다.
리투아니아 또한 소련의 가맹국으로 50여 년간 지낸 역사가 있다. 이것은 리투아니아 정부와 국민의 자의가 아니었다. 리투아니아는 세계대전 중에 소련에 편입되어 전쟁 이후 그대로 소련 일부가 되었다. 그래서 소련 치하 리투아니아의 많은 국민이 나치 지배 못지않게 소련의 지배에 반발했다. 전쟁 이후 많은 사람이 반소련 게릴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런 역사적 이유로 현재 리투아니아 정부는 소비에트 리투아니아 시절은 국토를 불법으로 점령당한 시기로 보고 있고 정부는 공식적으로 리투아니아 민족의 최초의 국가인 리투아니아 제1 공화국의 후신임을 자처하고 있다.
시내에 있는 KGB 박물관 건물이다. 과거 소련 시절에는 이곳이 국가안보국의 건물이었다. 벽면에 수많은 이름이 적혀져 있는데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반소련 게릴라 활동을 하던 사람들의 이름이라고 한다.
박물관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된다.
박물관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나누어져 있다. 건물 지상층에 있는 박물관은 소련 치하의 리투아니아인들이 탄압당했던 역사가 전시되어 있고 지하에는 과거 소련 비밀경찰 KGB가 정치범을 감금 및 고문을 하던 지하감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이곳은 소련 치하에서 시베리아로 끌려간 사람들의 역사적인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리투아니아는 1940년부터 50여 년 동안 소련의 지배를 받았는데 소련 치하에서 대략 36만 명이 사망했거나 시베리아로 강제 추방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지상 전시실을 다 구경했으면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입구부터 뭔가 음침해 보였다.
지하에는 당시 비밀경찰 KGB가 반소련 활동을 하던 리투아니아 사람들을 탄압했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방음시설을 갖춘 고문실, 죽지 않을 정도로만 받던 음식들, 비좁은 감옥이 그 당시의 상황을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수감자들이 잠시 태양을 보고 운동하던 공간이라고 한다.
이곳은 소련의 비밀경찰들이 몰래 총살을 자행하던 처형실이다.
처형장 벽에는 아직도 총탄의 흔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KGB 요원들은 반체제 인사들을 심문하다 그들의 필요가 없어지면 이곳으로 데려와 벽에 세우고는 즉결로 처형했다고 한다. 그렇게 희생된 사람들은 시 외곽에 조용히 암매장했다. 저기 보이는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당시의 처형을 재현한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는데 이 영상과 저 총탄의 흔적이 마지막 전시물이다.
그렇게 박물관을 쭉 둘러보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조금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도 일제에 강제 점령되어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전시물들과 감옥들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