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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인 Oct 26. 2022

어른들은 알아요

그런데 알아도 방법이 없어요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마음이 아파서 그러는 건데~'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30년이 넘은 옛날 영화의 주제가다. 가끔 흥얼거리는데 심지어는 가사도 1절 한정이지만 거의 기억이 난다. 어느 시대에나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조금 더 엄격하고 가부장적이던 시대에 이 노래는 꽤나 임팩트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도 88 올림픽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80년대에 나왔던 노래가 '뽀로로'같은 최근 애니메이션에서 나와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참고로 동요가 아니라 영화 주제가였다. 












 지금은 어떻게 봤을 때 저 내용이 너무 일반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저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자랐던 세대는 어떤 부모가 되었을까? 장난감만 사주면 그만인 게 아닌 부모가 되었을까? 사실 저 노래가 히트했던 그 시기에 나의 감정을 돌이켜보면 '저게 뭔 소리야' 싶었다. '있는 집'은 몰라도 '없는 집'들은 장난감을 사주기라도 하면 다행이었는데 장난감만 사주면 그만이냐니. 예쁜 옷은커녕 물려받은 옷만 1년 내내 입는 집도 있었는데 뭔 뚱딴지같은 소린가 싶은 아이들도 많았다. 


 그랬다. 사실 저 노래가 지금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것은 그때의 '있는 집' 수준이 지금 현재의 일반적인 가정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웬만한 집들은 평범하게 살아도 아이들에게 아주 비싸지는 않더라도 장난감은 사줄 수 있고, 새 옷을 사서 입힐 수 있다. 그래서 저 노래는 현대를 사는 부모들에게 더 마음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부모들의 마음이야 비슷하겠지만 저 노래를 들으면서 마음 아파하는 부모는 지금 시대의 부모들이 더 크다는 이야기다. 




 80년대 90년대의 부모들은 정말 바빴다. 해외에 가서 돈을 벌어오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고, 농사일을 하시는 분들은 주말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그 당시에도 '있는 집' 아이들은 풍족하게 자랐겠지만 '없는 집' 아이들은 부모 얼굴도 보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경험을 비춰서 자식을 키운다. 본인이 갖고 싶었는데 못 가졌던 것들,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것들을 자식에게 반영하는 경우가 꽤 많다. 위에 나온 '있는 집'에서 자란 사람들은 굳이 그런 게 없어서 좀 다를지 모르겠다.


  80년대의 부모들은 전후 세대가 많았다. 그래서 장난감도, 깨끗한 옷도, 맛있는 음식도 어려웠던 세대가 많았다.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시골에서는 제대로 된 책가방과 신발이 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산에 가서 나무 열매를 따먹는다는 이야기도 자연스럽던 시절이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부모가 되면서 아이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만 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최소한 자신들이 어릴 때 갖고 싶었던 '장난감'이나 '과자' 아니면 '예쁜 옷'을 사주는 것으로 그래도 자신보다 더 낫게 자라고 있다고 위안을 받았다. 이러한 세대가 결혼하고 육아를 하던 시기가 보통 90년대 말이었다.




 지금 시대는 맞벌이 부모들이 너무 많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안 보내는 경우가 드물다. 물론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러면 온전히 부모 중 한 명이 집안에만 신경 써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열심히 산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엄청 부유하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평범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뿐이다. 주 5일제가 생겨나고 주말이 생겼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들이 예전보다 덜 일해도 되는 구조가 된 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 시절에 비해서 '육아'에 대한 책임이나 비중은 더 커졌다. 


 결국 그 노래가 있던 시절을 살았던 부모들도 장난감을 사준다. 그리고 예쁜 옷을 입혀준다. 사실 그 시절을 살았던 부모들도 그 노래와는 다르게 장난감이나 예쁜 옷을 마음껏 입지는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모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 육아를 하기 마련이니까. 그 노래는 유행했고, 그때도 아이들은 외로웠지만 그 내용이 그대로 적용되는 건 오히려 현시대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그 시절에도 장난감은 비쌌고 지금도 장난감은 비싸다. 뭔가 유행하면 그에 맞는 장난감을 사주다 보면 수십만 원이 금방이다. 그렇지만 부모들은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었던 자신들의 모습이 밟혀서 아이들에게 장난감과 예쁜 옷을 사준다. 그리고 그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맞벌이에 나서고 더 열심히 산다. 그리고 '어른들은 몰라요'라면서 같이 있어주는 시간을 더 원한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다. 어른들이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할 수 있는 걸 할 뿐이라는 이야기다. 














 어머니와 가끔씩 육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어머니는 그 시절에는 정말 바빠서 어쩔 수 없었다고 이야기하신다. 나는 그걸 아주 잘 알고 있다. 부모님이 농사일하시면서 새벽에 나가서 어두컴컴해진 밤에야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오시는 걸 보고 자랐으니까. 주말에 밭에 따라가서 농사일을 도우면서 자랐으니까. 그때에 비하면 내가 편하게 일하고 있는 건 맞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은 너무 피곤해서 드라마조차 볼 수 없었다. 아버지는 야구를 좋아하셨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저녁에 TV로 결과만 볼 수 있었다. 


 지금의 부모들은 대부분 아이들과 상당히 시간을 많이 보낸다. 그 이전 세대에 비하면 훨씬. 그럼에도 아이들은 엄마를 찾고 아빠를 찾는다. 사실 이미 장난감과 예쁜 옷으로 키웠던 1세대는 거의 어른이 되었다. 200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벌써 성인이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모든 부모는 자신들의 경험에 비춰서 아이들을 키우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주려고 할까.


 놀랍게도 그 이전에 아예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갈수록 출산율은 줄어든다. 그 이전에 결혼 자체가 줄어든다. 10년 전만 해도 30대를 노총각이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40대에게도 노총각이라는 이야기를 쉽게 하지 않는다. 결혼을 포기하고 사는 사람이 늘었다. 장난감과 새 옷을 입었던 세대의 이야기다. 그걸로도 행복하지 않았는데 자라고 보니까 자신들도 아이들에게 그 이상을 해줄 자신은 없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 명만 낳아서 한 명에게 몰아주거나 아니면 아예 자기 자신들의 인생에 집중해버리는 케이스가 늘고 있다.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그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세상은 좀 바뀌지 않을까 했었다. 그리고 바뀌었다. 출산율 절벽의 시대로. 






https://www.youtube.com/watch?v=j1vk8J5-AZQ


어른들은 몰라요 (1988年)

- 이건주와 아이들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른들은 몰라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싶어 하는지 어른들은 몰라요

장난감만 사주면 그만인가요

예쁜 옷만 입혀주면 그만인가요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마음이 아파서 그러는 건데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알약이랑 물약이 소용 있나요


언제나 혼자이고 외로운 우리들을 

따뜻하게 감싸주세요. 사랑해주세요. 


 - 2절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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