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질문을 할때 비로소 나는 나를 깨울 수 있다.
아이들이 잠든 밤, 아주 조용한 틈이 찾아왔다. 집 안을 가득 채우던 생생한 소음, 작은 발걸음, 끝없는 “엄마!” 부르는 소리, 장난감이 굴러다니는 소리,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난 뒤의 고요함은 이상할 만큼 낯설었다.
그때였다. 마치 오래 기다렸다는 듯, 누군가 나에게 살짝 속삭였다.
“너 괜찮아?”
그 목소리는 분명 내 안에서 들려왔다.
육아를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제대로 대답해보지 못했던 질문. 아이를 돌보고, 끼니를 챙기고, 울음을 달래고, 매일 끝없이 이어지는 육아 루틴 속에서 나는 어느새 내 감정을 묻어두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잠깐만’, ‘이따가’, ‘조금만 더’, 그렇게 미루고 미뤄 결국 사라져 버린 나의 시간들. 그런데 그날 밤, 아이들이 깊이 잠든 사이에 찾아온 작은 틈은 마치 오래 전 잃어버린 나를 다시 불러내는 문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숨을 고르고 그 목소리의 방향을 따라가 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아주 작은, 하지만 분명한 ‘나’가 있었다.
엄마도 아내도 아닌, 누군가의 역할이 아닌, 그냥 나.
내가 나에게 말을 걸었던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육아를 하면서 나는 항상 ‘나중에’를 달고 살았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도, 잠깐 산책을 하고 싶은 욕구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고 싶은 바람도 모두 ‘나중에’. 내가 원하는 것들은 언제나 아이들의 필요 뒤로 밀렸다. 그리고 그렇게 미루는 사이, 어느 순간부터 나는 무엇을 좋아했는지도, 무엇을 원했는지도 잘 떠올리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밤의 고요함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내 모습은 사실 잃어버린 게 아니라, 잠시 기다리고 있었던 것뿐이었다는 걸.
아이가 잠든 사이, 아주 작은 숨구멍 같은 시간만 있어도 나는 다시 나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그 틈은 너무 작아서 한 번 눈을 돌리면 금세 사라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컸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나에게 솔직하게 대답했다.
“응, 조금 힘들었어. 그런데 괜찮아지고 있어.”
부끄럽게도, 내 감정을 말하는 연습은 아이에게 감정을 가르치면서 시작되었다. “슬플 수도 있어”, “화날 수도 있어”, “괜찮아, 감정은 나쁜 게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나는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정작 내 가슴에는 닿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에게 감정을 알려주려면, 내 감정도 외면하지 말아야 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아이의 마음을 살피는 만큼, 나의 마음도 살필 권리가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그 밤 이후로 나는 작은 틈을 찾는 법을 배우고 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짧은 시간, 10분짜리 산책, 문득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들. 그 시간 안에서 나는 다시 나와 마주한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너 오늘은 어땠어?”
그 질문에 매번 멋진 대답을 할 필요는 없다. 그저 대답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를 다시 발견하게 해준다. 엄청난 변화는 아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틈, 그 틈에서 만나는 나의 목소리는 육아 속에서 흔들리던 나를 다시 세워주는 조용한 힘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엄마이기 전에 ‘나’였던 사람이, 아주 작은 틈만 있어도 다시 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그 작은 틈이 모여 어느 날엔 조금 더 단단한 ‘나’가 되어 있을 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