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코로나는 2주에 걸쳐 우리 가족을 다 휩쓸고 지나갔다. 아직도 개운하지 못한 몸과 자꾸 가래가 차는 목을 나에게 남기고 지나갔지만 그럼에도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은 아이들이 별 다른 큰 문제없이 넘어갔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웃기지만 부모로서 우리가 먼저 걸려서 아이들이 걸린 게 아니라 아이들이 걸려서 우리가 걸리게 되었다는 점도 위안이 되었다.
다들 코로나 기간에 안 아픈 사람은 없었으니 고생은 했지만 비교를 해보자면 오히려 올해 초가 더 고통스러웠다. 코로나 시대가 아니다 하더라도 아이가 아프다는 것은 부모들에게는 커다란 스트레스다. 하물며 병원에 마음껏 다니지도 못하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보면 병의 종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신체적인 부상을 제외하면 감기, 급체 정도가 대부분이었고 그 외의 질병은 진짜 '특이한 경우'라고 생각했다. 특히 감기는 그냥 감기었다. 심하면 독감이라는 것 빼고는 감기의 종류를 나눠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부모가 되고 보니 세상 처음 듣는 희한한 바이러스 질병을 많이 알게 되었다. 심지어는 그렇게 처음 들어보는 질병으로도 구분이 안 되는 '원인 불상의 병'으로 입원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현대 과학의 발전 속도가 질병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걸 그때 어렴풋이 눈치챘지만 코로나는 우리에게 그걸 완전히 각인시켰다. 그래서 코로나로 어린이집이 장기간 폐쇄되고 아이를 가정보육하면서 시간 분배가 너무 힘들어서 원망스러웠음에도 선뜻 어린이집에 보내기는 어려웠다. 중간중간 보내다 말다 하면서 아이도 힘들었고, 우리도 힘들었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결국 2년이 지나고 확진자가 나온다고 어린이집이 폐쇄되는 일은 없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어린이집을 보냈는데... 갑자기 두 돌도 안된 둘째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울고불고하는 둘째를 코로나 검사도 하고 병원에 갔는데, 병명은 '파라 바이러스'라는 또 처음 듣는 병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서웠던 점은 해열제가 거의 듣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이는 열이 나는데 해열제를 먹여도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 부모들이라면 이게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느낌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둘째는 입원하고 치료받고 거의 한 달여에 걸친 투병이 끝났는데, 이번엔 첫째가 콧물 증상을 보였다. 그리고 2주에 걸친 첫째의 치료가 끝날 때쯤 다시 둘째가 콧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미 두 달에 걸친 긴 투병에 멘탈이 많이 바스러진 우리는 겨우겨우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빨리 떨어지지 않는 콧물 증상을 보고 이리저리 알아보던 와이프는 아동병원이 아니라 이비인후과를 가보는 게 어떻냐는 조언을 들었다면서 나에게 둘째를 데리고 이비인후과를 갔다 오라 했다.
아직은 아빠랑 둘이 외출이 익숙하지 않은 둘째에다가 겨울이 끝나기 전이라 찬바람을 쐬기도 어려워서 좋아하는 자전거에도 태우지 못하고 차로 이동했다. 나는 1시 30분에 오후 진료가 시작할 줄 알았는데 여기는 2시 진료였다. 어쩔 수 없이 딸을 안고 길 건너 산책로에 갔다. 당시 21개월인 둘째는 걷기는 했지만 그리 안정적이진 않아서 안았다가 걸렸다가 조심조심하고 있었다.
봄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산책로 길가에는 햇빛도 있고, 봄기운이 어리고 있었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신났는지 둘째는 이리저리 둘러보았고 나는 졸졸 따라다녔다.
둘째는 길가에 있는 나지막한 나무에 달린 빨간 열매를 보고 나에게 물었다.
"아빠. 이게 뭐야?"
아이가 물어보면 대답해줘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그런데 내가 모르는 식물이었다. 키는 아이키만 하게 정돈되어 있는 빨간 작은 열매가 달린 나무.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아이에게 '몰라'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잠깐만 기다려봐. 아빠가 말해줄게."
그래도 과학기술과 AI의 발전으로 식물을 찍으면 이름을 말해주는 시대가 되었음에 감사했다. 나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나무를 찍었고 검색이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식물도 비슷한 게 많으니 정확하게 안 나오는 경우가 있다. 처음 사진이 약간 잘못 찍었는지 사과 따위가 나오길래 다시 찍었다. 아직 완전한 기술이 아니로구나... 자동으로 검색된 사진을 보니 똑같은 나무가 있었다.
이거구나 하면서 화면을 터치하는 순간, 옆에 있던 딸이 천천히 한걸음을 옮기다가 슬로모션처럼 넘어졌다. 마치 주저앉듯이 넘어져서 '아이고 아프겠네'라는 말을 준비하며 잡으려고 했는데 아이는 그대로 천천히 중심을 잃으면서 얼굴을 바닥에 찍었다. 검색이고 뭐고 얼른 아이를 일으켜서 살피니 코가 빨갛게 긁혔다.
정말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나 자신한테도 화가 나고, AI의 발전이 이 사단을 낸 것 같기도 하고, 콧물이 나고 있었는데 코를 다친 것도 그렇고, 얼굴에 흉이 지지 않을까 겁도 났다. 그런데 뭔가 응급조치를 취할 만한 상황도 사실 아니었다. 정말 슬로 모션으로 넘어져서 세게 부딪힌 것도 아니었다. 다만 넘어진 위치가 돌바닥 쪽으로 넘어지면서 긁힌 것이 문제였다. 그 많고 많은 산책로 고무바닥 놔두고 왜 하필...
콧물 치료를 받으러 간 이비인후과에서도 깜짝 놀라며 아이 코가 왜 이렇게 됐냐고 물었고, 나는 겸연쩍게 기다리다가 길에서 넘어졌다고 하고 넘어갔다. 소독을 해주고 연고를 발라줬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아이의 코는 상당히 많은 부분이 갈색으로 상처 자국이 남았다. 아이 엄마도, 할머니도 대놓고 나를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보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더 웃긴 건 이비인후과에서 준 약이 안 들어서 그냥 약국에서 사 온 약으로 증상이 호전됐다는 거였다. 대체 왜 나는...
집에서 속상한 마음을 뒤로하고 스마트폰을 열었는데 그 나무가 아직 브라우저에 떠 있었다. 순간 다시 울컥하고 올라왔다. 이깟 나무가 뭐라고... 그래 네가 뭔데 이렇게 된 건지 알기라도 하자.
그래서 나는 앞으로 평생 동안 '남천나무'를 잊지 못할 거다.
지금은 다행히도 흉도 남지 않고 완전히 나았지만 그래도 좋은 기억으로 남진 않을 거다. 아이가 겪는 아픔이나 고통은 나에게도 너무 고스란히 전달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아무리 예쁘게 생긴 나무여도 너는 다음에 우리 딸에게 좋은 기억을 주지 않는 이상 용서하기 어렵다.
남천나무의 빨간 열매를 보면 우리 둘째의 빨갛게 되었던 코가 평생 생각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