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생존의 밸런스 게임

낮은 확률의 최선을 선택하기와 높은 확률의 최악을 피하기

by 게인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도전하는 자가 승리한다고.


그리고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거라고.


예전의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를 내리곤 했다. '최상의 결과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을 먼저 가정하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고민하는 인간'이라고. 아직도 그건 크게 바뀌지 않았다. 좋은 일이 많이 생기면 좋겠지만 세상이 마음대로 돌아가진 않는다.














누군가는 그런 걸 '위험회피형' 인간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대박을 터트리는 것보다 망하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 가늘고 길게 사는 인간의 전형적인 마인드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를 아는 그 누구도 내가 가늘고 길게 사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을 거라고 예상한다. 나는 그런 타입의 사람이 아니다.


핵심은 내가 대박이 나기 싫다는 게 아니라 '잘 안 될 가능성'을 가장 먼저 살피는 것뿐이다. 차이점이 뭐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안되면 어떻게 할까'를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보통 계획을 세우면 플랜 A, B, C가 있다. A는 가장 잘 된 케이스로 흐를 경우. 그리고 B는 그냥저냥 평범하게 돌아가면 발생하는 일들. 그리고 마지막 플랜 C는 돌발상황에 대한 대응이다.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그게 무슨 돌발상황이냐. 그렇다. 내 생각도 딱 그거다. 대부분 사람들이 겪는 돌발상황은 우리가 아예 예측도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아니다. 확률이 낮을 뿐 충분히 발생 가능한 상황들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대부분은 확률이 낮다며 그런 상황이 생길 거라는 예측 자체를 '시간낭비'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우리의 인생에 성공적인 연착륙이 항상 더 많았을까. 아니면 삐끗한 설계가 많았을까. 사실 대박 날 확률이 더 낮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그럼 그렇게 돌발상황을 예측을 하고 나서 왜 예방하지 않는가. 한다. 안 하는 거 아니다. 보통은 그렇게 안 좋은 상황을 예측하고 미리 예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예방을 했기 때문에 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면 타인은 그런 상황을 예측하고 예방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거기다 여러 사람이 일하다 보면 예방하고 싶어도 다수의 의견에 의해서 묵살당하는 경우도 많다. '왜 부정적인 생각만 하냐'라는 이야기는 진절머리 나게 많이 들어왔다.


왜긴 왜겠나. 다른 사람들은 죄다 장밋빛 미래만 꿈꾸고 있을 뿐 잘못될 수 있는 변수 제거를 놓치는 경우가 많으니 나는 부정적 요인들을 먼저 보고 제거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은 성공의 요인을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는 점으로 꼽는다. 보통 성공한 사람들의 후기담을 보고 무언가를 시작하면 거의 망하는 가장 큰 이유다. 그들의 대부분은 어떻게 성공했는지 잘 모른다. 실패를 예방하며 성공을 도모한 것이 아니라 확률 게임에서 승리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도모하는 일의 대부분은 이런 밸런스 게임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리스크 게임'일수록 그런 성향이 강하다. 그러한 리스크 게임에서 '하이 리턴'만 바라보고 달리면 리스크에 걸렸을 때 충격이 크다. 궁하면 통한다거나 간절하면 이뤄진다는 말은 희망을 주기 위한 말일뿐이다.


마치 축구를 하는데 앞으로 뻥 하고 차 놓으면 누군가 알아서 공격을 성공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소위 대박이 터진다면 우연이 겹쳐서 바람이 강하게 불고 휘어서 골키퍼가 잠시 방심한 골대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 말 그대로 대박이 터진다면. 그렇지만 높은 확률로 공을 뻥 차 놓는 행동은 상대방에게 공 소유권을 념겨주고 우리 편이 끊임없이 상대방의 공격에 시달리게 만드는 행동이다. 해외 토픽에 가끔 나오는 초 장거리 골을 성공하는 사례를 봤다고 계속 도전하고 있다면 그건 더 이상 축구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만일 그런 사람이 팀장이나 리더라도 되면 진짜 고달파진다. 하이 리스크에 계속 투자를 할 것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걸 커버하느라 소모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다 하이 리턴이 터지면 그 공은 전부 하이 리스크에 투자한 본인의 공으로 돌린다. 주식이든 코인이든 투자한 사람들이 수익이 터지면 전부 자기가 똑똑한 투자를 해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보통 자신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징크스'를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대체 본인이 집에서 옷을 홀라당 벗고 티브이로 자기 팀을 응원하는 게 선수들의 경기력에 무슨 영향을 끼친단 말인가.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인과관계에라도 기대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런 노력을 계속한다. 사실 그보다 더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거기까지는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본인이 가능한 훨씬 간단한 인과에 집중하는 거다.


죽어라고 뛴 선수들이 열심히 한 게 아니고 집에서 감기의 위협을 무릅쓰고 응원한 본인의 노력이 주효했다고 믿는다. 이게 그냥 스포츠처럼 생활이나 삶을 지탱하는데 밀접한 관계가 없는 일에 대한 거면 큰 문제가 없다. 문제는 실제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일처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일을 잘하는 게 핵심이 아니고 어긋난 인과나 상관관계를 들이미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어떻게'를 생략하고 장밋빛 목표를 던진 다음 타인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그걸 실현시키면 그건 그런 목표를 설정한 자신의 공이 된다. 실패하면 물론 실현시키지 못한 사람들의 잘못이다. 그렇게 '성공한 기획자'가 되는 사람들도 꽤나 많이 봤다. 아니 오히려 이건 그나마 진짜로 성공한 케이스다. 대부분은 그렇게 해서 실패했는데 '성공한 것처럼 꾸며서' 성공한 기획자도 많이 봤다. 성공의 판단이 자의적인 경우도 많으니까.














어릴 때 많이 듣던 말들이다. '인생 너무 피곤하게 산다'라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다른 글에서도 '인생 피곤하게 산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생각 없이 말하기 글에서 우리가 생각하며 살아야 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 보통 그렇게 살면 듣는 이야기가 '왜 인생 피곤하게 사냐'라는 이야기다.


아이러니한 것은 내 20대의 인생 모토가 '편하게 살자'였기 때문이다. 모토는 그랬지만 결론적으로는 남들에게 항상 피곤하게 산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그냥 넘어가도 될 것을. 그냥 모른 척하면 될 것을. 그냥 남들 하는 대로 하면 될 것을. 그냥 시키는 거나 하면 될 것을.


왜 그랬는지는 알고 있다. 나는 나와 관련된 모든 일이 '망하지 않기'를 바랐다. 혹여 실패하더라도 나와 관련된 사람들이나 일들이 최소한 망하지는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들을 피하기 위해서 노심초사했다. 어차피 일이 잘 풀릴 경우를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니어도 누구나 하고 있다. 1등이나 2등이 당첨될 것을 꿈꾸면서 로또를 사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착각하는 것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박은 절대 없다'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패기 넘치던 젊었을 때도 그랬는데 나이 먹은 지금은 말해 뭐할까. 오늘도 나는 밸런스 게임에서 조용히 '망하지 않기'에 손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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