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이런. 방금 막 꼰대가 되셨습니다.
어느덧 그냥저냥 살다 보니 나이라는 것을 많이 먹게 되었습니다. 갈수록 먹성이 줄어드는 것은 이미 많이 먹어버린 나이 탓에 배불러서가 아닐까 하는 뻘 생각도 드는데... 이쯤 되면 가장 듣기에 무서운 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꼰대'라는 말이죠.
어느샌가 마법의 단어 중 하나로 자리 잡아버린 '꼰대'라는 단어는 나이 든 사람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 공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따라붙으면 안 될 것 같은 꼬리표이자 거부하고 싶은 속성이랄까요. 그래서 이러한 '부정적 단어'들이 사회의 이슈에 올라오면 그 부정적 이슈가 자신에게 따라붙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갑질'같은 단어도 그렇죠.
물론 세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아서 항상 반작용이 일어납니다. '갑질'에 대해서 다들 이야기 하지만 조용히 '을질'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렇지만 절대로 메인스트림에 도달하지 못하죠. 애초에 '갑질'이라는 말 자체가 태생적으로 부정적인 의미에 쓰였기에, 그걸 뒤엎기에는 원천적인 부정적 의미를 반박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갑질'에 대해서 반박하고 싶은 게 아님에도 언어의 대표성은 싸잡아서 방어해버리니까요. '꼰대'에 대한 내용에 대한 반발도 당연히 있습니다만, 마찬가지로 부정적 이미지에서 시작한 단어는 좋은 의미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개중에는 다 포기하고 '나는 꼰대다'라고 차라리 세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생깁니다. 다들 어느 정도는 그러한 '부정적 언어의 사슬'에 묶이는 것이 불편하기에 누군가 총대를 메면 시원하다고 느끼긴 합니다. 다만 '샤이'로 숨어서 응원할 뿐이지 겉으로는 나서기 어려운 것이죠. 그리고 그러한 매니악한(?) 지지라도 타인과 구별되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요. 이슈는 어느 정도 가능한 부분이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저는 이미 나이상으로 '꼰대'의 자격을 갖췄습니다. 20대 때 했을 때 아무 문제가 없던 발언도 이제 나이라는 요소가 갖춰졌기에 충분히 '꼰대'의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꼰대'의 기준이 너무 넓다는 것에 있습니다. 과연 '꼰대'의 정의는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요?
'꼰대'라는 말 자체가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닙니다. 기록을 뒤져보면 무려 1920년대의 신문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문은 이미 통용되던 어휘를 가져다 썼을 테니 그 이전에 이미 '곤대짓'이라는 말이 존재했다고 봐야겠죠.
예전의 기준에서의 의미는 '젊은 사람과 공감하지 못하는 나이 든 기성세대'를 칭하는 은어에 가까웠습니다. 다만 아주 널리 쓰이던 은어였죠. 그런데 '언어 권력'에 맛을 들인 인터넷 시대에 다시 등장한 '꼰대'라는 단어는 어감이 입에 착착 붙어서인지 열풍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넓은 범위로 확장되죠. 위에 설명한 '갑질'과도 겹쳐서 사용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는 꼰대 구별법이니 뭐니 돌아다니지만, 언어는 그렇게 원한다고 규정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미 숨만 쉬어도 꼰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갑질이나 꼰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은 굳이 제가 다시 조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야기해 볼 부분은 왜 이런 것들이 '만능키'가 되었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조금만 불리하면 상대의 행위를 '갑질'이나 '꼰대'로 서로 몰아붙일 수 있는 상황입니다. 꼰대에 대한 너무나도 넓은 기준이 상황을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사용하게 되는 걸까요?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렇습니다. 어떠한 부조리와 흠결은 대부분 존재합니다. 정치든 종교든 사회의 어떠한 부분들은 다 부조리와 흠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많고 적음이 있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정치는 썩었다. 모든 종교는 악이다. 말하면 속이야 후련하겠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건 말하는 본인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우리는 그 안에서 세세한 분류작업을 거치는 '수고로움'이 필요해집니다. 그냥 흑백으로 뚝뚝 갈라지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기 때문에 우리는 '피곤한' 관찰과 분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갑질이 존재하고, 자신의 경험만을 논리 없이 절대적으로 적용하는 꼰대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전부 구분해서 우리가 '갑질'이나 '꼰대'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죠. 피곤한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생략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을에 대해 공감하거나, 꼰대의 부조리에 같이 공감해줄 사람들마저 몰아가게 됩니다.
피곤한 건 그렇다고 치고, 그럼 왜 의도적으로 생략하는 걸까요?
저는 항상 경험이 시간의 양으로만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몇 년간 그 일을 했느냐보다 어떤 생각과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해 왔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은 열린 사고방식을 갖기 마련이지만 예전에 자신이 얻은 경험에만 의지하는 사람은 '경험의 갱신'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거기서 꼰대가 탄생하는 거죠. '비논리적 경험의 우위성'을 내세우는 경우가 발생하니까요.
그런데 꼰대가 아닌,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경험을 누적시킨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더닝 크루거 효과*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에 누군가가 경험과 능력으로 자신의 방식을 수정하려 든다면? 그 사람은 상대방을 '꼰대'라고 판단할 겁니다. 자기가 생각했을 때는 상대방이 자기보다 모르는데 예전 방식을 고집하거나 경험만 이야기한다고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더닝-크루거 효과 : 인지편향의 하나로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잘못된 판단으로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지만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실수를 모르는 경향. 보통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실제 그게 맞다 틀리다를 따지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그런 논리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건 살고 있는 여러분도 충분히 알고 있을 겁니다. 계속 언급한 것처럼 시대는 정보를 쏟아내고 예전에는 우리 동네, 우리 지역만 알아도 살만했는데 지금은 해외에서 일어나는 일들까지 관심을 써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에 대해서 직접 복잡하게 가치를 판단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을 '피곤하게 여기는 시대'입니다.
이럴 때 등장할 수 있는 것이 '만능키'입니다. 자신보다 더 위의 직급이나 나이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교정하려 하는 순간 그 모든 것은 '꼰대' 하나로 치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게 옳은지 그른지는 상관없습니다. 부정적 프레임을 씌우는 순간 자기가 이긴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의외로 세상이 그런 동조에 쉽게 움직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똑같이 꼰대로 취급하면 되는 거죠. 이런. 방금 저도 꼰대를 획득했군요.
이러한 '낙인'의 효과는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사회는 '커뮤니케이션'과 '공감'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커뮤니케이션의 기반인 논리적인 대화와 감정의 교류를 '대표성 언어의 낙인'으로 틀어막아 버립니다. 결국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는 사회의 붕괴 또는 실종으로 나타납니다. 더 이상 회사는 하나의 사회로서의 기능은 거의 상실했습니다.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도 무너지면서 학교도 그러한 기능을 잃어가고 있죠. 아닌 회사나 학교들도 존재하지만 점점 그런 비중이 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과연 '꼰대'라고 타인을 내리누르며 공감하는 세대는 사회를 이룰 수 있을까요?
2010년대에 유행을 시작한 꼰대는 지금에 와서는 '나이 구분이 없다'는 인식이 대세입니다. '젊은 꼰대'라는 말도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공격성을 가진 일시적인 소집단들이 존재할 뿐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해하려는 사회는 없어지고 있습니다.
아마 제일 아이러니한 점은, 애초에 '꼰대'라는 말 자체가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을 거부하고 일방적 경험에 의한 주장만을 나이, 직위 등으로 강요하는 것을 이르던 말이라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꼰대'라는 표현을 폭넓게 쓰면서 그들 자신이 먼저 커뮤니케이션을 차단했다는 것으로 우위를 가져가고자 하는 것이죠. 즉, 대부분의 '꼰대'라는 말은, 쓰는 순간 '자신들 만의 정의로 커뮤니케이션을 차단하는' 꼰대의 정의에 발을 걸치게 됩니다.
꼰대라는 말 자체가 그렇습니다. 예전에도 나이 든 어른들과 의사소통을 포기한 어리거나 젊은 층이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은어였습니다. 그러한 세대 간의 변화에 따른 단절은 당연히 아주 예전부터 있어왔고 급변하는 지금 시대에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그 시절, 그게 은어에 불과했던 이유는 꼰대라는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당당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꼰대 꼰대 하던 사람들도 나이를 먹고 보니 세대 단절이 발생하더라는 거죠. 크고 보니 젊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에 따른 조언을 해줘도 듣는 법도 없고 말이죠. 그래서 그건 그저 은어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갑자기 은어가 아니라 사회적 정의의 언어처럼 튀어나오게 된 것입니다. 사실 꼰대는 학생들이 어릴 때 쓰는 '담탱이' 수준의 은어에 가깝습니다. 모든 담임 선생님이 그들에게 안 좋게 한 것이 아님에도 그들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정말로 선생님이 좋고 나쁘고를 다 구분해서 그렇게 부른 게 아닙니다. 그렇기에 그건 은어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꼰대가 은어가 아닌 정의를 지닌 언어가 되려면 명확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 실제 용법은 그렇게 쓰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제 갓 태어난 아기들을 제외하고는 서로 꼰대라 부르는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초등학생에 꼰대 없을 것 같으세요? 지금의 정의라면...?
뭔가 제가 알고 있는 꼰대와 지금 쓰이는 꼰대의 용법이 달라서 마음이 거부하는 거겠지만, 지금의 용법대로면 저도 꼰대가 맞습니다. 타인을 설득하려는 사람은 죄다 꼰대의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사실 꼰대가 탄생하기 바로 전 단계가 있었습니다. 인터넷을 달구던 현상이 있었는데, 그 단계를 거쳐서 지금의 '꼰대'가 탄생했습니다. 그게 뭐냐고요? 바로 '노오력' 논란이었습니다. 그냥 노력이라고 하면 그 느낌이 안 살아서... 결국 저 '노오력' 때문에 긍정적 이미지였던 '노력'에 대한 이미지도 바닥으로 가버리고, 사람들이 뭔가 노력한다고 하면 오히려 부정적인 이미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노력해서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바로 '꼰대'로 인식되기 시작한 겁니다.
그 '노력'에 대한 논란도 일부의 경험에 대해서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그래서 마치 '향상심'이 있는 사람들이 이상한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더 잘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사람들이 쉬쉬하고 숨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스트레스에 더 약한 세대니까? 해야 할 게 더 많은 세대니까? 전부 맞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것은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시간은 흐르니까요. 내가 멈춰있든 움직이든 시간은 흐릅니다. 우리는 더 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지금껏 고생해왔으니 좀 더 편안하게 생각해도 되는 걸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더 잘하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됩니다. 편안하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하면 오히려 편안함을 잡을 수 없게 되죠. 어우... 지금은 정말 '꼰대' 같긴 했네요.
이렇게 적당히 꼰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말이 많은 편입니다. 나이가 많으면 자기 할 말만 많이 하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20대에도 말이 많았습니다. 이미 젊은 꼰대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핵심은 말이 많다 적다가 아닙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이야기에 논리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양방향이라서 어느 한쪽이라도 닫으면 통하지 않습니다. 진짜로 말이 안 통하는 꼰대인 건지, 아니면 내가 할 말이 없어져서 상대를 꼰대로 몰아버리는 건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사실 저도 꼰대 많이 만나봤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꼰대로 다 '퉁' 쳐버리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꼰대 많은데, 셀 수 없이 많긴 한데, 꼰대 아닌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충분히 대화가 되는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그냥 듣고만 있거나 맞춰만 주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밤새도록 같이 이야기하고 논리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딘가는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서로 걸어 잠그는 사회가 길어지면 점점 없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꽤 오래부터 꼰대였던 저의 꼰대에 어울리는 나이가 된 기념으로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게임,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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