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의 고질병 중 하나는 우울증이다. 거기다 코로나 블루가 겹치면서 사람들의 답답함은 더 늘어만 가고 있다. 교외로 나가서 바람을 쐬면서 기분을 풀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 여전히 SNS와 블로그, Vlog와 유튜브에는 좋은 곳에서 좋은 영상을 찍어서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정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인 걸까?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에 가장 유행하던 것 중 하나는 '무전여행'이었다. 나는 처음에 이 말이 무전기를 들고 누구랑 연락하며 여행하는 건 줄 알았다는 건 안 비밀... 여하튼 돈 없이도 고생하면서도 세상을 돌아다닐만했다. 그때 그 시절에는.
그때의 나는 여행을 참 좋아했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가는 여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내가 가보지 못한 동네와 내가 가보지 못한 골목이 너무 많아서 그걸 돌아다녀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거웠다. 아마도 제주도의 답답한(?) 환경에 살았던 영향이 클 것이다.
아니 남들은 시원함을 느끼러 제주도에 가는데 왜 답답하냐고? 제주도에 사는 사람과 놀러 오는 사람의 관점은 다르다. 나도 제주도의 바다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한쪽에 산, 한쪽에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그 풍경을 좋아한다. 하지만 공간의 제약이라는 것은 그렇게 해결되지 않는다. 섬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논할 수 없는 그 공간의 제약이 존재한다. 제주도정도 크기면 섬이 아닌 거 아니냐고? 영국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영국도 좁다고 느낄 것이다. 우리나라 크기여도 섬은 섬이다.
그 당시의 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성 그 자체였고 즐거웠다. 산으로 놀러 가거나 계곡으로 놀러 가는 것도 즐거웠다. 애초에 자라왔던 환경이 시골이었던 탓인지 어릴 때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랑 개울에 들어가서 개구리를 잡거나 바닷가에 가서 줄낚시를 하던 기억도 있다. 심지어 산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지네를 잡아서 음료수 캔에 담아와서 팔았던 기억도 있다.
내가 도시를 사랑한다는 의미가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제주도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제주도의 자연환경은 내가 사랑하는 그 무엇이었다. 어릴 적 외딴곳에 떨어진 집에서 형 누나가 학교 가고 부모님이 일하러 가시면 6살밖에 안됐던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나는 마당에 앉아서 수많은 나무와 새소리, 그리고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면서 흔히 말하는 '멍 때리기'를 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사치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그때는 다른 친구들처럼 놀아줄 사람도, 놀만한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에 뭔가 뒤처진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었던 나였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마 나의 언더독 기질은 그때 생기지 않았을까.
이야기가 잠깐 다른 곳으로 샜는데, 그렇게 방학만 되면 주머니에 돈은 없어도 무작정 다른 도시를 가서 돌아다니곤 했다. 잠은 피시방에서 쪽잠을 자거나 심지어 돈이 없으면 신문지를 덮고 거리에서 잔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뭔 깡으로 그랬나 싶기도 한데 아마 20대 초반이었기에 가능했지 싶긴 하다.
도시는 다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 다르다. 나에게는 그게 너무 재미있었다. 서울도, 부산도, 광주도, 대전도, 청주도 내가 돌아다녔던 도시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나처럼 걸어서 돌아다니면 도시 하나의 모습을 다 보기 위해서는 몇 달에서 몇 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었다.
번화가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던 제주도에 살았던 탓에 나는 번화가를 좋아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파도처럼 움직이는 것에 매료되는 느낌이 있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은 강물처럼 비슷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색을 지니고 있었다. 무지갯빛 물이 흐르고 있다고 해야 할까. 나는 가끔 길거리에 넋을 놓고 앉아서 그걸 바라보기도 했다.
돈도 없었고, 디카도 비쌌던 시절이라 나는 그 시절 돌아다녔던 사진이 한 장도 남아있지 않다. 모든 것은 고스란히 내 머릿속에만 남아있다. 나와 함께 사라져 갈 기억들이다. 지금이야 누구나 스마트폰에 카메라가 있으니 곳곳에서 기록을 남기고 그것을 통해서 기억을 갱신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내 기억은 내 기억일 뿐 다른 사람들이 믿어주는 것이 핵심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더 관찰하고 바라보는데 시간을 쓸 수 있었다. 계획이 없었기에 사실 더 많은 것을 주의 깊게 봐야만 했다. 그냥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지금은 어디를 가든, 누구와 가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진을 남긴다. 나도 사진을 싫어하진 않는다. 사진을 찍는 건 재밌기도 하고 다른 무엇보다 쉽게 소유할 수 있는 기분이다. 사실 그 풍경이 머릿속에 남아있다고 해서 소유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니까. SNS나 다른 무언가로 소통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더해서 타인에게 자신이 소유하게 된 그 풍경을 공유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단점도 있다. 찍어놓은 사진을 보면 타인은 거기를 가보고 싶어 하게 될 수 있지만 정작 본인은 굳이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줄어든다. 좋았던 기억이다 하더라도 소유를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사실 기억으로 남아서 그리워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보고 싶은 것은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친해서 자주 보는 친구들은 그런 의미와 많이 다른 것처럼.
꼭 사진과 SNS 때문만은 아닐 거다. 내가 늙어버린 탓도 있을 것이고, 이제는 인터넷에 너무도 많은 정보가 있어서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다 하더라도 고화질의 사진과 영상으로 너무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풍경에서 풍경으로 이동했을 때 느껴지는 시원시원함은 줄어들었다. 딱 실내에서 컴퓨터만 보다가 밖으로 나가면 도시 한가운데서도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것과 비슷하다.
아마도 마음가짐의 차이일 것이다. 편하게 내려놓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쥐고 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버릴 수 없는 것들이다. 커리어, 가족, 일에 대한 책임, 사회적 관계... 한 번이라도 내려놓으면 다시 되돌리기 어려운 것들이 가득하다. 몸이 아무리 시원한 바람을 맞아도 마음은 계속 묶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 이제 와서 '불멍'이니 '물멍'이니 하는 말들이 유행하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완전히 내려놓을 수 없으니 잠시라도 도피하고 싶은 것이다.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바람을 쐬는 것 이외에도 많은 방법이 있다. 하지만 답답함을 털어내고 숨통이 트이게 하는 것은 조금 다르다. 새로운 것들을 눈에 넣고 새로운 공기를 마셔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봤을 때의 그 감동을 갖기 위해서 그런 고민들을 하게 된다.
'안 본 눈 삽니다'
꽉 쥐고 있는 것들을 놓아버릴 수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해본다.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