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꼰대의 필연적 탄생
인구절벽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계의 끝이 아니라, 인구가 없어지는 '세대의 끝'에 도착했습니다. 벽으로 둘러싸인 것이 아니라 인구절벽이라는 낭떠러지로 둘러싸여 있죠. 비밀 조직에 얽혀 세계의 비밀을 탐색할 필요도 없이, 지금 당장 눈앞에 펼쳐지는 정신없는 변화들로도 아득해집니다. '하드보일드'라는 표현은 지금 이 세계를 관통하다 못해서 물어뜯고 있습니다.
저는 계속 세대 갈등과 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여러 가지 가능성 있는 이유를 이야기했고 어느 정도는 납득이 가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목 끝에 걸려있는 것 같은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예전에 '꼰대의 자격'이라는 글을 쓰면서 시간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나이가 든 세대는 이전만큼 빠르게 현세대에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불가능 한 건 아니지만 그리 능숙하기는 쉽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때 말씀드린 게 누적된 경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말을 할 줄 알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 줄 압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런 것들을 알고 있는 걸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누구에게 배웠거나 또는 경험에 의해서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 경험들이 우리를 '무언가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우리 다음 세대에게 전달해줍니다. 밥을 먹는 법, 말하는 법, 옷 입는 법.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경험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아직 아이들에게도 유용한 지식들입니다.
시간이 지나며 아이들만 아는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심지어는 아이들을 위해서 장난감을 조립하는 방법을 배우거나 평생 보지도 않을 것 같던 만화 캐릭터들 이름을 외우기도 합니다. 대가족이 없어지면서 타인의 육아를 옆에서 지켜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대부분이 서툽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자녀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기 위해서 열심히 찾아보고 배웁니다.
안타까운 상황들은 거기서도 발생합니다. 부모 세대에게 육아에 대해서 물어봐도 시대가 바뀌어버린 경우가 많아서 난감하기도 합니다. 그때는 예방접종도 몇 가지 없었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같은 곳을 보내지 않는 집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경험이 없이 하는 육아에서는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아이들은 그보다도 더 어리고 아직은 부모가 미숙하더라도 믿고 따라준다는 겁니다. 물론 생떼는 부리지만요.
조금 더 나이가 들고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어갑니다. 지금 청소년 세대는 스마트폰을 거의 손에서 놓지 않고 살아갑니다. 심지어 가출을 해서 연락을 피하더라도 스마트폰만큼은 절대로 안 끊기게 할 정도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스마트폰으로 타인과 연결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부모세대도 시대에 맞춰서 최대한 적응하려고 노력을 해 봅니다.
하지만 갈수록 아이들이 익숙해져 가는 것에 대해서 윗세대는 어렵습니다. 컴퓨터를 배웠지만 인터넷 사이트들은 더 복잡한 구조를 갖게 되었습니다. 겨우 메일에 적응했는데 사람들은 SNS를 넘어서 화상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따라가야 하는 것들 만으로도 진땀이 납니다. 40대 후반만 되어도 벌써 10대 아이들과 대화에서 어긋나는 부분들이 생깁니다.
이제 슬슬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세상에 대해서 물어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부모가 그랬듯 요새의 일들에 대해서는 자녀들이 부모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알려주면서 챙기는 자녀들이 있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문제는 세대 간 단락이 커지면서 아이들이 부모보다 타인의 영향에 더 많이 노출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부모세대가 아무리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해도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이미 수많은 사회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가족만이 자신의 편이라는 생각은 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의 유혹들이 존재합니다. 특히 유튜브나 SNS에서 인플루언서라든지 흔히 말하는 '워너비'들이 넘치면서 아이들은 흔들립니다.
이게 옛날의 연예인의 팬을 하던 것과 차이점이라면 그때의 연예인을 보는 느낌은 그냥 동경이었다면 지금의 아이들은 이미 그들과 거의 직접적인 소통을 합니다. 손에 닿지 않을 거리에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죠. 그래서 스트리밍 방송에서 관심을 얻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돈을 그들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실제로 만나게 되었다가 좋지 못한 사례가 생기기도 합니다.
부모와 보내는 시간은 옛날에도 적었습니다. 일을 하고 바쁜 부모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부모들은 그 바쁜 와중에도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세대 간극은 더 벌어지고 아이들은 부모보다 '초통령'이라는 인터넷 인플루언서들의 언행에 더 영향을 받습니다. 안 좋은 영향일수록 더 빨리 물드는 건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나이 드신 부모님께 무언가를 가르쳐 드리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눈도 어두워지시고 가르쳐 드린 것도 어렵다며 자꾸 잊어버리십니다. 아이들은 언젠가는 나보다 똑똑해져서 나를 가르치려 들 겁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오히려 자식들이 바쁜 걸 알기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도 머뭇거립니다. 마치 지금 일하고 돌아온 엄마 아빠에게 물어보는 자녀들처럼 말이죠.
세상의 지식이 변화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현명함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지식도 10년만 지나도 통용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컴퓨터는 5년만 지나면 감가상각비가 바닥으로 가도록 되어있습니다. 지식을 세대에서 세대로 이전하는 일은 이제 드뭅니다. 심지어는 그에 맞춰서 예절과 같은 것들도 바뀌어갑니다.
부모세대의 '옛날에는 이랬어'는 꼰대의 자랑질이 아닙니다. 세대를 물려주려던 경험과 지식들입니다. 그걸 '라떼는'이라는 꼰대의 외침이라고 부르는 지금의 현실이 갑갑할 뿐입니다. 지금 발생하는 수많은 지식들이 현세대들에게 익숙하다면 다음 세대는 어떨까요? 젊은 꼰대가 되는 것은 필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