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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준 Mar 18. 2023

코르비랍 수도원과 아라라트산

아르메니아인들의 정신적 고향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나라


오늘 소개할 곳은 수도 예레반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코르비랍 수도원이다. 아르메니아는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국가다. 서기 301년에 아르메니아는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는데 오늘 갈 코르비랍 수도원은 기독교를 국교로 삼게 된 그 사연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은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의 이야기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기독교와 관련된 곳이기에 많은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 장소 중 하나라고 한다.


코르비랍 수도원 입구다.  기억에는 앞에 있는 상점들이 관광지임에도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 않았던 거 같다. 만약 기념품을 구입할 일이 있다면 이곳에서 사는 것이 좋을 거 같다.


아르메니아의 영산 아라라트


수도원 입구 들어가기 전 고개를 돌려보니 저 멀리 아라라트산이 보였다. 아라라트산은 아르메니아인들의 영산이다. 아르메니아인들은 과거 오스만제국의 대학살 때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는데 해외로 도망간 아르메니아 인들이 고국을 그리며 항상 아라라트 산을 생각했다고 한다. 성경 창세기의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이후에 아라라트 기슭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성경에 따르면 이곳은 인류가 다시 시작한 곳이 되겠다. 아르메니아인들에게는 아쉽게도 이곳은 지금 이곳은 튀르키예의 영토이다. 과거 수차례 영토 분쟁이 있었고 현재 튀르키예 공화국의 전신 오스만제국과 당시 소련의 전신이었던 러시아 제국이 맺은 조약 이후로 쭉 튀르키예의 영토로 남아있다. 비록 지금 아르메니아의 땅은 아니지만 아르메니아 국민들의 아라라트산 사랑은 각별하디. 관공서 민간 할 것 없이 아라라트산의 문양을 새겨놓은 그림들을 아르메니아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누구도 꺾지 못한 신을 향한 마음은 아르메니아를 세계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만들었다

코르비랍의 주 성전이다. 이곳을 찾은 교인들이 헌금을 하고 예배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부속성전이다. 비록 부속성전이지만 코르비랍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건물이다. 왜냐하면 이 건물은 과거 아르메니아 왕국 시절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계기가 된 곳이기 때문이다. 서기 287년 트르다트 아르메니아왕이 이곳으로 행차했는데 이곳에는 그레고리 루사보리치는 군인이 있었다. 왕은 토착 다신교를 믿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왕은 루사보리치에게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라는 명을 내렸지만 거부했다고 한다. 아르메니아 왕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루사보리치는 이 건물 지하에 있는 감옥에 뱀, 전갈, 독충과 함께 수감되었다. 무려 14년 후에 왕은 이곳을 다시 확인하였는데 루사보리치는 죽지 않고 살아있자 왕은 루사보리치가 믿는 신의 존재를 실감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아르메니아는 301년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다고 한다.

코르비랍 수도원 뒤쪽에 낮은 언덕에 십자가가 꽂혀있다.

코르비랍 수도원 앞에는 묘지가 있다.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은 죽어서 아라라트산이 보이는 곳에 묻히기를 바란다고 한다.

코르비랍 입구에 있는 아르메니아의 카츠카르가 있다. 카츠카르는 아르메니아의 응회암을 깎아 만든 조형물을 말한다. 이것은 기념비, 비석, 십자가 등으로 쓰인다. 카츠카르를 만드는 기술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을 정도로 아르메니아의 상징 중 하나이다.

한국인으로서 아르메니아에게 역사적 공감대를 느끼다


아르메니아를 여행하며 나는 한국인들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메니아와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수차례 외세의 침략과 전쟁을 겪은 복잡한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국가를 재건하고 오늘날과 같은 번영과 혁신의 사회로 변화시켰다. 아르메니아도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여러 전쟁을 거치며 그들의 나라를 지킬 수 있었고 현재 전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나는 문득 예레반 케스케이드 근처에 있는 한국인 조각가가 만든 폐타이어로 만든 사자상이 떠올랐다. 나는 여기에 한국인 조각가의 작품이 있다는 것이 결코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과 아르메니아는 지리적으로도 매우 멀리 떨어져 있고 문화적으로도 많이 다르다. 하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진 국가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문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나라 사람들의  보편적으로 인정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이거 말고도 많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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