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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인 Nov 21. 2022

징크스와 미신

 얼마 전, 수능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월드컵이 있다. 


 수능이나 월드컵처럼 중요한 일이 생길 때면 사람들은 '징크스'를 이야기한다. 대부분은 비과학적이다. 실제로 엿을 먹는 게 시험의 당락에 관여할 가능성은 정말 눈곱만큼도 있을까 말까 하겠지만 사람들은 엿을 준비한다. 그 몸에 좋은 미역도 괜히 부정 탄다고 먹지 못하게 한다. 심지어는 침대에서 자다가 '떨어지면' 안되니까 바닥에서 자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역으로 그냥 그 모든 걸 다 하는 사람도 가끔 있다. 나처럼. 주변에서 그런 거 신경 쓰는 게 싫어서 일부러 무시했다. 물론 수능을 망쳐서 징크스의 부존재를 입증하진 못했지만. 










 누구나 징크스가 비과학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으면 어디다 빌어서라도 잘 되길 바라는 것은 사람의 본능 중 하나다. 지구 반대편에서 얼마나 응원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그들에게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모여서 월드컵을 응원한다. 아니 딱히 월드컵이 아니라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응원할 때는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때로는 자기가 보고 있으면 진다며 시청을 거부하는 자도 나온다. 


 당연히 그 사람이 보고 있건 말건 선수들은 컨디션과 그날의 경기 결과에는 전혀 영향이 없지만 우연이 중복되면 그거라도 믿고 싶어지는 게 사람이다. 농담처럼 생긴 징크스에 심각해지기 시작하지만 않는다면.




 심각해질 계기는 많이 있다. 수능의 경우는 안 심각한 경우가 오히려 이상하다. 우리나라의 시스템은 대학에 많이 의존하는 시스템이고 적어도 그 안에서는 수능이 엄청난 비중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앞사람의 머리 모양이 신경 쓰여서 수능을 망쳤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나올 정도다. 매년 수능 점수를 비관하여 극단적인 시도를 하는 학생들이 있는 상황이니 그걸로는 농담이 될 상황도 아니다. 그 상황에서 우리는 징크스를 그저 징크스라며 웃고 넘기기가 쉽지 않다. 


 스포츠와 응원에 대한 징크스가 심각해지는 경우는 그 스포츠 경기의 당사자인 경우, 그리고 '도박'에 연루되었을 경우다. 당사자들은 나름의 징크스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손흥민의 경우 '양봉업자'라는 별명이 있다. 상대방이 노란색 컬러가 있을 경우에 승률이 좋을 뿐 아니라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게 징크스처럼 붙은 이유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의 노란색은 거의 '도르트문트'였고, 분데스리가 명문 중의 하나로 항상 상위권을 기록하는 팀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 이후에도 노란색을 입은 첼시를 상대로 임팩트 있는 골을 넣는 등 그러한 징크스를 입증했다. 이런 케이스는 그나마 긍정적인 징크스로 언급이 되니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몇 가지 징크스들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음에도 '도박'의 근거는 되곤 한다. 그리고 도박을 재미로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도박에서 지고 나서 재밌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대인에게는 돈만큼 중요한 게 거의 없으니까.


 그런데 진지해진다고 해서 그게 과학이 되진 않는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월드컵 문어'가 있었다. 독일이었나. 그 문어에게 승리팀을 맞추게 했더니 기가 막히게 맞춰내었다는 문어였다. 낮은 확률이 반복적으로 성공하면 사람들은 거기서 과학 이외의 것을 끼워 맞춘다. 그 뒤로 한동안 세간에서는 '문어'에 '점쟁이'라든가 '예언가'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질 정도였다. 이번 점쟁이는 어떤 동물일지 아직 가늠이 안 간다. 


 사실 이러한 미래 예측과 점이라는 것은 '미신'의 영역이다. 


 '어릴 때 살던 집에 사과나무가 있었지?'라고 물어서 '없는데요?'라고 물으면 '있으면 큰일 날 뻔했어'라고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한 패턴에 휘말리면 우리는 미신 역시 과학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휘둘리게 된다. 터가 안 좋다며 살던 집을 옮긴다던가, 멀쩡한 차를 바꾸고 중요한 자리에도 안 나가는 경우가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식에서야 이해가 안 가는 일이지만 '미신'을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가능한 일이다. 




 토정비결이나 운수와 같은 것은 '확률'이라는 결과론적 수학과 연결이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확률은 나오기 전에는 '완전하게' 예측이 불가능하다. 비올 확률과 비 오지 않을 확률이 50%라면 당신은 비가 올 것이라 믿는가 오지 않을 것이라 믿는가. 확률은 때로 믿음의 근거가 되지 못할 때가 많다. 어쩌다 믿었는데 80%였던 확률이 틀린다면 그렇게 틀렸던 기억이 강하게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 맞췄다는 '월드컵 문어'가 근접하게 예측해 낸 슈퍼컴퓨터보다 유명한 것이다. 슈퍼컴퓨터는 퍼센티지를 제시했을 뿐 정확하게 맞추지는 못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 불확실한 세상을 자꾸 단언하는 사람들의 말에 혹해서 귀를 내주곤 한다. 사기꾼에게 필수적인 요소는 바로 자신감이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감옥에 수감됐던 어느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그랬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할 겁니다' 

'어떻게요?' 

'제가 대통령이 되면 할 겁니다'


 어떻게라는 이유를 대지도 못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촌극이었지만 결국 대통령은 그 사람이 되었다. 인과관계가 엉망인 것은 MBTI로 사람 성격을 맞추는 것과 비슷하다. 극도로 믿을 게 없어지면 우리는 유사통계를 이용한 '미신에 가까운 것'을 믿는다. 그것이 과학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불확실한 사회일수록 확실하고 단정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과감해 보이는 무언가에 끌리기도 한다. 그래서 사기꾼도 활개를 치고 미신과 징크스가 날뛰기 시작한다. 주식과 코인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대박이 날 거라고 단언하는 사람들에게 열광한다. 그리고 위험해졌을 때는 왜 말리지 않았냐며 경고하던 사람들을 다그친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월드컵 때만 되면 학교에서는 친구들 사이에 도박(?)이 성행하긴 했다. 고등학교 때쯤에는 특히 국가대표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승무패와 스코어를 걸고 500원씩 내걸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보면 그것도 불법 도박이었지만 다행히도 500원이라는 매점에서 소모할만한 액수였기에 너도 나도 참여했던 기억이 있다. 


 며칠 있으면 우리나라의 월드컵 경기도 시작한다. 누군가는 내셔널리즘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국가대표팀을 바라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승률을 떠나서 이기기를 바랄 것이다. 결과는 즐기면 그만이다. 비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기 중에 경기력이 안 좋으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서 가장 기쁨을 누리거나 좌절감을 느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다. 그 본인들이다. 


 수능을 끝낸 수험생들도 그 본인이 가장 힘들고, 월드컵에 임하는 축구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몇 년에서 몇십 년간 준비해 온 것들을 결정하는 자리다. 그들에게는 징크스나 미신보다 그 결과가 무겁다. 만일 그들 자신도 그 무거움을 징크스나 미신에 의존하려 한다면 끝내 자기 것으로 소화하긴 어려울 것이다. 자신감의 근원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그저 옆에서 그 결과와 과정을 서사로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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