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거기서 왜 나와?
2000년대 끝자락이던 2009년에 미국 뉴욕 맨해튼에는 특이한 학교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Q2L(Quest 2 learn)이 그 주인공이었죠. 당시 문화예술교육을 시도하며 돌파구를 찾고 있던 저에게는 충격이었죠. 게이미피케이션이 교육과 결합하다니! 물론 교육용 게임에 대한 시도를 시장에서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럼 Q2L은 무엇이 달랐기에 '교육기관'으로 성립될 수 있었을까요?
2022년인 현재에도 Q2L은 여전히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Q2L이 기존 학교에서 사용하던 모든 체계를 무너트린 것은 아닙니다. 프롬도 존재하고 학기제도 존재합니다. 심지어 이 Q2L은 공립학교입니다.
Q2L이 기존의 공교육을 전부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그보다 필요에 따른 '재설계' 또는 '재조립'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췄죠. 그들은 Q2L에서 통용되는 그들만의 용어들을 정의했습니다. 그중 일부는 다른 학교에서 쓰이는 언어를 그들만의 언어로 변경한 것이고 그중 일부는 조립과 결합을 통해 다른 학교에 없는 형태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험이라는 말을 쓰기보다 'boss level'이라는 말을 씁니다. 실제로 내용도 일반적인 시험과는 달라지죠. 학습 단위는 'mission'으로 나눠집니다. 학습 목표별로 다양한 'quest'가 모여서 설계된 'mission'을 학생들이 해결하면서 익혀가는 것이죠. 그리고 'Class'라는 말 대신 'Point of View'라는 표현을 씁니다. 관점이라는 뜻이죠.
과학은 'science'가 아니라 'The way things work'로 시스템의 분해와 결합을 배우는 수학과 과학의 혼합 교육 형태로 제공됩니다. 체육에 대해서는 'wellness'라는 이름으로 영양과 정신적, 사회적, 정서적, 신체적 건강을 모두 포함한 형태로 다룹니다. 스포츠라는 이름이 들어간 'sport of mind'라는 과목은 디지털 미디어와 게임 디자인에 관한 시스템 사고에 중점을 둔 수업 형태입니다. 그 외에도 논리와 수학, 언어가 만나는 'codeworlds'라던가 'being, space, and place'같은 문학과 만화를 사회와 인문학에 연결하여 가르치는 수업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공교육이기에 'State standards'라는 게 존재합니다. 뉴욕주에서 결정한 학생이라면 알아야 할 표준 교육 내용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공교육을 벗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죠. 이 학생들이 대학교를 진학하고 다른 학교의 학생들을 만난다 하더라도 그들과 공통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을 놓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단지 배우는 방식이 다를 뿐이죠. 또는 무언가를 더 배울 기회가 존재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본인의 레벨을 올리겠지만 그게 일렬로 쭉 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퀘스트는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위에 말한 'State standards'를 제외한 나머지는 본인의 재미와 흥미에 따라서 퀘스트에 참여하고 거기서 달성하면 레벨과 보상을 얻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러한 각기 다양한 재능의 레벨을 보고 누군가는 퀘스트에 필요한 동료로서 파티를 맺고 활동하기도 합니다. 적어도 성적으로만 줄을 세우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가능성과 진로를 보게 되지 않겠어요?
이러한 Q2L에 당시 흥미가 생겨 교육을 게이미피케이션에 기대서 재설계하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습니다. 애초에 게임은 제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오랜 관심사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게이미피케이션을 위한 여러 가지 자료를 조사하다가 만나게 된 것이 'MDA Framework'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교육을 게임으로 디자인할 것인가?라는 관점을 조사하다가 만나게 된 자료였죠.
MDA Framework는 GDC에서 몇 년간 워크숍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그러한 자료는 국내에서도 번역해주신 분들도 계셨고 그분들이 국내 게임사나 게임 개발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실제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원문도 보긴 했지만 '게임 디자인 워크숍'의 자료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https://sites.google.com/site/gdworkshop/game-design-workshop
MDA 프레임워크는 게임을 디자인하기 위한 설계 원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인 우리가 게임에서 만나게 되는 것들은 게임 디자이너가 역으로 추론한 설계라는 것이죠. 역학(Mechanics), 동역학(Dynamics), 미학(Aesthetics)으로 나눠진 구성요소를 플레이어와 디자이너가 반대방향에서 바라보고 설계하게 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제 글을 쭉 읽어오신 분이라면 위의 단어들이 낯설지 않음을 느끼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제 글 전반에 MDA프레임워크의 영향이 녹아있습니다. Aesthetics, 미학이라고 표현했지만 '재미'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요소는 비단 게임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거죠. 그래서 MDA는 넓게 활용만 할 수 있다면, 게이미피케이션을 잘 적용하기만 한다면 진로설계나 수업설계에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Q2L을 고민할 때 주목하게 되었던 것이죠.
다시 Q2L로 잠깐 돌아오자면, Q2L에는 'mission lab'이라는 게 존재합니다. 기본적으로 학생들은 quest를 수행하는 플레이어이기도 하지만 mission을 직접 설계하는 것에 대해서도 배우게 됩니다. 그들이 삶에 전반적으로 스스로 quest를 만들고 mission으로 조직하고 동료를 모아서 클리어하는 과정을 설계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주는 것이죠.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 항상 플레이어만을 담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설계해준 삶을 구르고만 있게 된다면 장기말에 불과하겠죠. 그래서 학생은 그저 배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설계하는 법을 알아야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MDA는 이러한 플레이어의 관점을 디자인하는 관점에서 역설계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재미'(또는 미학이라고 부르는)를 중심으로 말이죠. 그래서 제가 줄곧 우리는 무엇에 재미를 느끼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재미의 종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왔던 겁니다.
MDA 프레임워크에 대한 수업은 마크 르블랑의 자료와 위에 링크 걸어드린 게임 디자인 워크숍의 자료를 재구성하여 제 나름의 인문학 교육요소를 살짝 섞어서 활용했습니다. MDA Framework 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게임 디자이너이자 교수인 마크 르블랑의 자료를 링크 걸어 드립니다.
https://users.cs.northwestern.edu/~hunicke/MDA.pdf
제가 직접 MDA 프레임워크를 강의하면서 중점에 두었던 부분은 MDA가 비단 게임에만 적용되지 않는다는 부분이었습니다. 당연한 것이, 저는 이 강의를 인문학 강의에 가장 많이 사용했으니까요. 핵심은 우리는 무엇에 'Aesthetic'을 느끼는가 였습니다. 그 경향을 파악할 수 있으면 자신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그리고 타인의 행동의 근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역설계를 통해서 무엇이 그들에게 그러한 행동을 하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관찰과 논리적 사고를 기반으로 하고 그것은 당연히 인문학의 기본이죠. 관찰과 사고가 없이 인지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위의 자료에 링크된 것 중 MDA프레임워크에 엮어서 활용한 것이 있는데, 바로 '시시파이트 3000'입니다.
우리가 아는 가장 기본적은 게임은 '가위바위보'와 같은 게임이 있습니다. 같은 타이밍에만 낸다면 이 게임의 승리 확률은 매우 공평하고 똑같죠. 하지만 우리가 '가위바위보'를 반복해서 해야 할 재미요소가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수많은 변형을 만들어 냈습니다. '묵찌빠', '감자에서 싹이 나서'(이건 동네마다 이름이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 잘 모르겠네요) 등등 다양한 어레인지로 재미요소를 추가했죠. 묵찌빠는 가위바위보의 승패와 같은 모양을 맞추는 것에 대한 2중 심리전을 집어넣었고, 감자에서... 는 두 가지의 선택지를 들고 둘 중 하나를 다시 제시하는 형태의 2중 결정구조를 넣어서 재미요소를 추가했습니다.
이렇게 직관적이고 제일 단순한 레벨의 게임에 재미요소를 추가하는 것처럼, 아주 간단한 게임에 추가적인 재미요소를 '공정성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어떻게 하면 추가할 수 있을까에 대한 프로그램이 '시시파이트 3000'입니다. 개인적으로는 MDA프레임워크와 연결해서 진행했을 때 학생들이 가장 잘 이해하도록 돕는 프로그램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사실 다른 분들이 다 만들어 놓은 것을 제가 최근에 '밤의 멋쟁이'에서 수업하는 과정에서 디자인만 조금 손댔습니다. 그대로 활용한 것도 있고요.
인문학 강의할 때에도 MDA프레임워크에 대한 반응은 좋았습니다. 물론 그때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열의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죠. 그리고 저번에 '밤의 멋쟁이'에서 강의할 때에도 열의를 가지고 참여해 주었습니다. 수업 이후에도 인상 깊었다고 이야기를 해주어서 개인적으로는 참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이 MDA 강의는 몇 년만이라서 약간 걱정되었거든요. 예전 글에서 다뤘지만, 인문학 강의인데 게임을 활용해서 가르친다고 하면 질색하는 학교나 교육기관이 많아서 그리 자주 활용할 기회가 나오지 않았거든요. 거기다 MDA는 누가 봐도 게임 디자인 교육처럼 보여서...
( 주: 밤의 멋쟁이는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가 광주4차산업융합협회와 협력하여, 2021년 하반기에 진행한 프로그램입니다. 광주4차산업융합협회의 부회장으로서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데 참여했고, 프로그램 초반에 MDA프레임과 '시시파이트' 게임개발워크숍을 강의한 바 있습니다.)
제 MDA 인문학 강의자료가 찾아보면 있긴 한데... 그땐 학생들하고 강의만 할 거라서 워낙 디자인적으로 간단하게 만들어놓은 탓에 양심적으로 창피해서 못 올리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어 리뉴얼하면 그때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내용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사실 MDA 하나만 가지고도 글을 한 10개는 쓸 거 같은데... 너무 짧은 내용에 욱여넣다 보니 어떻게 전달이 됐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이번 글에서는 전반적으로 어떻게, 그리고 왜 거기에 도달했는지만 설명을 드렸고, 게이미피케이션을 조금 더 깊게 다루면서 Q2L와 MDA는 각각 따로 글에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콘텐츠,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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