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아프면 응급실을 가도 되는 걸까?
'건강염려증'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더욱 심각해진 이 증상은 사람들이 자신의 증상에 대해서 자가진단을 통해서 병을 크게 생각하는 경향을 말한다. 심각한 경우는 잘못된 자가 진단으로 생을 포기하거나 잘못된 치료방법을 시도하기도 한다.
나는 건강염려증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어딘가 아프면 바로 병원을 가기보다는 인터넷을 찾아본다는 점은 비슷하다. 사실 이건 '건강염려증'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인의 '검색 만능주의'의 단면이기도 하다. 거기다 어릴 때 병을 달고 살다 보니 병원에 가급적 가고 싶지 않아 하는 나의 경향이 겹쳤다. 그래서 웬만큼 아프지 않으면 나는 병원에 가지 않는다.
그냥 아파도 병원을 잘 안 가는데 응급실에 갈 일은 더 적다. 내 응급실 경험은 대부분 타인을 데리고 간 경험이었다. 농구하다가 손가락이 삐어서 손등이 부어오른 조카를 데리고 저녁에 응급실을 갔다든가, 주말에 설거지를 하다가 칼에 자상을 입은 와이프의 손을 붙들고 갔던 기억 따위다. 나 자신은 식은땀을 흘리며 저녁 내내 누워있어도 아침이 될 때까지 버텨서 차라리 다음 날 병원을 갔다. 잘 안 가는 것이 아예 안 간다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토요일 새벽, 가을 모기가 극성이라 아이들을 위해서 밤중에 모기를 쫓아내다 겨우 잠이 들려는 무렵에 갑자기 갈비뼈 아래 부분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근육통에 가까운 통증이라 근육이 놀란 것이라고 판단해서 스트레칭을 했다. 하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단순 근육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소화불량에 의해서 가스가 차서 밀어 올린 것으로 판단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목구멍에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부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더 아파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트림도 하고 화장실도 가면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놓지 않았다. 아파서 뒹굴면서도 배를 마사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빵빵한 내 배가 복부팽만증으로 배가 부풀어 오른 것인지 아니면 그냥 똥배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주물렀다.
몇 시간의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결국 한참의 씨름 끝에 화장실도 갔다 왔건만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통상 이런 증상은 몇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기 마련이었기에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소화제도 먹어보고 밖에 나가서 아픈 몸을 꾹 참아가며 30분 동안 걷기도 해 봤지만 여전히 식은땀이 날 정도의 통증이 지속되고 있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내 증상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갈비뼈'만 쳤는데도 갈비뼈 아래 통증에 관한 검색이 자동완성되었다. 나 말고도 같은 증상을 검색한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다. 검색 내용은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췌장암이나 간병변, 위궤양, 맹장염에 복막염까지 자극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애써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고통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었다. 어떻게든 월요일까지 참고 견디고 싶었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응급실을 찾기로 했다.
내 기억 속의 응급실은 언제나 정신없고 심각한 느낌이었다. 조카를 데리고 찾았던 응급실에서는 20대 초반의 여성이 빈혈인 줄 알고 응급실에 왔다가 심각한 진단명을 받고 남자 친구와 펑펑 눈물을 쏟는 모습도 봤었다. 추석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아버지를 모시고 갔던 응급실은 그 이상으로 정신없었다. 물론 내 정신이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기어가다시피 도착한 집 근처의 큰 병원 응급실은 생각보다 평온했다.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아서 헉헉 거리는 건 나밖에 없었다. 대기자가 많아서 진료가 오래 걸릴 거라고 했지만 들어가자마자 1분도 안돼서 진료를 봤다.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침상에 누웠다. 엑스레이에 심전도에 뭘 막 검사한 거 같은데 정확히 기억도 안 난다. 검사가 다 끝나고 나서 수액에 진통제와 진정제를 주사했다. 진통제는 바로 듣지 않았고 나는 병원 침상에서도 끙끙거리고 있었다.
전화기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고 있었다. 통증은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밤새도록 시달리느라 잠을 못 잤던 탓에 다시 잠을 청했다. 겨우 다시 잠이 들었는데 아내가 응급실에 찾아왔다.
"애들은?"
"어머님이 오셨어."
알리면 괜히 걱정하실까 응급실을 혼자 온 거였는데 결국 그렇게 됐다. 어머니는 내가 병원을 잘 가지 않는 것을 아주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내가 응급실을 갔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라서 아이들을 봐줄 테니 아내에게 응급실에 따라 가보라고 한 것이었다.
링거를 다 맞을 때쯤 진료를 봐줬던 응급실 과장님을 다시 만났다. 몸은 좀 어떠냐 하셔서 통증이 사라졌다 했다. 다른 검사 결과에 별 문제가 없고 양호해서 링거를 다 맞으면 퇴원해도 될 것이라 하였다. 나는 내 병명이 궁금했다. 그 수많은 검색에서 나를 떨게 했던 병명들 중에 걸린 게 없다는 말인가? 나름 통증을 잘 참는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참지 못하고 응급실을 올 정도로 아팠는데?
진단명은 '급성 위경련'이었다. 듣고 나니 갑자기 이해가 갔다. 나의 머릿속에 경련이라 함은 일시적인 떨림과 같은 증상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결국 걱정했던 수많은 질병에서 비껴나갔지만 일단 퇴원할 수 있고, 약을 먹으며 안정만 취하면 된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퇴원했다.
여담이지만 예전에 '얀센'백신을 맞고 돌아온 저녁에 정말 죽을 듯이 아팠다. 이번 아팠던 것보다 더. 그런데 나는 그때도 응급실을 가지 않았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위에 말했던 것처럼 어느 정도로 아픈 사람들이 응급실을 가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했다. 듣기로는 아주 가벼운 증상으로도 응급실을 찾는 사람들도 있어서 응급실이 혼잡하다는 말도 있었다. 그래서 응급실 진료비용이 가벼운 응급상황에 대해서는 보험이 미적용되는 일정 액수를 기본적으로 지불하도록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중증 응급'으로 처리되어서 응급진료비용은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감면처리되었다. 진단 결과에 따라 다르지만 이 정도의 급성 복통은 적어도 응급실을 가는 게 맞다는 이야기다. 특히 병원이 문을 열지 않는 휴일이라면 더욱. 그리고 앞으로도 이번처럼 통증이 있으면 식은땀 흘려가며 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선뜻 응급실에 가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문턱이 낮아 보인다. 그래도 다시 가고 싶진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