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가지 못하는 연애와 오래가지 못하는 직장
얼마 전 어딘가 올라온 유머글을 보다가 그런 내용을 봤습니다. 대학 4학년 학생에게 구직활동은 어떠냐는 물음에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한테 마구 고백하는 기분이에요"라고 대답했다는 내용이었죠. 그럼 당연히 멘탈 나가겠지라는 이야기와 함께. 그 밑에는 그 좋아하지도 않는 고백의 결과로 차이고 기분이 우울해진다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전개가 벌어진다는 내용도 달려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도 하고 웃픈 이야기이지만 참 씁쓸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연애를 하려고 할 때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한테 고백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구직활동은 좋아하지도 않는 직장과 기업에 마구 신청을 하게 되는 걸까요?
진로와 직업은 쉽지 않습니다. 진로교육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이건 1년 2년에 끝나는 교육이 아닙니다. 상당히 장기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교육인데, 현행의 교육과정이나 교육시스템, 그리고 교육 현실에 비춰 봤을 때는 답이 없습니다. 그런 진로교육이 본격적으로 공교육에 달라붙은 2000년대 이후에 진로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지금의 MZ세대입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구인난과 구직난이 겹쳐있고 청년실업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위에 나온 것처럼 좋아하지도 않는 직장에 구직을 하러 다닙니다. 그리고 기업들은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은 사람을 뽑아야 하는 게 현실이죠. 이런 만남이 오래가기는 참 어렵습니다. 만나다 보니까 좋아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기대로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이 드문 것처럼 말이죠.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습니다. 연애든 구직이든 모든 활동은 언제나 처음이 있습니다. 처음 연애하던 시절을 잊어버린 것처럼 생각하지만 잊지 못할 기억입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연애였다면요. 그런데 만일 첫 연애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하는 연애'였다면 어땠을까요. 그 기억이 아름답게 남아있기는 힘들 겁니다. 그래서 사실 연애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불타오르는 감정으로 할 수도 있지만 한쪽만 좋아하는 일방적인 감정일 수도 있고, 아직 연애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해서 잘못된 연애관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직과 진로활동이 정확히 연애와 똑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구직은 몰라도 진로라는 것은 연애와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길만 보고 쭉 달려간다는 것도 그렇고, 누군가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나중에 정착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결국 끝내 방황하면서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뒤늦게 찾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게 맞는 줄 알고 몇 년 몇십 년을 지내다가 나중에 옮겨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떤 직업이나 진로가 없어져버려서 새롭게 찾아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연애는 사실 자신 없으면 미루거나 하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우리는 언젠가 '구직'을 해야 합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수인 사회라서 진로가 결정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직업을 가져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우리는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에게 고백을 하는" 상황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심지어 차이기까지 하는 거죠. 그리고 남들은 다 연애(취직)하는데 나만 솔로라는 상황에 우울함을 겪게 됩니다.
심지어 일하기 싫고 놀고먹고 싶다는 사람들도 사실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인정받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연애는 생각도 없고 싫다는 사람도 비현실적인 연애를 꿈꾸는 경우도 많죠. 단지 그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낮아서 도전조차 하기 싫은 경우도 많습니다. 가만히 있는데 연애가 완성되지 않는 것처럼 가만히 있는데 진로가 완성되지도 않으니까요. 잘 안될까봐 연애를 안한다는 것과 잘 못할까봐 일을 안한다는 것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먹고사는 걱정이 없다면 사실 굳이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시작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인 중에서 부모님께 용돈을 매달 몇백만 원을 받는 사람이 있었는데 잠깐잠깐씩 일을 하긴 해도 직업을 길게 갖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직업이 아니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으니까요. 단지 직업이 되지 않을 뿐이죠. 중간중간해보고 싶은 일들을 한 번씩 도전하면서 계속 지내도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다면 좀 천천히 둘러봐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나이가 들었는데 '쌓여있는 커리어'가 없다는 것에서 불안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돈이 있으면 커리어도 만들어지는 세상이긴 합니다만. 자유롭게 연애만 하던 사람이 나이가 들었을 때 드는 불안감이나 허전함과도 비슷한 측면이 있죠.
연애의 감정을 모르는데 연애를 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기지 않은 상태에서 구직을 하는 게 아마도 비슷한 느낌일 겁니다. 그냥 누군가를 만나보고 싶은 생각은 들겠죠. 아 이 사람도 나쁘지 않은데? 이런 생각으로도 연애를 시작해볼 수는 있는 것처럼요. 그래서 구직을 처음 할 때 딱 마음에 들지 않는 일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하면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진실한 속마음과 안쪽이 아니라 겉모습이니까요. 화려해 보이는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친구들이 많은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많이 줘서 그 직업을 택했다는 사람들이 오래도록 그 직업을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한 예로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특정되지 않았기에 그런 측면이 큽니다. 저도 공무원 시험공부를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대부분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공무원이라는 '진로'를 꿈꾸는 걸까요. 아니면 돈을 받는 직업으로서 꿈꾸게 되는 걸까요. 후자의 이유로 공무원이 되는 사람도 만만치 않게 많습니다. 그래서 MZ세대가 주력인 지금 공무원 시험 응시도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심지어 9급 공무원은 퇴직하는 비율이 늘었습니다. 자기가 꿈꾸던 연애와 거리가 멀었던 거죠.
'모쏠'(모태솔로)이라는 말이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아듣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타인에게 '요새 뭐해?'라고 묻습니다. 적당한 나이가 되면 연애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적당한 나이가 되면 당연히 직업을 갖고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에게 떠밀려서 하는 연애는 시작부터 삐걱거립니다. 진정성이 없는 작업 멘트로 연애가 시작될 가능성은 아주 낮습니다. 원하지 않는 직장에 구직하러 온 지원자의 그 미적지근한 태도처럼 말이죠.
그래도 오지랖은 좀 줄어든 세상이라 이제 '노총각'이니 '노처녀'니 하는 말은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30살만 넘어도 결혼 걱정을 쏟아내던 사람들은 이제 40대쯤 돼야 머뭇거리면서 걱정하는 말을 합니다. 전에는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취직을 못했다고 하면 다들 난리였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다들 직장을 가는 게 당연한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30대가 넘어도 뭔가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 그저 격려를 해줄 뿐입니다. 오히려 늦지 않았다며 응원해주기도 합니다.
연애도, 진로도 이전 세대보다 지금 세대가 환경이 나쁜 건 아닙니다. 연애를 즐기기 위한 물질적 풍요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진로의 종류가 줄어든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정보는 인터넷에 흘러넘치다 못해서 과부하가 걸렸습니다. 다만 연애 말고도 즐길 수 있는 게 세상에 널려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화려함이 넘치는 세상이다 보니 진로를 결정했다가도 화려함에 흔들립니다. '실시간'이 익숙한 세상은 실시간으로 자랑하는 시대를 의미하니까요. 그게 연애든 진로든 자랑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마음에도 없는 최악의 연애 멘트를 던지며 구직 시장에서 퇴짜를 맞습니다.
'우리 그냥 한번 만나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