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절대권력자의 화려한 이면에 있었던 불우한 모습
나는 스탈린 박물관의 나머지 부분을 통해 이오시프 스탈린이 권력을 장악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발견했다. 공산주의 운동가에서 소련의 막강한 지도자가 되고 허무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행적을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 보자.
공산주의 운동가로 활동하던 스탈린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바로 공산주의 운동의 거물 블라디미르 레닌을 만난 일이다. 레닌의 사상에 감명을 받은 그는 볼셰비키당에 입당하여 빠르게 승진했다. 박물관 내 전시물은 스탈린의 책략을 보여주는 중요한 순간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다른 사람보다 활동력이 대단했던 스탈린은 레닌의 신임을 받아 당 내 핵심 인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게 되었다.
그가 처음으로 부임해서 일을 한 곳은 러시아 남부의 차리친이라는 곳인데 이곳은 훗날 스탈린그라드로 불리게 된다. (현 볼고그라드)
스탈린 하면 독일 소련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한 소련의 지도자로 유명하다. 그가 전쟁 승리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는 아직도 역사학계의 논란 중 하나다. 스탈린의 지도력으로 전쟁 승리를 앞당겼다는 평가도 있지만 오히려 전쟁 승리를 방해하고 늦춘 지도자라는 평가도 있다. 어찌 되었든 스탈린이 지도자로 있는 동안 나치독일을 굴복시키고 냉전시대 세계 초 강대국에 등극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스탈린의 정치 활동 중 주목할만한 사건은 단연 얄타회담을 꼽을 수 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지금 우리 한반도 정세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얄타회담의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의 사진이 걸려있다. 얄타 회담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무렵 전쟁 이후 세계 질서에 대해서 논의한 회담이다. 소련의 일본제국을 향한 선전포고와 한반도의 38선 기준 분할점령이 논의되었던 회담이다. 이 회담이 당사자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했는지 회담 이후 스탈린과 루스벨트는 모두 오래 살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그렇게 엄청난 권력을 누리던 스탈린은 전쟁 이후 흑해 연안에 별장에서 지내다가 뇌출혈 증상으로 쓰러졌고 일주일 뒤에 사망했다. 스탈린은 생전에 암살 위협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 측근에게 조차 자신의 위치를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런 행동이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어 그가 죽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스탈린의 데스마스크 그리고 장례식의 사진을 보니 살아서 누린 권력이 덧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스탈린과 중국의 수장 마오쩌둥과 회담을 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소련과 중국은 이념으로 뭉친 끈끈한 동맹이었으나 스탈린 사후에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의견차이와 국경분쟁으로 1959년 모든 동맹 관계를 청산하고 적대관계로 돌아서게 되었다. (중소결렬)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국경에서 합동 훈련도 하고 우크라이나의 침공을 지지하는 등 중국소련 동맹 결렬 이후 어느 때보다도 끈끈한 동맹을 과시하고 있다. 역시 세상에는 영원한 적도 동료도 없다는 말이 실감 난다.
박물관의 마지막은 스탈린이 직접 일하던 집무실을 본뜬 전시실이 있었다. 절대 권력자의 집무실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았다. 부하들로부터 주요 사안을 보고 받던 전화기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담배 그리고 술잔이 놓여 있다.
무자비한 숙청의 업보인지 스탈린의 가정사는 불우했다. 그 불우한 가족사의 상징인 스탈린 두 번째 부인 나제즈다 알릴루예바의 여권이 전시되어 있다. 그녀는 레닌의 비서였는데 레닌이 사망한 후 차기 지도자에 대해 언급한 유언장을 빼돌려서 스탈린에게 알린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스탈린이 최고 권력자가 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레닌의 본래 유언장에는 스탈린을 차기 서기장으로 지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비서가 스탈린의 아내라는 것을 알았고 유언장이 중간에 조작될 거라고 레닌이 생각하지 못한 것일까? 어쨌든 나제즈다 알릴루예바는 남편이 최고 권력자가 되는데 공을 세운 사람이지만 남편에게 가차 없이 버림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스탈린의 장남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사망하고 차남은 말썽만 일으키다 스탈린 실각 이후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 막내딸은 아버지를 극도로 혐오하는 등 가족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박물관 밖으로 나오면 스탈린이 이용하던 전용 철도 객차가 있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 1호차(기차)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탈린은 비행기 공포증으로 인해 비행기를 거의 타지 않고 대부분의 출장일정을 이 기차와 함께했다고 한다. 이 객차 또한 평소에 닫혀있는데 박물관 관계자에게 열어달라 부탁해야 한다.
객차 안에는 집무실, 침실, 욕실 등이 마련되어 있는데 지금은 조금 허름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최고급 재료를 이용해서 만든 객차라고 한다.
현재 스탈린이 어떤 인물이었는가에 대한 평가는 정말 다양하다. 소련을 미국과 맞먹는 강대국으로 등극시킨 위대한 지도자 여기는 사람도 있고 (소련의 공업화, 핵무기 개발 등)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최악의 독재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스탈린은 한국과도 연관이 깊은 인물인데 우리에게는 연해주 한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시키고, 북한의 한국전쟁을 승인하고 지원하는 등 우리에게는 정말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준 인물이다.
하지만 스탈린의 고향인 고리에서의 스탈린은 조지아의 시골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불우한 시절을 보냈지만 공산진영의 수장으로 출세한 전설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