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가 '스포츠 협회' 했는데 불만이라도?
저는 '협회'라고 불리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조그맣고 별거 아닌 협회지만 그 안에서도 여러 가지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하려고 하는 건 우리 협회 이야기가 아니라 '협회'라고 불리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속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보통은 논란이 될만한 시의성을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지 않지만, 이 내용은 제가 다루던 '평가'와 '공정성'에도 연결된 내용이기에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먼저 오늘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든 주범은 'KeSPA'라고 불리는 한국 e스포츠 협회입니다. 솔직히 대부분의 협회에 대해서 좋은 소리 자체를 들어본 분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최근에 평가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 국가대표 선발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 맥락에서 언급하게 되었습니다.
그 글에서 저는 평가의 기준과 공정성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심사위원들에 대한 이야기도 했죠. 그리고 이번 'LoL' 아시안게임 대표 차출에서 결국 문제가 터졌습니다. 오락가락하는 심사기준, 심사 결정권자들의 비전문성, 심사와 상관없는 협회의 이익 챙기기까지 모든 문제가 한 번에 터졌습니다. 심지어는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LoL'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했던 '꼬마' 김정균 감독이 얼마 전 개인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동안 감독직 수락 이후로 공개석상에서의 언급을 자제해왔던 김정균 감독은 참아왔던 것들을 쏟아냈습니다. 감독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었고, 감독이 제안한 내용은 죄다 묵살되었습니다. 국가대표 선발의 공정성을 위해 '스프링 기준의 선발'을 주장했으나 그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선발전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전달했으나 그것도 기각됐습니다. 그리고 선발전의 갑작스러운 취소에 대해서도 갑작스레 통보를 받았고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선수 선발에 있어서 자신의 의향은 전혀 반영되지도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LoL'판은 물론 e스포츠계는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국제대회, 그것도 아시안 게임이라는 병역면제까지 달린 국가대표로 격상되어 신중하게 접근해도 모자랄 판에 엉망진창으로 망가졌으니까요. 심지어 케스파 측에서는 평가소위원회의 구성에 대해서도 함구하고 있습니다. '비경기인'과 '여성' 할당에 의해서 '비전문가'그룹이 결정을 내린 것일 수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각에서는 'LoL'판에서 꾸준히 두각을 나타내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T1'과 'Faker'에 대한 길들이기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올 시즌, 아니 저번 시즌부터 계속 케스파와 'T1'사이에서는 갈등의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결국 '선수 보호'를 이유로 'T1'이 케스파컵 불참을 선언하면서 케스파컵의 위상이 쪼그라들다시피 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케스파컵의 운영시기 강행에 대한 문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던 부분이었죠. 거기다 선수 이적 문제부터 홍보 동영상이나 운영 문제까지 '라이엇 코리아'와 'T1' 사이에도 이상기온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즌 스프링의 'T1'이 전승 우승에 10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워버리면서 오히려 문제는 커졌습니다. 어떠한 방식으로 특정 팀을 배제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일방적이었습니다. 결국 4월 초에 결정될 거라던 아시안게임 멤버 '차출'은 갑작스레 '선발전'이니 '공개 스크림'이니 하는 이상한 것들이 잔뜩 생겨버렸습니다. 심지어는 거기에 파행이 이어지고 있죠.
이러한 국대 차출에 대한 문제와 파행은 프로가 있는 스포츠 종목에서는 흔한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야구나 축구에서 늘 그런 상황을 봐 왔던 사람들에게도 지금의 e스포츠 상황은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입니다. '감독'이 이 정도까지 결정권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거의 없는 일이고, 심지어는 위원회를 대표하는 위원장이 나와서 설명 한 번 하지 않는 것도 이례적인 일입니다.
대부분의 협회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변질됩니다. 물론 처음부터 좋지 않은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지는 협회도 많지만 불모지에서 처음 시작하는 협회는 대부분 초대 회장이나 회원들이 고생을 하면서 키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e스포츠도 결국 초창기의 선수들과 초대 협회 사람들의 고생의 결과물이죠. 그런데 보통 협회가 자리를 잡게 되면 어디나 그렇듯이 '숟가락'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보통 이러한 숟가락은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서 자리를 잡아버립니다.
케스파는 이전에도 문제가 많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스타크래프트 시절에도 사용권 문제부터 몇 가지 문제를 일으켰고, 그 이전에도 'Faker'선수 측과 협의되지 않은 관광프로그램을 팔아먹다가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그때부터 시작된 해묵은 악연(?)으로 계속 특정 선수에 대한 음해가 이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최근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터진 일련의 의혹들은 그런 의심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초반부에 이야기했지만 저도 협회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협회니 더 잘되고 더 깔끔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는 않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하는 조그만 협회 조차도 이럴진대 전국이나 국제단위의 협회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저도 충분히 짐작하는 바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체육계열 협회 중에서는 극히 소수의 협회를 제외하고 좋은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언뜻 기억해봐도 스쳐 지나가는 게 빙상연맹, 컬링, KBO, KBL, KOBO, KFA... 이 외에도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했던 지역 협회나 소규모 협회들까지 생각해보면 좋은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거의 유일무이하게 양궁 정도가 있을까요?
심지어는 제가 한 번에 적지 못하고 중간에 적다가 건너뛴 사이에 김정균 감독이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어차피 자신을 총알받이로만 쓰고 실제로 결정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알아서 할 거라면 사퇴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조그만 지역의 협회다 하더라도 선거철이 가까우면 별별일이 다 일어납니다. 자신들의 입지 강화와 '앞으로의 일'을 위해서 정치인에게 잘 보여야 하는 것을 '밑의 사람들'은 이해 못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논리가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깝습니다. 애초에 저는 협회를 만들 때부터 발기인으로 참여했던 입장에서 협회의 정관에 명시하는 '협회의 회원사 또는 회원에 대한 보호'가 그렇게 광의로 해석돼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회의감을 느끼죠. 심지어 커다란 협회라면 정치인 입장에서 눈치라도 보겠지만 작은 협회들은 정치인의 '눈에 들기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이번 상황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e스포츠가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와 국가대표의 범주에 들어가면서 발생하는 '당연한 성장통'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수많은 타 스포츠의 국가대표 선발과정과 짧지 않은 20년여의 역사, 그리고 시범종목 국대 차출이라는 예방접종까지 마쳤던 e스포츠의 선발과정이 정말로 당연한 성장통인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뭔가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것에 대해서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발목을 잡는다'거나 '돕지는 못할망정 방해한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왕왕 봅니다. 결국 이번 상황은 협회가 운영되는 방향이나 방식에서 봤을 때, '예견된 악재'이기도 하고, 공정성의 상실을 여실히 드러낸 부분이라고 봅니다. 예견이 가능한 악재는 예방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들 자신의 의지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지만요. 협회라는 정치적 후각에만 반응하는 이들이 과연 그렇게 의지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