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0년을 알고 지냈는다. 기본적인 성격은 많이 차이가 났지만 의외로 말이 통하는 부분도 많다 보니 친해져서 한 때는 사무실을 같이 쓰기도 했다.
하지만 둘 다 세월은 피해 갈 수 없었는지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이 되어있었다. 술 마시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던 사람들이라 코로나의 영향도 없다고 볼 수는 없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이것저것 물어봤다. 몇 년의 시간은 사람들의 많은 것을 바꾼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대부분 우리가 겪는 것은 환경의 변화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내거나 이직을 하는 것과 같은 변화는 환경의 변화다. 물론 그런 환경의 변화가 심경의 변화나 성격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그런데 내가 가장 놀랐던 그분의 가장 큰 변화가 있었다.
그 선생님과 나의 공통점 중에 특이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콜라 사랑'이었다. 건강에 그리 나쁘다는 취향이었지만 둘 다 콜라를 많이 마셨다. 술을 마실 때도 무조건 콜라는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 선생님이 콜라를 끊었다고 했다. (그런데 대신 커피를 그렇게 많이 마셔대면 건강은 딱히...?)
나는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얼마 전에 글에서 다뤘던 것처럼 이제는 '덜 건강한 나이'가 되어 조금씩 신경 쓰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분과 다르게 나는 '제로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던 분들이었다면 머릿속에 '사이버 포뮬러'가 떠오르겠지만 그건 아니다. 한 때 거의 사장되다 싶었던 '제로 칼로리 음료'의 시장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탄산을 끊는 것보다 제로 칼로리 탄산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이제는 '제로의 영역'에 있는 음료들이 제법 '먹을 만한 음료'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제로콜라 자체는 2000년대 초반에 '웰빙 바람'이 불던 시절에 출시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그걸 정말 싫어했다. 사실 지금도 특정 '제로 칼로리 탄산음료'가 좋아진 거지 모든 '제로의 영역'이 옳은 것은 아니다. 아스파탐의 맛이 느껴지는 것을 떠나서 먹고 나서 느껴지는 그 공허한 느낌이 싫었다. 개인적으로는 탄산수도 '물보다 맛없는 음료'라고 생각해서 싫다. 콜라 계열 탄산 다음으로 선호하는 음료는 '물'이다.
그런데 그 긴긴 시간 동안 외면받아오던 '제로 칼로리 탄산음료'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만 둘러보다가도 심심치 않게 기사를 볼 수 있을 정도다. 가장 대표주자는 소문으로는 그냥 펩시보다 더 잘 팔린다는 펩시의 '제로 슈거 라임향'이다. '콜라 사랑'이었던 나의 입장에서도 가장 많이 찾게 되는 제품이다.
사실 오렌지향이라든가 포도향 음료라면 오히려 제로 칼로리를 내놓기 쉽다. 애초에 맛 자체가 그냥 단맛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콜라나 사이다 같은 제품은 기존에 맛이 취향을 강하게 타는 부분이 있어서 아스파탐이나 스테비아를 활용해서 만든 제로 음료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 역시 그중에 한 명이었고.
사실 가끔은 음료들이 바뀐 게 아니라 내가 바뀐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별 상관없다. 애초에 '제로의 영역'을 들어가 볼 생각을 했던 이유가 적어도 건강을 눈곱만큼이라도 생각해보자는 의도가 아니었던가. 원래 사이버 포뮬러에서도 '제로의 영역'을 처음 들어갈 땐 당황스럽고 사고도 내고 하는 그런 영역이다. 몇 번의 우여곡절과 사고를 겪었지만 나 역시 이젠 훌륭하게 제로의 영역에 적응하여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건강이 안 좋으시다. 내가 20살이 될 무렵에 당뇨 합병증으로 쓰러지셨다. 사실 그 이전에도 고혈압에 몸은 쭉 안 좋으셨지만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입장에서는 자기 몸을 챙기실 시간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막내인 내가 20살이 되어 미성년자를 벗어난 이후의 일이었다는 점일까.
내가 아버지와 1대 1로 술을 마셔본 기억은 수능 100일을 앞둔 날이었다. 평소에 그런 것을 전혀 신경도 안 쓰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오후에 집에 일찍 오시더니 나를 데리고 시장으로 가서 순대에 소주를 사주셨다. 당시에는 순대도 술도 그리 맛도 모르고 좋아하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불편한 자리였지만 그래도 내가 많이 자라서 아버지와 술을 대작할 수 있게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물론 그게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마시는 술일 줄은 몰랐지만.
아버지는 당뇨합병증으로 쓰러지신 이후에 술을 끊으셨다. 원래 워낙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아예 쓰러지셨던 것은 충격이셨는지 다시는 술을 드시지 않으셨다. 나이를 먹으면서 어디 가서 뭘 조 사하다 보면 가족력에 당뇨가 있는지 물어보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럴 때면 아버지와 당뇨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면서 조금은 주저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콜라 사랑이 사그라들게 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첫째가 태어날 즈음의 나는 스트레스로 인해서 (정말 스트레스 때문일까...?) 과체중 상태였다. 흔히 말하는 세자릿수 몸무게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 정도 무게가 되고 나니까 온몸에 적신호가 켜졌다. 간지수도 안 좋아졌고, 그와 동시에 당뇨에 대한 걱정도 생기기 시작했다. 거기다 아빠가 됐다는 무게는 더욱 그런 마음을 부채질했다.
사는 게 바빠지면서 술도 줄었고, 군것질도 줄었다. 어릴 때는 빵돌이 소리를 들을 만큼 빵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잘 먹지 않는다. 거기다 과식하던 습관도 거의 없어졌다. 이야기만 들으면 건강해졌을 것 같지만, 콜라를 중심으로 한 탄산음료만큼은 끊을 수 없었다. 답답한 기분이 들 때면 물을 마시기도 했지만 탄산이 당겼다.
그리고 아이가 하나 더 태어나고 출퇴근 이외에는 운동 같은 건 사치가 되었다. 아이들이 있으니 너무 행복하기도 했지만 부담감과 스트레스는 더 커졌다. 거기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내가 계획했던 일들은 거의 다 어그러졌다. 답답함은 극에 달했다.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과 건강이 둘 다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술로 그걸 메꿨다간 생활이 망가질 것이기에 탄산이 그 자리를 메웠다.
내가 제로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사실 이 제로 음료들이 유행한 것 자체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1-2년 안쪽이다. 그 전까지의 '제로의 영역'은 사실 그들만의 리그였다. 딱 먹는 사람들만 먹는 '특이 음료'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은 인터넷에 펩시를 치면 '펩시 제로 라임'부터 자동 완성된다. 괜히 농담처럼 그냥 펩시보다 많이 팔린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니다. 결국 나 역시 '펩시 제로 라임'으로 입문해서 그 뒤로 다양한 제로 음료수를 먹어봤다. 여전히 '제로 음료'다 하더라도 맘에 안 드는 것들은 맘에 안 든다. 그렇지만 펩시 이외에도 먹을만한, 아니 거의 제로라고 써져있는 것 이외에는 기존의 음료와 맛 차이가 거의 없는 음료수들도 있다. 아직은 누군가한테 제로를 꺼내 줄 때 '제로인데 괜찮아요?'라고 물어보긴 하지만 적어도 꺼내서 권할 수는 있는 수준이 된 것이다.
아무래도 '제로의 영역'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꾸 사이버 포뮬러 이야기를 하게 된다. 사이버 포뮬러에서도 '제로의 영역'은 '필살기' 같은 느낌이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만능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러한 제로 음료들도 다이어트 음료니 슈가프리 음료니 여러 가지 설명이 많지만 그렇다고 만능 음료는 아니다. 물론 하루에 5리터를 마셨을 때나 문제가 되는 거긴 하지만 아스파탐이라는 인공감미료는 일일 섭취에 대해서 허용량이 있다. 물론 지금은 인공감미료의 종류가 많아져서 그 독특한 맛의 아스파탐만 쓰지 않기 때문에 더 고민할 필요가 별로 없지만.
혹자는 아무리 인공감미료여도 단 성분은 몸에 안 좋다고 하기도 하고 탄산 자체가 뼈를 약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도 인터넷 전설처럼 내려오기도 한다.
아무래도 좋다.
금연을 위해서 니코틴 패치를 붙이고 금연껌을 씹는 게 왜 나쁘단 말인가. 적어도 직접적인 흡연보다 좋다면 시도해 볼만 하다. 탄산음료에 들어있던 그 많은 설탕당과 탄수화물이 빠졌는데 적어도 그 정도라면 시도해볼 만하다. 굳이 그 제로를 마시는 사람들의 노력을 깎거나 꺾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도 이걸 무슨 보약이나 건강식품으로 알고 마시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건 발버둥이다.
사실 지금도 글을 쓰는 내 옆에는 '제로'가 한병 놓여있다. 물을 마시고 있을 때도 있지만 아무래도 뭔가 스트레스받는 행위에는 '음료'가 필요하다. 특히 설탕 당이 아니다 하더라도 단맛은 우리의 정신을 깨우고 기분을 좋게 만드는 역할을 해준다. 아니 그걸 다 떠나서 그냥 마시고 싶어서 마신다. 건강에 좋은 것만 먹을 거였으면 술도 안 마셨겠지.
그 옛날 애니메이션 '사이버 포뮬러'에서의 '제로의 영역'은 극한의 집중력이 일으키는 초월하는 듯한 감각을 말한다. 뭔가 사기적인 의미지만 실제로 운동선수들에게는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보통 그것을 몰입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제로 칼로리 음료는 그런 몰입과는 아무 상관없다. 일반적인 탄산을 못 끊고 결국 제로를 맛있는 탄산이라고 여기게 된 나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그냥 그렇게 불러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