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거기서 왜 나와?
저는 어릴 때 영어를 '좋아'했습니다. (잘 X 좋아 O)
그 덕분에 학교에서의 시험 성적은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환경 탓...이라고 핑계 대고 싶지만 여하튼 스피킹은 약해도 리스닝에는 강세를 보였습니다. 특히 영어로 된 장문을 독해하는 걸 싫어하지 않아서 수능에 딱 적응된 스타일의 영어를 좋아했습니다.
지금 영어를 잘하냐면... 아니죠. 저는 영어를 '잘'하는 타입은 아닙니다. 좋아했으니 그럭저럭 시험은 다 잘 보는 편이었는데, 그렇다고 영어로 작문을 길게 하거나 말을 유창하게 하는 타입은 아니었습니다. 그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 거죠.
여하튼 시험용으로라도 영어를 잘할 수 있던 이유는 하나뿐이었습니다. 내가 영어를 좋아하니까? 와 재수없...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 영어 문제집을 선택할 때 저는 상당히 선택의 폭이 넓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재밌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약간 딱딱하거나 노력을 요하는 학습지도 저에게는 나쁘지 않았거든요.
아니 인문학을 왜 게임으로 가르치냐더니 갑자기 웬 영어 얘기야?
지금은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 얘기를 꺼낸 건 마지막 부분 때문입니다.
교육을 직접 개발하는 일을 하다 보면 가장 어려운 점이 '어디에 기준을 맞출까?'라는 점입니다. 게임으로 따지면 난이도 조절이라고 할까요? 입문형 교육은 입문을 위해서 쉽게 만들고 잘하면 더 어려운 게임을 하게 한다든지, 아니면 구간별로 랭크를 나누는 것처럼 말이죠. 이게 말이 쉽지, 개발하는 입장에서만 생각해서 만들어 놓으면 생각보다 효과가 없습니다.
코딩 교육에 널리 쓰이는 게임형 입문 교육 중에 '스크래치'라던가 '엔트리' 같은 것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마치 코딩 교육의 입문의 대명사처럼 쓰이긴 하는데, 실제로 코딩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러한 것들이 강한 동기부여가 되거나 도움이 된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입문용이라고 간단하게 만들었으니 간단하긴 한데, 그게 재미요소로 작용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는 거죠.
한 때 전국의 초등학생들을 메이플과 던파에서 끌어내고 왕좌에 가까운 자리에 앉았던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사각형 블록들을 쌓아서 자기가 원하는 맵을 만들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맵을 탐험하기도 하는 게임이었죠. 수많은 아프리카TV의 스트리머를 먹여 살린 게임이기도 하고, 그와 동시에 수많은 초등학생들을 게임 유튜브를 보게 만든 게임이기도 합니다.
이 게임은 상당한 자유도를 가지고 있어서, 누구나 맵을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과 멀티플레이어에 대한 지원 등 수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죠. 여담이지만 지금은 MS(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업데이트를 통해서 마인크래프트에서 건축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낮은 레벨의 컴퓨터를 만들기도 하는 등 자유도가 높다는 장점이 강했습니다. 캐릭터나 스킨이 단순하고 결제해야 할 부분이 많지 않다는 것도 장점이었습니다. 마인크래프트는 노는 도구인 동시에 만드는 도구이기도 한 말 그대로 가상세계의 무한한 레고와도 같은 것이죠.
마인크래프트의 인기가 식기도 전에 그 인기를 이어받아 전 세계 어린이의 최강을 다투게 된 게임이 바로 '로블록스'입니다. 단순하지만 마인크래프트보다는 더 깔끔해 보이는 레고 스타일 그래픽에 맵을 만드는 영역에서 '코딩'영역을 추가하여 더 복잡하고 다양한 게임이 등장할 수 있게 했죠. 처음에야 마인크래프트처럼 아무나 게임을 만들기 어려웠습니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로블록스 게임 개발 카페의 많은 인원이 중고등학교에서 시작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심지어 로블록스 게임 제작 유튜버도 중고등학생 비율이 높습니다. 개중에는 초등학생도 있죠. 사람들이 많이 이름을 들어본 C나 자바스크립트, 파이썬 같은 언어가 아니라 '루아'라는 생소한 코딩을 쓰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그럼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코딩이 그렇게 쉬워? 아니면 그 사람들이 천재인가?
여기서 제가 서두에 꺼냈던 그 이야기를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저는 영어를 '잘'하지는 않았지만, 어렵다고 느끼진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영어에 관심이 있고 재미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죠. 로블록스라는 게임을 재밌게 느끼고, 게임을 통해서 자신이 설계한 '메커니즘'이 돌아가는 것을 즐긴다면 '잘'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어렵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죠. 마인크래프트가 조금 더 간단하다고 했지만 어른들에게 저런 엄청난 맵을 만들어보라고 하면 너무 어려워할 겁니다. 그걸 아이들이 해내는 이유는 뭐겠어요?
작년에 광주의 청소년 교육기관 한 곳과 '4차 산업 연계 청소년 교육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로블록스'와 연계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데 참여했습니다. 게임에도, 교육에도, 4차 산업에도 관심이 있는 저에게는 딱 맞는 일 중에 하나였죠. '밤의 멋쟁이'라는 이 프로그램은 그 이전에도 4차 산업과 진로교육을 연계하여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만들다 보니 4차 산업'만' 관심이 있거나, 게임'만' 관심이 있거나, 교육'만' 관심이 있는 강사나 기획자들에게는 머리가 아픈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목적 자체가 게임을 만들고 끝! 이 아니기 때문이죠. 실제로 설계할 때 강사를 해주실 코딩 교육 강사분께 '게임을 만드는 게 핵심인 프로그램은 아닙니다. 하지만 게임이 결과물로 나오긴 하죠.'라고 하면 정말... 좋지 못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셨죠.
다들 어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익숙하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 교육을 관통하는 코드는 다른 게 아니라 '재미'입니다. 애초에 게임이라는 것 자체가 '재미'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달려있으니까요. 그리고 교육은 '우리는 무엇에 재미를 느끼는가'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위에 말씀드렸듯이, 재밌다면 어렵다고 느끼지 않으니까요. 아니 어려워도 충분히 도전을 한다는 거죠. 마치 못하는 게임을 계속 붙들고 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로교육이라면 이러한 '재미'에 대한 부분은 더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이 어떠한 부분에 재미를 느끼고 몰입하는가'라는 주제는 게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로 자체가 흥미와 관심이 없이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타인이 무엇에 재미를 느끼는가'를 알아야 콘텐츠 제작이나 마케팅을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은 제가 앞선 글에서도 몇 번이나 강조한 인문학적 '관찰과 인지'의 세계죠.
다른 글에서 다루겠지만, '교육용 게임'이나 '게임을 교육에 활용하는 것'의 한계는 명확합니다. 원래 해야 하는 교육의 구조를 게임 기반으로 설계를 하겠다는 목적인 거죠. 실제로 전문적 교육이나 특정 대상 교육에서 그러한 시뮬레이션들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승무원 교육이나 비행 조종사 교육과 같은 전문 교육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참여자들이 게임이 재미있어서, 관심을 갖게 되는 그런 상황은 아닙니다. 해야 하거나, 또는 그 분야에 애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는 거죠. 그렇다고 일반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게임성을 강화하면 교육 효과가 반감하겠죠. 실제로 스팀에서 수많은 시뮬레이터 기반 게임들이 팔리고 있지만, 교육적인 효과라고 보기에 무리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위에 언급한 '밤의 멋쟁이'라는 프로그램은 실제로 그 아이들이 '어떤 게임을 만들게 되는가'는 중요 순위에서 상당히 밀려 있습니다. 핵심은 그 아이들이 재미의 구조와 사람들의 행동 유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설계하는가에 있습니다. 그 안에서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재미요소들도 발견하고 타인의 재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죠. 그리고 게임을 참여할 유저들의 행동 유도를 위한 설계를 해보면서 타인의 행동과 생각을 유추해보게 되는 그런 과정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게임은 물리적 시간 제약을 받을 뿐이지 어떤 종류가 나와야 한다는 제약이 없습니다. 덕분에 강사 역량과 시간이 무지막지하게 들어가죠...
어떠한 프로그램이나 마찬가지지만 시행착오는 겪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유의미하게 수정되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곧 2회 차가 진행되는데, 이번에는 강사로 참여해주시는 분이 현업 로블록스 개발에 종사하시는 분에다가 타 지역에서 로블록스 게임 만드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본 적이 있으신 분이라서 더 좋은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아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메인 기획하신 분은 따로 있고 저는 기획에 '참여'만 했을 뿐이긴 합니다만, 기획 의도가 제가 생각하는 바와 일치하는 형태라서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진행되는지 결과를 봐야죠.
제가 교육에 참여하는 부분은 '재미란 무엇인가'와 '재미를 게임으로 설계하는 원리'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번엔 현업 게임 개발하시는 분이 있으니 그런 부분을 저보다 더 잘 아실 것 같기는 한데, 저번에는 제가 인문학 수업에서 사용하던 '게임에 관한 강의'가 있어서 그걸 활용해서 진행했습니다.
교육청에서 의뢰받아서 교육청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위의 '게임에 관한 강의'를 통해서 인문학 강의를 하기도 했는데, 그때도 반응이 정말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게임은 교육에서 충분히 인문학적 가치가 있다는 거죠. 재미와 구조라는 그런 요소 만으로도 말입니다. 글이 너무 길어진 관계로 그 강의에 관한 소개는 다음 글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콘텐츠,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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