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언제나 그렇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다 자꾸 뒤돌아 보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묵묵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었다. 내가 결심하고 내가 보내는 건데도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처음도 아니다. 벌써 몇 번이나 있던 일이다. 그럼에도 마지막 인사와 작별은 언제나 쉽지 않다.
그것이 무엇일지라도.
처음부터 폐차를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익숙해지기도 했고, 개인적인 사정도 그리 넉넉지 않았다.
하지만 부쩍 골골 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긴 했다. 경고등도 하나씩 들어오고. 몇 개는 내가 중고로 인수하던 시점에 이미 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급하고 저렴하게 인수할 수 있기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렇게 골골거리는 탓에 중간중간 애를 좀 먹이기도 했다. 몇 번 애매한 고장으로 딱 애매한 액수가 들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3번째 차는 20살이 넘었다.
왼쪽 뒷좌석 창문은 내가 처음 탈 때부터 고장 나 있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했는데 타다 보니 창문에서 덜덜 떨리는 소리가 나서 신경이 쓰였다. 고치면 얼마 정도 들지 따져봤더니 차값의 3분의 1이었다.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타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갑자기 앞 좌석 창문이 안 내려가기 시작했다. 통행권을 뽑아야 하는데 창문이 안 내려가서 차문을 열고 내려서 통행권을 뽑느라 진땀을 빼는 상황이 발생했다. 어쩔 수 없이 앞 좌석 창문 모터는 교체했다. 이미 상당히 돈을 먹는 골칫덩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외에도 매년 브레이크 패드라든지, 어딘가 한 군데씩은 말썽을 부렸다. 나이가 나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언제 어디가 또 고장 날지 모르니 타고 나가는 게 가끔은 망설여졌다. 그런데 그것과 정 반대로 사실 주행능력은 좋았다. 그 회사 차 중에서도 드문 2002년도에 나온 6기통 가솔린 모델이었다.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그 희소성 때문에라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할 정도로.
연비도 점점 안 좋아지는데 고장까지 있으니 차라리 버스를 타는 경우도 많았다. 거기다 나의 건강상의 이유까지 겹쳐서 점점 집 앞에서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기만 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문득 집을 나서다 보면 대체 세차를 언제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세차를 마음먹기 전에 이미 비를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식어가던 시점에 친척이 타던 차를 바꾸려고 하는데 혹시 중고로 안 가져가겠냐고 연락이 왔다. 그 녀석과 같은 회사의 12년 후배 모델이었다. 당장 차를 바꿀 생각이 없어서 망설였는데 저렴하게 준다 하니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차를 바꾸게 되었다.
20년을 굴러온 이 녀석을 누군가가 또다시 탈 수도 있겠지만, 내가 타던 시점에도 이미 차량가액이 100만 원 대에 근접한 녀석이었다. 누가 이 차를 인수해봤자 아마 고철 값에 가까울 터였다. 그래서 아쉽지만 폐차를 결정했다. 폐차가 처음은 아니었다. 이 녀석을 데려오던 시점에 그전에 타던 99년식 소나타가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폐차했던 기억이 이미 있었다.
지나간 기억은 언제나 흐릿하다. 이 녀석을 데리고 올 때는 중고차 매매상을 통해서 구입했기에 그냥 그 자리에서 정신없이 해결된 기억밖에 없다. 그냥 소나타를 끌고 갔다가 그 녀석을 바로 그날 끌고 돌아왔던 기억만 남아있다. 그때는 그 전에 타던 차를 보내주면서 감상에 잠길 시간도 없었다.
제일 처음에 탔던 수동 마티즈는 수리비가 차량 가격을 웃돌아서 폐차를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자기가 고쳐서 시골에서 부모님께 드리겠다면서 정비하시는 분이 가져갔다. 그래서 그때도 딱히 감상에 잠길 시간이 없이 이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중고차 인수도 개인 거래라 내가 직접 뛰어다니면서 했고, 폐차 과정에도 내가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저것 처리되고 드디어 폐차를 할 타이밍이 되었다. 그냥 불러서 가져가라고 해도 되겠지만 그냥 마지막으로 운전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몰고 약속된 장소로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기지개를 켰지만 소리는 오히려 멀쩡해 보였다. 운전석에 앉아서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왠지 약간은 감정이 복잡했다. 떨쳐버리듯 가볍게 액셀을 밟았다.
나의 복잡한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가는 길에 갑자기 전자표시계 글자가 다 깨져버렸다. 지금껏 타면서 별 문제없었던 녀석이 마지막 날 갑자기 그랬다. 마치 자기가 갈 때를 알고 있듯이. 폐차하러 스스로 운전해서 가는 걸 알고 있는 듯이. 그렇게 마지막 미련을 버리라는 듯이 고장이 났다. 아직 멀쩡한데 폐차를 시킨다는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것처럼.
거기 주차장에 세워놓고 차를 맡기고 인사하고 가기 전에 다시 한번 그 녀석을 바라봤다. 무심한 듯 늘 집 앞에 서있던 모습 그대로 거기에 서있었다. 우리 아들이 '아빠 차'라고 부르던 그 모습 그대로 서있었다. 아이소픽스가 없어서 낑낑거리며 안전벨트로 카시트를 메어놓던 모습 그대로 서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려 했다. 내가 생각해도 멋쩍은 모습이라 손을 대충 흔들고 하마 누가 볼까 돌아섰다. 이렇게 전에 타던 차와 정식으로 이별한 건 처음이었다. 처음이든 아니든 이별은 언제나 그렇다. 내가 결심했다고 해서 마음이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었다.
소리 내어 인사하진 못했다. 그저 마음속으로만 되뇌었다. 그리고 행여 더 복잡한 미련이 남을까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돌아서는 내 뒷모습에 켜지지도 않은 그 차의 헤드라이트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녀석이 서있던 집 앞 자리에는 12년은 어린 다른 차가 자리를 잡았다. 아이소픽스로 간단하게 카시트도 장착이 된다. 2002년과 2014년이라는 공백은 차의 편의성을 너무도 많이 바꿨다. 차키를 꼽을 필요도 없게 바뀌었으니까. 나머지 가족들은 새로운 차를 타고 나들이를 하고 싶어 했다. 운전을 했던 나와 차 사이의 감정은 나머지 가족들과는 사뭇 다르다. 서로를 붙들고 의지하며 손발을 맞추던 관계니까.
이제 타게 되는 이 차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 그때도 이별은 그런 느낌일 것이다.
그때는 소리 내어 말해줄 수 있을까. 잘 가. 안녕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