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티와 마이너리티를 움직이는 손
테라폼 랩스의 권대표는 테라 사건이 발생하기 불과 며칠 전에 어느 매체와의 인터넷 인터뷰에서 가상화폐의 95% 이상이 없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망해가는 회사들을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라고 이야기했죠. 그리고 실제로 그 95%에 테라와 루나가 포함되었습니다.
실제로 국내에만 해도 수만 개의 가상화폐가 존재하는데 그중에서 지난 5년간 상장 폐지된 가상화폐가 500개가 넘습니다. 액수는 엄청나겠죠. 가상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는 두나무가 순식간에 대기업의 반열에 올라온 것이 놀라운 게 아닙니다. 그렇게 가상으로 불어났다가 사라지는 가상화폐의 양만큼 수수료는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미 가상화폐의 거래규모와 총 자산규모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 때문에 쉽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국가와 기관들이 끊임없이 경고를 보냈지만 그들은 커뮤니티 안에서 '알고리즘'에 의해서 강화되는 정보만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비슷한 이유로 다단계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고, 민주주의가 절대로 이상적인 사회 시스템이 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전에 예시로 들었던 일본의 버블 붕괴와도 비슷합니다. 결국 소수의 사람들에게 돈이 남고 나머지는 터져버릴 것이라는 점도 비슷하죠. 핵심은 버블 붕괴가 진행되어도 '일본 경제'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버블 붕괴를 일으켰던 주역들은 아직도 일본 전체에 영향력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 자체는 대부분 망하지 않았으니까요. '발생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부추긴 것으로는 그들을 범죄자로 만들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소수를 제외하면 그들에게는 책임조차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번 테라-루나 사건으로 권대표가 무일푼으로 길거리에 나 앉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실제로 일본 버블 붕괴 시기에도 일본 정부가 강력한 경고와 함께 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이미 흐름에 취해서 올라타버린 대다수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부동산과 주식과 같은 자산들에 쏟아부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예측이 실패한 것이기도 하고, 이미 그 흐름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죠. 거기서 뒤돌려고 하다가는 밟혀 죽을 것 같은 '스프링복'이나 '레밍스'와도 비슷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상화폐 역시 이번 루나 같은 사태가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하더라도 가상화폐 자체가 없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당연히 가상화폐와 블록체인과 같은 기술 자체가 허구는 아니며, 'NFT'라든가 '메타버스'같은 것들도 존재하는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구조상 언제 누가 다시 비슷한 형태의 거품을 일으켜도 인간의 탐욕과 본성이 없어지지 않는 한 반복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결국 핵심은 '과다평가' 되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일전에 '닷컴 버블' 이야기도 살짝 다뤘던 걸로 기억하는데, 실제로 웹 2.0 시대는 도래했지만 당시의 '닷컴'에 몰린 가치는 과다했던 것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기술의 연결은 일어나지만 그것이 지금 이 세상의 가치를 과다하게 빨아들여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죠. 그걸 우리가 '거품'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 기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럼 이러한 과대평가는 어떤 방식으로 발생하는 것일까요? 인간의 욕심과 본질을 안다면 우리는 사람들을 부추겼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디어'가 그러한 나팔수 역할을 맡게 됩니다. 고전적 미디어인 '뉴스'와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뉴미디어 계열인 인터넷과 SNS도 딱히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뉴미디어가 '개인의 생산'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탈중앙화'된 미디어라며 그들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건 인간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죠.
한동안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쏟아진 적이 있습니다.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십알단 사건', '드루킹 사건' 등 인터넷과 커뮤니티가 선거와 여론 등에 영향력이 있다고 판단한 세력들이 임의로 그들을 움직이려 한 것이죠.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 성공했던 것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더 이상 평범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세력에 휘둘리는 곳들이 되었습니다. '일베', '페미', '남초', '여초' 등등의 커뮤니티를 가르는 수많은 공격적 성향들이 등장했고, 우리는 커뮤니티의 자정능력에 대해서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SNS와 가짜 뉴스에 대해서는 이미 미 대선에서 터져 나왔던 것으로도 충분하리라 봅니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죠. 심지어 방식도 여러 가지입니다. 운영 측에서 알고리즘을 통해서 갈등을 조작하는 대표적인 방식은 미 의회에서의 증언과 함께 페이스북을 나락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결국 사람들의 경쟁과 관심이 돈으로 이어지는 뉴미디어의 운영 방식은 자극적이고 관심을 끄는 생산자들을 급증하게 만들었습니다. 어차피 그렇게 생산자가 한 방향으로 쏠리게 된다면 개개인이 미디어를 생산한다는 '탈중앙화'의 장점은 의미가 없는 거죠.
뉴미디어뿐 아니라 기존의 미디어도 여전히 좋지 않은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같은 내용에 대해서 같은 기자가 지지하는 성향의 입맛에 맞게 정 반대의 기사를 싣는 일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닙니다. 이를 사람들이 아무리 지적하고 조롱해도 그들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들에게 떨어지는 이득을 생각한다면 말이죠. 같은 상황에 대해서 속된 말로 '까고 싶은가, 빨고 싶은가'에 따라서 정반대의 기사를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습니다. 부동산 '안정화'인지 '폭락'인지 아무도 정확히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러한 상황들은 결국 미디어에 대한 피로감마저 극도에 달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뉴스를 많이 보지 않습니다. TV에서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포털사이트의 뉴스조차도 보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조작된 미디어들에 끊임없이 노출되면서 발생한 피로감은 결과적으로는 '미디어 리터러시'나 '디지털 리터러시'에 대해서도 고장 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저 '알고리즘'에 몸을 맡기고 똑같은 논리를 강화하면서 비평과 논쟁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정 시기가 되면 묻지마 범죄라든가, 강력범죄가 세상을 도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시기에는 정말 하잘것없는 행위를 이슈로 만들어 몇 달간 미디어를 점령하기도 합니다. 그 차이는 행위의 차이가 아닌 강제적 프레임에 달려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을 직접 마주하는 사람들보다 미디어와 디지털이라는 틀에 의해서 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루는 커뮤니티의 대부분이 그러한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나왔던 '메이저리티 리포트' 시스템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의 미디어와 디지털은 간단하게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메이저리티 리포트'로 둔갑시킬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필요하다면 말이죠. 결국 범죄가 일어날 것인가 아닌가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본인들에게 이득이 발생하는 것인가 아닌가 가 중요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부동산이 주거의 대상이 아니라 '가상 화폐'처럼 가치 차익 거래에 치중한 대상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심지어는 미디어나 디지털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법'조차도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정말로 사람들이 그것이 '공정하게' 작용하기를 원하는가에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정말 모든 사람들이 세상이 공정하게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을까요? 아니면 나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을까요? 지금 바라는 공정이 '내가 이득을 보지 못한다면'을 가정하고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요? 모두가 공정하고 바르게 되기를 바랐다면 교통신호도, 안전구역도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욕망들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제도와 규제, 법 등을 통해서 그것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흘렀던 것이죠.
@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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