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칠 때까지

by 게인

세상을 살다 보면 언제나 '시기'에 대한 고민을 할 때가 있다.


엄청 중요한 일에 관한 것일 때도 있고, 가볍게 보이는 일에 대한 것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일이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다르다.


감기는 우리에게 가벼운 질병이었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감기가 그렇게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전 세계를 뒤흔든 질병 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 조금 더 여유가 없어졌다. 아마 예전에도 느꼈지만 수능을 앞둔 수험생에게 감기는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일일 것이다.


시간이 주는 무게는 그렇다. 우리는 시간을 하루 이틀의 단위처럼 양으로 계산할 때가 많지만 실제로는 어느 영화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펼쳐진 풍경을 걸어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풍경에서만 중요한 무엇인가가 항상 다르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들은 꽤나 분명하다. 가까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생활을 지키듯이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문제를 포함하여 내가 무엇으로 숨 쉬고 살아가는가가 지금 '나의 시기'에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먹고, 자고, 마시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그 이상의 의미가 우리의 삶에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요한 것들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기본적인 것들이 채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풍경이 아닌 양으로 시간을 볼 수밖에 없다. 마치 게임에서 게이지가 떨어지듯, 시간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초조한 마음이 든다.




사실 글을 쓰는 것은 지금 당장 나에게 무언가를 주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시간을 바라보며 목구멍에 차오르는 초조한 마음을 꾹 억누르고 글을 쓴다. 시간을 양으로 본다면 지금 당장 뛰쳐나가서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을 억누를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을 풍경으로 본다면 아마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거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지금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미루고 다른 것들을 하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 되짚어 본다면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우리가 언제나 다시 하면 된다고 미뤄뒀던 것들은 그때 그 순간 할 수 있던 것들 뿐이었다. 나중에 다시 하더라도 그것은 그때 그 순간의 그 풍경이 아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가면 갈수록 풍경을 바라보지 못하고 시간을 물통에 남은 물처럼 바라봤다는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지나간 풍경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했을까. 더 공부할 것을. 더 즐겁게 놀 것을. 누군가에게 잘해줄 것을.


그리고 알고 있다. 자신이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다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는 것을. 왜냐면 우리의 선택은 보통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유의 양을 시야의 범위로 바꿔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의 선택은 그만큼의 여유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초조함을 달래며 글을 쓴다.


가끔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온다. 한동안 시간에 대해서 와닿는 바가 있어서 시를 썼다.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쓰고 있던 나 자신에게는 의미 있는 글들이 나올 때가 있다. 보통 그런 글들은 타인이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쓰면서 내가 후련해지면 타인은 그 글이 텅 비어있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시간과 시기의 문제는 여기에도 적용된다. 내가 글을 썼던 소재의 일부는 쏟아지는 비와 흘러내리는 물살들이었다. 그리고 그 시기에 내 글의 세상이 아닌 현실의 세상에서도 비가 쏟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쏟아지는 비에 속수무책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여유를 잃어갔다. 내 글이 내 안에 있는 것은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간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시간과 내 시간이 닿아야만 한다. 그리고 여유를 잃은 사람들에게 나는 내 글을 보여줄 수 없었다.




누군가는 그에 신경 쓰지 않겠지만 그것은 나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건 그 사람의 시간인 것이고, 나는 애써 풍경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내 글이 내 시간의 게이지를 늘려주기를 기대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시간을 풍경으로 보기를 바라마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결국 이 비는 잊지 못할 무언가를 남겼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들의 모든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아마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 아무것에 대해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햇볕에, 누군가는 빗물에, 누군가는 감기에 의해서 세상의 슬픔에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간이라는 풍경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면 다시 새로운 시간을 마주하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를 노래하는 수많은 음악을 가지고 있고, 겨울을 노래하고 눈을 노래한다. 태풍을 힘의 상징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번개를 빠름의 상징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시간의 풍경이 눈에서 멀어질 정도로 지나가면 그때의 우리는 다시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된다.














비는 그칠 듯하다가 다시 온다. 오늘도 아침에 내리던 비가 다시 저녁에 내리기 시작했다.


우기와 건기가 없으니 비는 언제고 또 내릴 것이다. 비가 그쳤다고 비에 대한 기억이 말라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결국 다시 비를 노래하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이다. 가물어버린 땅에 비를 적시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으니까.


그래서 그 글은 잠시 묻어뒀다.


이 비가 그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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