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와 미니멀리즘
어느 순간 사회의 트렌드 중 하나가 "미니멀리즘"이 되었다.
사실 좀 당혹스러웠다. 나의 생활패턴이나 환경은 미니멀리즘과 거리가 멀다. 미니멀리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미니멀리즘이 오히려 소비의 합리화나 여러 가지 면에서 장점이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 솔깃하면서도 망설여지는 주제였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한 번도 "맥시멀리즘"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 번도 채우고자 하는 욕구를 채우지 않았는데 미니멀리즘이라니... 그건 똑똑해본 적 없는 나에게 멍청하게 살아도 되는 거 아니냐고 하는 것만큼이나 의미가 없었다.
나는 정리를 "잘" 하는 편이다.
여기서 "잘"의 의미는 "자주"가 아니다. 할 때만 잘한다. 그런데 평소에 정리를 많이 시도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뭘 갖다 붙이더라도 귀찮아서가 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내 주변 물건들은 대부분 소소하다. 크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주 중요하고 비싼 물건들보다 작고 없으면 귀찮고 그렇다고 자주 쓸 일 없는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정리한답시고 어딘가 눈에서 멀어지면 기억 속에서도 같이 멀어질 존재감 약한 물건들이 많다.
아마도 미니멀리즘에서는 이런 물건들을 '정리'라는 이름으로 버리라고 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여러모로 찜찜하다. 인간은 진짜 중요한 것이 아니면 없으면 포기하는 게 보통이긴 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너무 작은 것들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버리는, 누군가는 '용기'라고 칭하는 그것이 나에게는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잠깐 다른 글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지만 나는 스스로 장비병이 아닌가 의심을 하기도 했다. '가성비'가 좋은 장비를 보면 사고 싶은 마음에 흔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여러 가지 고민을 겪으면서 그건 장비병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마케팅에 공략당하고 있는 평범한 소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소비자들을 알기에 배달어플에서는 자꾸 쿠폰을 뿌리고 행사기간이라며 4000원 5000원 할인을 한다고 하며 '지금'의 유혹을 사람들에게 날린다. 누군가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본인이 돈을 좀 벌었구나 하고 느꼈을 때가 할인이랑 쿠폰 상관없이 먹고 싶은 걸 가격 안 보고 주문해서 먹는 자신의 모습이었다고. 나는 거기까지 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쿠폰과 할인을 보면 갈대처럼 흔들리는 평범한 소비자다.
그렇게 쿠폰을 쓰는 게 알뜰 소비라던가 합리적 소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배달 어플이 지금처럼 커지기 전, 이사 갈 때마다 다 모으지 못한 음식점 쿠폰을 버리곤 했던 건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자주 다닐 거라고 다짐하며 쿠폰을 찍었던 커피숍과 음식점들 쿠폰이 지갑을 뚱뚱하게 만드는 걸 과감하게 '미니멀리즘'을 시도했다가 막상 갔을 때는 쿠폰이 없어서 후회한 기억도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티끌 모아 티끌이 맞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 티끌을 모으기 위해서 들이는 노력이면 굳이 티끌을 모아서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라고 너저분하고 어질러진 방을 보면서 평안함을 느끼진 않는다. 그 정도까지 진행됐다면 뭔가 상담을 필요로 하겠지만 다행히도 나 역시 어질러진 것보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긴 한다. 그렇지만 그와 별개로 '없어서 슬픈 경험'이 너무도 많았다. 세상에 완전히 가진 것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나는 집착을 버린다는 점에서 미니멀리즘에 공감하지만 불편하다. 그 집착이 나에게 의미하는 것이 항상 나쁜 것이었는지 알 수 없다.
첫째 아이는 길에서 뭔가 신기한 것을 보면 갖고 싶어 한다. 나는 어릴 때 내가 그렇게 길에서 물건을 주워오는 게 가난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진짜로 믿었다. 어느 정도는 상관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냥 직관적으로 갖고 싶으니 그런 것뿐이었다. 물론 그와 똑같은 물건을 어디선가 새 걸로 주면 덜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 그보단 눈앞에 보이고 내 손에 쉽게 들어오기 때문에 그저 갖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너무도 많은 걸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라도 돌멩이와 나뭇가지와 반짝거리는 것을 줍는다. 그건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데 결국 소유한다는 것은 공간을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마저 머릿속에서 공간을 차지할 진데 실체가 있는 물건들은 그 이상이다. 나는 마치 길에서 신기한 물건을 줍듯, 알리에서 엄청 저렴한 쓸모없는 물건들을 줍곤 했다. 물론 긴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점점 완전히 쓸모없는 물건을 주문하는 일은 없어졌다. 좀 더 확실한 소비를 한다는 점에서 발전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소소한 '언제 쓰일지 모르는 물건들'을 주문하는 일이 없어진 건 아니다.
사람들은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서 물건을 정리하면서 중고거래를 많이 이용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물론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도 꽤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고거래를 보고 있으면 물건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보다 경제적인 이득 부분이 더 커 보이는 경우가 대다수다. 심지어 되팔이가 가능한 물건들은 더욱 그렇다. 오히려 그렇게 폭발해버린 중고시장은 넘쳐나는 사기꾼을 양산하기도 했다.
나 역시 가끔 모든 것을 개운하게 정리해버리고 텅 빈 '가능성의 공간'을 갖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언제나 그런 행위는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는 여력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후회'를 동반한다. 한번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다고 계속 미니멀리즘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번 청소했다고 깨끗하게 유지될 거였으면 우리 집도 항상 깨끗했을 것이다.
모은 것들을 주기적으로 정리당하는 미니멀 라이프가 억울한 게 나뿐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