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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인 Nov 24. 2022

마나가 부족해

메모리도 부족해

 어릴 때는 나이가 많으면 체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실제로도 부족하긴 하다. 예전에 '덜 건강한 나이'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제는 체력적으로 힘든 것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부족해지는 것은 체력보다 '마나'가 더 심하다.












 어릴 때 RPG 게임을 즐겨했다. 그 당시 RPG의 대명사로 불리는 게임이 2개 있었다. '파이널 판타지'와 '드래곤 퀘스트'. 그중에서 인지도와 '정통'이라는 점을 따지면 드래곤 퀘스트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RPG 시스템에 엄청난 영향을 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클리셰'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는 '허약한 마법사' 또는 '할아버지 마법사'에 대한 인식이다. 물론 이러한 클리셰의 기본은 '멀린'이라든가 '간달프'같은 오래된 판타지 소설의 영향이 더 크지만. 마법사 자체가 기본적으로 '제사장'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보니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현명하고 나이가 많은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현명함'이나 '마법'같은 것들은 나이가 좀 있으면 더 완숙해진다고 여긴다. 실제로 학자들도 나이 든 원로 학자들이 더 똑똑하고 현명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그런데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다르다. 그렇게 완숙해지는 학자들은 젊었을 때 어땠을까. 보통 완숙해져서 존경받는 학자들은 젊었을 때도 두각을 나타낼 만큼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나이가 들어서 위대해진 것이다 아니라 원래 잘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현명해진다'라든가 '젊으면 현명할 수 없다'와 같은 것들은 잘못된 명제이다. 그런 케이스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꼰대의 자격'에서도 다뤘던 이야기지만 나이가 들고 꼰대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의 트렌드나 변화에 발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식들이 쏟아지고 머리를 써서 따라가야 하는 입장에서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쉽게 꼰대가 된다. 


 이런 트렌드에 따라가는 게 체력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일부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그만한 두뇌회전을 거기에 쏟기가 어렵다는 게 핵심이다. 나이가 먹을수록 삶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어나고 생각해야 할 미래가 많아진다. 마치 컴퓨터에서 램을 상시로 잡아먹는 것처럼 늘 백그라운드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들이 늘어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리소스가 모자라서 커다란 프로그램이나 새로운 프로그램은 버벅거린다.


 거기다 새로 나온 프로그램들은 새로 나온 버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수기 장부에서 전산 장부로 넘어가던 초기에 수년에서 수십 년간 장부를 적던 사람들 중에서 상당수가 도태되었다. 그들이 장부를 볼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은 새로운 버전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기에는 '체력'이 아니라 '마나'가 모자랐던 것이다. '정신적인 체력'이라고 우길 수도 있겠지만.


 거기다 경쟁 사회라는 것도 거기에 한몫을 한다. 만일 새 프로그램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공간이 필요하면 그전에 인스톨되어 있던 버전을 시원하게 지워버리고 그 위에 새로 깔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보통은 내가 할 줄 아는 것들이, 그리고 경험들이 시너지를 내기를 바란다. 그것을 지우고 새로 '제로 베이스'에서 출발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새롭게 경쟁하고 익히기에는 '마나'가 모자란다. 




 웹 페이지에는 '쿠키'라는 것이 있다. 한번 방문했던 웹사이트에 대한 '쿠키'를 가지고 있으면 다음번에 접속할 때 조금 더 빠르고 원활하게 접속할 수 있다. 할 때마다 새로 받기보다 '쿠키'라는 형태로 임시로 저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 '더 빠르게' 할 수 있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웹서핑을 하다가 창이 느리게 열린다던지 원활하지 못한 경우를 접한다. 그리고 그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간단한 해결법 중 하나가 '쿠키를 지우는 것'이다. 어떤 기억이나 관성들은 익숙한 것에서는 효과가 있지만 결국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의 머리 역시 익숙한 방향으로 사고를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험이라는 수많은 쿠키에 의해서 창의적인 사고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새로운 것들은 관성을 거스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으려고 할 때 '잘 먹겠습니다'라는 인사만 하고 식사를 하려던 관성을 누군가는 사진을 먼저 찍어야 한다고 막을 수도 있다는 거다. 가게에 들어가서 점원을 찾았더니 기계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서 주문을 못하고 쩔쩔맬 수도 있다는 거다.












 결국 대부분의 기술들은 사용자의 편의에 맞춰서 갈수록 더 '적은 마나'를 들여서 익힐 수 있게 바뀐다. 키오스크도 갈수록 더 직관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서브웨이가 매출이 갑자기 늘어난 것은 완성된 메뉴를 팔게 된 영향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커스텀'이나 복잡한 기술을 접하면 '마나'를 써서 익혀야 하기 때문에 기피하게 된다. 특히 현재 '메모리'와 '쿠키'가 포화에 가까운 사람들은.


 가끔 숨통이 트이도록 다른 생각들을 멈추고 바람을 쐬어야 하는 이유다. 그러다가 백업된 데이터까지 날려버리지만 않는다면 한 번씩 메모리도 쿠키도 조금은 비워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갈수록 마나가 부족하더라도 조금씩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몸으로 때우자'는 생각이 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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