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질 때까지

실패하지 않는 비결

by 게인

아메리카 인디언이라 불렸던 원주민들의 기우제는 100% 확률로 비가 온다고 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비가 올 때까지 계속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릴 때를 돌이켜보면 구체적인 목표가 없었다.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라고 불리던 당시의 초등학교는 저학년은 대통령, 고학년으로 갈수록 과학자나 선생님을 '장래희망'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조숙하다는 친구들은 박사(그때는 그것도 직업인 줄 알았으니까)나 의사를 목표로 하곤 했다.


말이 좋아서 '장래희망'이지 그냥 아는 직업 중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을 말할 뿐이었다. 심지어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그들처럼 살지 말라는 말을 주문처럼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들이 가장 가까이서 봐온 직업은 부모의 직업이었고 대부분의 부모는 그 직업을 부정했다. 더 좋은 직업을 가지면 더 좋은 삶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중고등학교를 거치고 점점 미래가 현실로 다가왔지만 그 시절만 해도 '대학 입학'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했다. 무엇이 될 것인가 보다도 중요했으니까. 대학 간판만 있어도 뭐든지 하고 살 것 같은 시기였기에 다들 점수에 매달리며 대학교를 들어갔다. 긴긴 수능의 터널을 빠져나와서 나와 같이 '경영학과'를 들어온 친구들 중에서 자신의 미래를 그나마 결정한 친구들은 'CPA'나 '세무사'같은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 뿐이었다. 대다수의 친구들은 자신의 미래를 막연한 '직장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도 않았다.




구체적이지 않은 목표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그렇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어떤 게 행복인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그것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삶은 목적을 향해 달리는 게 아니라 다가오는 파도에 저항하면서 살아간다.


대학교 시절,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아르바이트에 허덕이며 사는 삶은 시간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무언가를 얻으면 무언가를 잃는다.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공부도 하면서 가족과 친척들의 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연애도 할 수 있는 삶을 보내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너무 많다. 그래서 우리는 다급한 순서대로 처리하면서 나머지를 버린다.


그렇게 대부분의 목적은 '상황을 헤쳐나가는 것' 또는 '살아남는 것'이 된다. 전쟁 같은 사회에서 살아남는 일개 병사의 목적은 전투의 승리도, 전략적인 전쟁의 승패도 아니다. 그저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 된다. 악전고투를 거듭하면 결국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될까. 한참을 살아남다 보면 그제야 깨닫게 된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말하던 꿈이나 목표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었음을. 그것을 깨달을만한 여유가 생겼을 때야 '목표'라는 것은 다른 것을 이르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악착같이 '살아남기'를 목적으로 살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건 당연하고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대부분은 그 차이를 극복해 줄 수 있는 것이 돈이라고 생각한다. 그 생각은 틀린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자본'이 '이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회다. 그리고 그중 가장 명확한 자본이 바로 돈이다. 흔히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하지만 대다수는 그것이 잘못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시간과 돈은 둘 다 '자본'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서로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대체는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모두에게 같은 24시간이 있지만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딘가로 이동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애초에 시간이라는 자본이 부족하면 무조건 돈이라도 많아야 하는 구조다. 돈이 많으면 내 차를 가지고 내가 이동하거나 아니면 택시라도 타고 이동할 것이다. 그런데 그만한 돈이 없다면 걷거나 버스를 타야 한다. 물론 어떤 곳은 버스나 지하철이 더 빠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택시나 자가용이 더 빠르다. 심지어 특정 시간 대비 거리까지는 돈이 없으면 도전조차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천천히 걸어서라도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돈 대신 그만큼의 시간을 들이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하루에 24시간이라는 자본은 누구나 '똑같다'는 것이다. 누구나 어차피 24시간을 똑같이 가지고 있다면 그 시간은 '내가 다양하게 쓸 수 있는 만큼'을 가지고 많다 적다를 이야기해야 한다. 내가 걸어서 이동하는 데 10시간을 쓰면 누군가는 돈을 써서 30분 만에 이동하고 9시간 30분이라는 시간 자본을 다른 곳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바다를 건너야 하는 아주 먼 곳이라면 최소한 배나 비행기를 타야 한다. 돈이 없으면 애초에 시도조차 불가능하다. 물론 시간 자본을 투자하여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뱃삯이나 비행기 삯을 마련한다면 언젠가는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시간은 최소한으로 잡아도 몇 배 이상 들어갈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 오면 결국 '돈이 중요한 것 아닌가'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간다. 다시 말하지만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목표'와 '수단'을 혼동하면 안 되는 것일 뿐이다. 대부분의 기술이 기술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루는 '도구'이듯이 금전적인 부분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 역시 그 '수단 마련'에 일생의 대부분을 바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삶은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다. 오르막 내리막이 있고, 쉬어가야 할 때도 있으며 가끔은 점프를 하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가 구경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직접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목표가 없다면 우리는 왜 달리고 있는 걸까. 대부분의 게임이 그렇듯, 일단은 죽지 않는 것을 목표로 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이란 것은 게임처럼 점수로 등수를 나눌 수 없다. 클리어 조건도 없고, 잡혀있는 누군가를 구출한다고 하더라도 그 뒤의 삶이 있다. 본인의 목표는 결국 본인이 정할 수밖에 없다.


꿈꾸는 모든 것이 꼭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지구 멸망이나 세계 정복 같은 것을 꿈꾼다고 해서 그게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니까. 하지만 그것이 충분히 가능한 범위 안이라면 그 목표를 향해서 달려봄직 하다. 바로 성공하는 것만이 성공은 아니다. 목표가 이뤄질 때까지 달린다면 여러분의 실패는 전부 과정으로 취급된다. 그럼 여러분도 훌륭한 '기우제 주술사'가 될 수 있다. 성공률 100%를 자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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