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은 없다. '방랑자'만 있을 뿐.
사람들은 유행하는 어떤 단어에 꽂힐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단어가 어감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너도 나도 가져다 쓴다. 그런 식으로 트렌드가 형성된다.
이제는 살짝 유행이 지나가고 있지만 그런 유행 중 하나가 '노마드'였다. '유목민'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실제로는 '들뢰즈'에 의한 정의를 바라고 사용했을 것이다.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바꾸어 나가며 창조적으로 사는 인간형. 또는 여러 학문과 지식의 분야를 넘나들며 새로운 앎을 모색하는 인간형을 이르는 말'이라는 뜻으로 쓰여서 한동안 인문, 사회계열 학자들과 문화계 사람들에게 입에 닳도록 오르내렸던 표현이다. (다음 사전을 참조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표현이 지금 사라지진 않았다. 다만 유행할 때처럼 '너도 나도' 노마드를 이야기를 하지 않을 뿐이다.
뜻이 좋은 말들은 그런 식이다. 누구나 그런 의미를 가져다 쓰고 싶어 한다. 실제로 노마드라는 말은 별별 곳에 붙여서 쓰였다. 정치, 문화, 교육, IT를 넘어 심지어 금융계에서도 '금융 노마드'라는 언어가 쓰였을 정도다. 그럼 이 사회는 정말로 그런 창조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사회였을까.
당연하게도 아니다. 그들이 취하려고 했던 것은 '노마드'라는 이름의 듣기 좋음이지 실제 그 의미를 따라가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노마드'에서 '자기 자신을 바꾸어 나가며'나 '분야를 넘나들며'라는 파트에 집중한다. 유목민이라는 원어의 개념 자체가 그런 의미를 더 강하게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게 특징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노마드'에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새로운 앎을 모색하는' 부분이거나 '창조적으로 사는 인간형'이다.
노마드의 특징을 결정짓는 것은 보통의 판단처럼 분야를 넘나들거나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맞다. 그거 자체를 부정하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그들이 주목하지 않은 '앎을 모색하는' 것이나 '창조적으로 사는 인간형'이 그냥 수식어가 아니라 오히려 '기본조건'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창조적이나 창의성이라는 말에 대한 느낌은 갖고 있지만 그것을 정의 내리는 데 지쳤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창의성이나 창조적이라는 말을 그냥 아무렇게나 쓰거나 또는 아예 부정해 버린다. 그러면서도 알고는 있다. 창의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는 정말로 창의적이거나 창조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새로운 앎을 모색한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배우려는 태도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배움이 단순하게 '지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A도 배우고 B도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A도 배우고 B도 배우게 되면서 그 사이에 발생하는 파생 또는 연계된 지식을 고민하고 배우는 게 핵심이다. 단순하게 A와 B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A를 따로 배운 사람과 B를 따로 배운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게 과연 노마드가 의미하는 바와 일맥상통할 수 있을까.
물론 모든 노마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의미 없이 가져다 쓰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누군가는 그런 삶의 방식이나 움직임을 정말로 의미 있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많지는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어떠한 이론의 '맥락'이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들뢰즈'는 학자다. 학자가 어떤 정의를 가져올 때에는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연구와 공부 안에서 연결되는 어떤 개념을 만들어낸다. 그냥 유행어를 만드는 것과는 다르다. 그 개념은 논리적 기반을 토대로 지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단어를 유행할 때만 쓰는 것이 아니고 '정의된 개념'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보통 가져다 쓰는 개념들은 그렇지 않다. 유행에 맞춰서 '믹스'한 개념들이 많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얇은 논리 위에 불안정하게 가져다 쓰는 경우도 많다. 결국 그렇게 논리 기반이 약한 개념들을 활용하다 보면 자기모순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논리적이지 않은 것은 창의적일 수가 없다.
물론 콘텐츠 제작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행위다. 콘텐츠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트렌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유행하는 표현이나 단어들이 존재하고, 그에 맞는 콘텐츠들이 활용된다. '노마드'는 그런 면에서 아주 훌륭하게 콘텐츠에 쓰일 수 있었다. 특히 얽매이기 싫어하는 현대인들의 특징과 엮여서 그들을 묘하게 자극할 수 있었다. 해외여행이 그리 어렵지 않은 세대에 평생직장 같은 개념도 없는 세대다. 그들에게 '유목민'같은 의미는 그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아주 좋다.
하지만 그래서 '유행을 타는 콘텐츠'는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밀려나고 가치가 없어진다. 그때 일시적으로 트렌드에 올라탈 순 있지만 장기적인 가치는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콘텐츠 자체가 과잉생산의 시대라서 조금이라도 오래된 콘텐츠들은 빠른 감가상각을 겪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방식이 맞는 면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책을 쓰고, 그럼에도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될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계속 '노마드'의 사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노마드'라는 말로 무분별하게 포장된 '고립된 방랑자들'이 문제다. 예전에 커뮤니티에 대해서도 잠시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커뮤니티는 그들만의 특성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다른 커뮤니티로 옮기는 것이 어렵나 하면 그건 아니다. 디지털 세상은 얼마든지 옮겨 다닐 수 있다. 다만 말 그대로 옮겨 다닐 뿐이지 그들이 그 안에서 자신들의 발전을 도모하고 창조적인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예전의 글에서도 몇 번 다뤘지만 지금 세대는 쉽게 연결되지만 그만큼 쉽게 연결이 끊어지는 세대다.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디든 가서 살 수도 있고, 국가, 지역, 학교, 심지어는 가족과의 연을 끊어내는 것도 쉽다. 쉽게 끊어낼 수 있는 만큼 외롭다. 그래서 애매모호하고 아슬아슬한 관계에 집중한다. 예전에는 '연예인'이라는 정말 소수의 직종만이 '타인의 관심'을 기반으로 돈을 벌고 살아갔다. 지금은 '유튜버', '인플루언서', 'BJ'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관심'을 기반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 기반은 결국 '관계'에 있고, 그건 '좋아요'나 '구독', '알림 설정' 같은 버튼 몇 번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다. 사실 가깝다면 가깝지만 정말 아슬아슬한 관계다. 맺어지는 게 쉬운 만큼 끊어지기도 쉬운 관계니까. 그래서 '노마드'들은 자신의 관심과 트렌드, 그리고 짧은 애정에 맞춰서 흘러 다닌다.
나도 사회학이나 철학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짧은 배움이지만 적어도 그들이 의미했던 '노마드'와 지금 무분별하게 통용되는 '노마드'가 다르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물론 '노마드'라는 단어에 특허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이다. '자유'라는 말을 누구나 쓸 수 있듯이. 또는 북한에서도 '민주주의'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그와 반대로 '떠돌아다니는 사람' 즉, 방랑자의 '노마드'라면 지금 이 시대에 가장 맞는 키워드다. 그렇게 긍정적인 의미가 아닐 뿐이다. 대부분의 개인은 정착하지 못한다. 좋은 말로 하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당장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것들이 계속 무너져 내리고 있으니까. 그래서 코인과 주식, 부동산 같은 투기가 성행하고, 빚을 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시대이기에 우리는 대다수가 '노마드'가 되어버렸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예전처럼 모든 커리어가 한 군데 집중된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자신이 원해서, 창조적인 삶을 살기 위해, 앎을 위해서가 아닐 뿐이다. 살기 위한 발버둥으로 '노마드'로 내몰리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포기하거나 한탕을 노리지 않고, 부정과 탐욕의 삶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다. 더 창조적이고 유기적인 앎을 위해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영화의 명대사를 바치고 싶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