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순간 엄마가 되어 있었다.
어느순간 그토록 바라던 엄마가 되어있었다. 힘들게 엄마가 되었지만, 쉬운건 하나도 없었다.
매 순간 감사한 마음이 제일 컸고, 힘든일이 생겨도 내가 그토록 바랬는데 뭘..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아이를 원할때에는 그저 아이만 생기길 바랬었고, 아이가 생겼을땐 건강하게만 태어나길 바랬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난 후 내가 생각했던 일들은 그냥 내 머릿속의 상상일 뿐이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내가 주 양육자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있었다.
나는 출산 전 가진통으로 휴직을 빨리 시작했고, 아이를 낳고 부터 휴직한 내가 모든 걸 다 케어하게 되었다. 아이를 케어하면서 남편은 아침에 출근하기전에 퇴근해서 몇시간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작디 작은 아이가 어찌 될까 엄두도 못내던 시절이였다. 안하는 것과, 할 수 없는것은 다르기에..남편을 채근하진 않았다.
그래도 그게 얼마 못가 눈물로 퍼붓는 날이 오고 말았다. 말할 상대도 없고, 죙일 아이 우유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 갈아주고 젖병 닦고 씻기고 빨래하고, 내 루틴은 온종일 아이에게 맞춰져 있었고 내 일상은 없었다.
내가 바래서 내가 감당해야 하지만, 왜 나만 이 무게를 감당해야 하나..신랑한테 눈물로 하소연 했던 날이 하루 있었다. 신랑은 몰랐다고 했고, 내 마음을 알아주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다음날 부터는 그래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내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견딜만 했다. 그게 뭐라고 남편이 따뜻하게 해주는 말한마디, 나를 위해 하는 행동 하나하나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이쁜짓하는 아이의 모습이 무게를 견딜 힘을 주었다. 그렇게 산후우울증도 잘 넘어갔었다.
아이를 낳고 대부분 산후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여자가 온전히 견뎌야 하는 호르몬 문제 이긴 하지만, 남편이 도와준다면 쉽게 지나갈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아이가 생기는 순간 부터 뱃속에서 아이를키우는 일,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올때의 큰 고통 또한, 아내 혼자 온전히 견뎌야 아이를 만날 수 있다.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산후우울증이 온 것이 아니라, 아이를 뱃속에 품으면서 부터 시작된 호르몬의 변화로 지속되어 왔던 마음의 변화가 마무리 지으려는 순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남편이 조금은 도와줘야 잘 마무리 할 수 있는 것 같다. 크게 해줘야 하는건 없다. 그저 마음의 변화와 현재 마음을 알아주는 것. 나를 좀 인정해주고 나를 좀 돌봐주는것. 내가 온전히 나로 돌아 오는 시간을 같이 해주는것. 이것만 해줘도 마음의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여자들이 아이 낳기를 꺼려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첫번째로는 몸이 많이 망가진다. 인생최대 몸무게를 봤던 때 이기도 하다. 이 또한 아이를 낳고 내가 노력해야 빠지는 부분이다. 두번째로는 아이의 육아 문제일 것 같다. 엄마가 보통 휴직계를 제출하고 육아 하는 집이 많을 것 이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런데 복직 후, 연장반 어린이집을 구하지 못하거나, 아이가 아플때에는 방법이 없다. 그렇게 몇년을 버티다가 퇴사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분위기가 아빠는 직장생활 하는게 당연하고, 엄마는 아이를 케어 하는게 당연하지 않은가..물론 지금은 아빠가 휴직계를 제출 하고 육아하는 가정도 늘고 있긴 하지만, 일부 한정적이다. 세번째로는 아이를 키우는게 쉬운 문제는 아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나도 성장해야 하지만, 그 부분이 말처럼 쉽지 않다.
여러가지 이유가 더 있겠지만, 아이 낳기를 꺼려할 이유들은 아주 많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주는 1년간의 지원금으로 출산을 늘릴 수 있는것만은 아닌것 같다. 경제적인 지원금에만 몰두해 있는 정부의 저출산 문제를 좀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육아서적들도 많이 나오고 육아정보 등, 육아 꿀팁이라고 정보들이 넘쳐나지만 모든 정보들이 유용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단 그런 정보들을 받아들이기 이전에 내 아이의 기질을 파악해야 하고, 그 기질에 맞춰 정보를 선별 해야한다. 하지만 말이 쉽지 아이는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 정보대로 대처한다고 그대로 따라오지 않는다. 그 방법을 쓰기 까지 우리 아이에게 맞는 방식으로 변화를 주어야한다. 아이에게 적용하기 까지 엄청 많은 생각과 방법들을 시뮬레이션 해본다. 한두가지 말고 여러가지로 생각을 해둔 뒤, 그 상황이 오면 연습한 그대로 적용을 해본다. 그중 하나라도 적용이 됐다면 성공한 것 이다.
나는 육아를 하면서 왜 아이의 모습이 엄마의 성적표 같아보일까..
왜 그런 마음이 들까 자꾸 생각해보면, 잘 하는것에 맞춰진 내 생각 때문인것 같다. 육아도 잘 해야지. 내 아이는 잘 키워야지. 잘 키워진 아이들에 목표를 설정하고, 그렇게 키우지 못한다면 내 잘못 아닐까? 하는 나 스스로의 자책들 때문이라고 생각헸다.
그런데 그런 고민들로 한참 괴로운 생각이 들때쯤 들었던 생각이 있다. 잘 키운 아이는 어떤 아이인데? 아이가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은 뭐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아이를 키울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내가 세우는것 아닌가? 왜 남들 눈을 의식하고 그 기준을 생각할까? 그 이유는, 엄마들이 모이면 내 아이는 어떻고 몇살인데 벌써 영어를 잘 하더라, 학교들어가기 전까지 뭘 해줘야 한다더라..하는 카더라를 많이 들어서 인지..그리고 아이가 잘못하면 그집 엄마는 뭐했길래..라는 얘기들을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남들시선을 좀 신경 썼던 것 같다.
내 아이가 다섯살이 된 지금 난 깨달았다. 그동안 수없이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이유, 수없이 육아에 대한 고민을 했던 이유는 남들 시선을 의식했다는 것을. 내가 성장했던 환경이 그랬었다. 비교하는 삶이였고, 경쟁하는 삶이였다. 초등학교 부터 대학교까지 늘 그런 환경에 노출 되어져 왔고, 그런 시대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고 느끼면서 은연중에 느꼈던 생각들이 불쑥불쑥 나를 힘들게 했던것 같고, 혼란스럽게도 해서 이런 고민들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럴때마다 남편과 대화를 했었던 것 같다. 나는 남들눈을 의식하는 순간이 오면 남편과 상의를 했고, 남편은 그 마음을 눌러 주었다. 잘못된건 아니지만, 그럴필요 없다고 얘기 해줬고, 아이를 키우고 싶은 방향은 어떤지 내가 어떤 육아방식을 시도 하면 좋을지 얘기 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너무 마음이 가벼워지는 순간이였다. 엄마 혼자 온전히 감당해내야 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하고, 엄마와 아빠가 공동으로 해야 하는 고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아빠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아빠와 같이하는 육아는 아이도 많이 달라지게 했다. 엄마랑만 하던 일들을 아빠와 하면서 아이의 감정 변화도 생겼고, 온전히 엄마만을 찾던 아이가 아빠를 찾으면서 나에게도 조금은 여유가 생겼고, 아빠와 엄마의 역할을 잘 나눠서 아이에게 좋은 영양분이 되는 거 같아 너무 좋았다. 아직 갈길이 멀지만, 또 한명의 아이를 품고 있지만, 이정도의 무게라면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어리석었던 나를 돌아보니 엄마라는 이름표의 무게를 조금씩 가볍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라는 이름표가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또 남편과 대화를 통해서 아빠와의 역할로 나뉘어 육아를 할 것이고, 내가 겪었던 환경 처럼 남들 시선을 의식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이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주는 행복은 그 어떤걸로 바꿀 수 없고, 무게감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지금은 무게감이 덜 해서 이런 생각이 드는것 같다. 아이를 보며 행복했던 순간들을 추억하고, 지금 또한 아이가 주는 행복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어쩌면 그 무게는 엄마가 만들어낸 무게라는 생각과 그 무게를 덜어내는 것 또한, 엄마라고 생각한다. 엄마라는 이름표가 무겁게 느껴진다면 무게를 덜어내는 연습을 해봤으면 한다.
육아하는 엄마들의 무게가 좀 가벼워 지길 바래본다. 행복하기만한 육아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