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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인 Nov 11. 2022

놀이공원의 오래된 기억

지금도 어딘가에는 남아있겠지

 놀이공원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롤러코스터나 자이로드롭 같은 놀이기구가 먼저일 것 같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에게는 '청룡열차'만큼 놀이공원의 상징이었던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공포의 집'이었다. 어딘가는 '귀신의 집'이라는 이름을 달았던 기억도 있다. 줄서서 기다려야만 겨우 입장할 수 있었던 기억도 있다.












 지금은 공포의 집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놀이공원이라고 부르는 것들과 서먹서먹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이 있는데 왜 그러냐고? 몰라서 묻나. 코로나 때문이지. 특히 둘째가 어려서 아직 놀이공원에 가도 아무것도 탈 게 없었다. 물론 가봤자 그리 크지 않은 지역 놀이공원이었지만. 


 어릴 때도 그랬다. 내가 살았던 제주도는 놀이공원이 단 한 군데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어른이 될 즈음해서 제주시 탑동에도 생겼지만 그땐 이미 내가 제주도를 떠난 뒤였다. 그래서 내 학창 시절에 학교에서 2번 정도 소풍으로 가봤던 놀이공원은 '수산유원지'라고 부르던 그곳뿐이었다. 


 가물가물해져 가는 기억을 끌어올려보자면 나름 오리배(?) 같은 것도 있어서 구명조끼를 입고 탈 수 있는 조그만 연못 같은 곳도 있었다. 그리고 놀이기구가 몇 가지 있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뭔가 낡고 딱히 신나는 놀이기구가 아니었던 기억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비싸기도 했고. 


 그래도 놀이공원에 갔다면 뭔가 하나 추억은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나마 가장 입장료가 저렴하면서도 놀이공원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것이 '공포의 집'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우르르 몰려서 공포의 집을 들어갔던 기억이 남아있다.




 솔직히 말하면 무서웠던 기억은 전혀 없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가서 지나가면 그게 무서울 리가 있나. 심지어 남자들 뿐이라 꺅꺅거릴 일도 없었다. 그럴 거면 거길 왜 간 거야? 싶겠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놀이공원을 갔는데 뭐라도 해야 했다. 그 낡은 놀이공원에서 비싸기만 하고 녹이 슨 다른 놀이기구를 타느니 낡을수록 더 음산한 맛이 나는 공포의 집이라도 가야 했다.


 솔직히 공포의 집에서 놀라는 애들의 대부분은 거기 시설이 아니라 친구들 때문에 놀랐다.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초등학교 때 공포의 집을 다 같이 들어갔다가 나오는 길에 여자애가 주저앉아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나이를 먹고 놀이공원에 가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시기부터 놀이공원의 대명사는 '롤러코스터'가 되었다. 수많은 롤러코스터와 낙하나 스윙을 결합한 기계들이 생겼고, 대대적으로 내세우며 광고했다. 어느샌가 공포의 집은 놀이공원의 메인에서 밀려났다. 놀이공원에 가서 없는 시간에도 꼭 가야 하는 그런 곳이 아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공포의 집을 굳이 놀이공원에 가서 찾지 않게 되었다. 

 

 사실 나이를 먹으니 심리적 공포는 공포의 집이 아닌 상황에서도 차고 넘치게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어쩌다 보게 된 공포의 집 이야기 밑에 사람들이 훨씬 공포스럽다며 올려준 장난스러운 사진과 이야기들 때문이었다.


 어릴 때 학원 빼먹고 오락실에 가서 한참 게임을 하는데 뭔가 싸해서 돌아보니 어머니가 서계셨다든지, 군대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옆에 사단장이 와서 앉았다든지, 여자 친구 집에 부모님이 안 계시다고 해서 놀러 갔는데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갑자기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든지, 바로 앞에서 20년 넘은 중고 소형차가 람보르기니를 뒤에서 박았다든지... 


 

 









 첫째가 놀이공원으로 어린이집 졸업여행을 떠났다. 그래도 코로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일상으로 돌아왔기에 다행히 아이들은 즐겁게 놀고 올 수 있었다. 코로나가 끝나면서 많은 놀이공원들이 그동안 미뤄왔던 체험학습이 밀려들어 정신없다고 한다. 인터넷에는 가족끼리 휴가 내고 놀이공원에 놀러 갔다가 단체 아이들에 밀려서 아무것도 타지 못하고 기다리기만 하다가 환불받고 왔다는 경험담까지 돌아다닌다. 


 놀이공원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것으로 '공포의 집'을 꼽는 사람들도 더 이상 없다. 건물 몇 층높이에서 떨어지는 놀이기구와 사람들을 개미만 하게 보이도록 빙빙 돌리는 수많은 놀이기구가 더 인기 있다. 거기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놀이기구 하나하나 따로 돈을 내고 타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 이용권으로 제한된 시간 안에 타야 한다면 더 화려한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공포의 집 같은 것은 사람들에게 딱히 의미가 없다. 


 어린 시절, 공포의 집에 들어가려고 기다리며 꼬깃꼬깃 접힌 천 원짜리를 꼼지락 거리던 느낌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공포의 집은 공포가 아닌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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