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나의 어머니, 나의 거울 : 세대 간 양육의 차이와 그 이유
나는 1985년생이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1990년대는, 지금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는 2025년과는 너무도 다른 시대였다.
그 시절 우리 엄마는, 세 아이를 키우며 거의 혼자 육아의 모든 걸 감당했다.
아버지는 바깥일에 늘 바빴고, 엄마는 육아와 살림, 가족 전체를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도움은커녕, ‘엄마니까 당연한 일’이라는 시선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육아는 ‘살아내는 일’에 가까웠다.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버텨내는 것. 무언가를 ‘잘 해내는 것’보다, ‘놓치지 않고 해내는 것’이 중요했다. 반면 지금의 육아는 다르다. 나는 지금,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실시간으로 검색하고, SNS를 통해 다른 엄마들의 양육 방식을 참고하며, 아이의 감정과 발달 단계를 공부하고, 심지어는 ‘부모 교육’까지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엄마의 육아는 몸으로 하는 육아였다면, 지금의 육아는 마음과 정보로 하는 육아에 더 가깝다.
예전에는 “그냥 엄마 말 들어”라는 말이 가장 빠르고 쉬운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왜 그렇게 느꼈을까?”, “그게 네 마음이구나”라고 말하려고 노력한다.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 아이의 의견을 듣는 것, 아이와 ‘관계’를 만드는 것이 지금의 육아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부모의 생각만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는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돌봄은 온전히 엄마 몫이었고, 사회의 관심도, 제도적 지원도 거의 없었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보다, 남에게 피해 안 주는 아이로 만드는 것이 먼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함께 키우는 사회, 부모의 정신 건강도 중요한 가치, 육아휴직과 공동육아, 그리고 ‘아이의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진 시대다. 과거와 달라진 건 정보의 양뿐만이 아니다.
사회적 기대, 부모의 역할, 가정 내의 관계 구조까지 달라졌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와 같은 방식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고, 같은 말투, 같은 기준으로는 아이의 마음을 다 들여다볼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엄마는 그 시대에 가능한 방식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해 우리를 키웠다. 엄마의 방식은 그 시대엔 ‘최선’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의 방식 또한 이 시대가 만들어낸 ‘최선’의 모습일 것이다. 나는 가끔 엄마와 양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너무 다르다는 걸 실감할 때가 있다. 엄마는 “그렇게까지 아이 눈치를 봐야 하니?” 하고 묻고, 나는 “이제는 그렇게 해야 아이가 자기 마음을 말할 수 있어”라고 답한다. 그 대화 속에는 오해도 있고, 섭섭함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서로를 이해해 보려는 노력도 있다. 나는 안다. 엄마도 그 시절의 사회 속에서 나름의 치열함과 애정으로 나를 키워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이 육아도, 언젠가 아이가 자라 돌아보며 이해하거나, 혹은 나와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육아는 늘 완벽할 수 없다. 단지, 그 시대의 사랑이 담긴 방식일 뿐이다. 나는 지금, 내 시대에 맞는 사랑을 선택해 아이에게 전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