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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인 Dec 09. 2022

젊어서 '고생'을 사려면

시간에는 대출도 할부도 없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일이 가득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우리에게 와닿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일들은 우리와 상관없이 돌아가니까요. 매일 놀고 싶고 '좋아하는 것'들만 하면서 보내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민을 합니다. 그러한 것들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죠.










 우리 앞에 놓이게 되는 일들은 사실 크게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습니다. 보통 3종류 안에 들어있습니다. 


 하나는 "하고 싶은 일"입니다. 


 진로교육이나 여러 가지 삶의 경험들을 거치면서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갈고닦습니다. 실제로 당장 하고 싶은 일들은 대부분 그보다 원초적입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거나 잠이 오면 잠을 자는 것처럼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일들도 일종의 '하고 싶은 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하는 하고 싶은 일들은 그런 '하지 않으면 큰일 날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릴 때는 대부분 공부가 정말 '하기 싫은 일'중에 하나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반면 나가서 노는 일들은 누구나 하고 싶어 하죠. 아이들에게 휴대폰이나 태블릿을 주면 아이들은 쉽게 끊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온종일 하고 싶은 게 탭으로 영상을 보고 싶은 것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노는 것도 하고 싶습니다. 밖에 나가서 노는 것도 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정리를 하는 시간을 싫어하는 이유는 안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시간이 없는데 정리하는 것은 그 '하고 싶은 일'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도 쭉 우리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습니다. 웃기게도 나이가 먹으면 하고 싶어지는 일 중 하나가 '공부'가 되는 사람도 많습니다. 우리는 보통 하라고 주어진 일보다 하지 말라는 일들이나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하고 싶을 때가 더 많기 때문이죠. '터부'시 되는 것들에 대한 욕망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고민해 왔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죠. 




 다른 하나는 "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2가지에서 시간이 꽉 차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사실 '하고 싶은 일'만으로도 시간이 이미 모자란 사람이 더 많습니다. 물론 의외로 '할 일이 없다'라고 느끼는 사람도 꽤나 많습니다. 이런 해야 하는 일들은 대부분 강제성의 여부에 따라서 갈립니다. 


 위에 나왔던 '하고 싶은 일'에서 배가 고프면 먹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먹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더 맛있는 것을 먹는다던가 요리라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하고 싶은 일'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배가 고파서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먹는 것은 '해야 하는 일'에 해당합니다. 그 경계가 아주 명확하지는 않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흔히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의 이야기가 존재하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해야만 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인가의 문제를 돌려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대부분의 "해야 하는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갑니다. 아이들 때 착각하는 것은 그때 '해야 하는 일'이 많다고 느끼는 점입니다. 우리는 공부하라는 말도 싫었고, 씻으라는 이야기나 이것저것 시키는 심부름도 싫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들은 아니었으니까요. 그 시간에 게임도 하고 친구들이랑 놀고 만화책도 보고 하고 싶은 게 엄청 많은데 자꾸 '해야 하는 일'들을 시키는 것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안 씻으면 병에 걸리고, 이빨을 안 닦으면 이빨이 썩겠지만 그 당시 우리에게 그건 그렇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못했죠. 


 결국 나이를 먹고 성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게 될 줄 아는데 대부분 여기서 당황을 하게 됩니다. 성인이라는 건 내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고 그건 결국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난다는 이야기거든요. 더 이상 누군가의 잔소리가 줄지만 그 책임은 대신에 고스란히 본인한테 돌아옵니다. '해야 하는 일'들을 안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생활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리죠. 그래서 '해야 하는 일'들을 먼저 하다 보면 어른이 됐는데 왜 나는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됩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일단 할 수 있는 일을 분리해야 합니다. '이미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일'은 다릅니다.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부분의 국민들은 아주 낮을지라도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낮은 가능성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보통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할 수 있거나 충분한 확률을 가지고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따졌을 때 할 수 없는 일들은 너무 많습니다. 대부분의 하고 싶은 일 중에서 할 수 없는 일은 엄청난 비중을 차지합니다. 시간은 해야 하는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로 이미 가득 차다 못해서 일부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야 하는 일 중에서, 그리고 하고 싶은 일 중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합니다. 


 내가 유튜버가 되고 싶다고 해서 유튜버가 그냥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유튜버가 되기 위해서 먼저 알아보거나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일단 도전해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그 시간에 우리는 다른 '해야 하는 일'들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턱대고 달려들기보다 차근차근할 수 있는 것들을 늘려갑니다. 왜 할 수 있는 일이 중요한지를 이야기해 보자면 그런 '조건'들에 따라서 갈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수요'가 있고 '공급'이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높은 영상들을 보다 보면 공통점을 느낀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튜브는 알고리즘이 작용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보는 영상은 대부분 여러분이 한 번이라도 흥미를 느꼈거나 검색했던 종류의 영상들입니다. 다른 종류의 영상은 애초에 추천되지 않아서 안 뜨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영상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자극적인 영상'들을 많이 만드는 이유는 그러한 영상들이 조회수가 높기 때문이겠죠. 평균적으로 조회수가 높은 영상 중 하나는 '룩북'이라는 영상인데, 문제는 기본적인 허들이 높습니다. 40대 배 나온 아저씨의 룩북이 수요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게 '룩북'이 기본적으로 조회수가 높은 것의 영향을 받기는 힘들 것입니다.


 특히 '하고 싶은 일'들 중에 어떤 특정한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건이 필요합니다. 타고난 외모나 신체의 조건도 그중 하납니다. 물론 그걸로 자신만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괜히 패션의 완성을 외모라고 하는 게 아니겠죠. 예전에 글에서 다룬 적이 있듯이, 우리는 아름답고 예쁘고 귀여운 것을 좋아합니다. 그 자체는 어떠한 편견이나 정치적 올바름과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히 기능적인 할 수 있는 능력만의 문제는 아니고 '스테이터스' 전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스킬을 포함해서 말이죠. 




 나이가 먹고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는 '우리 나이에 그걸 해야 해?'라는 말입니다. 지금은 안 좋은 의미로 유명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든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이 있는 이유는 사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할 수 없는 일'들을 배워나가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미 할 수 있는 일들이 적기 때문이기도 했죠. 


 나이가 먹으면 할 줄 아는 것도 다 못 풀어먹고 사는데 새로운 것을 배우기는 참 힘듭니다. 특히 가족이 생기고 자기가 "꼭 해야 할 일"들이 늘어버리면 '하고 싶은 일'들은 저만치 멀어집니다. 시간의 대부분이 이미 '해야 하는 일'들에 값을 치렀기 때문이죠. 그러다 돌아보면 문득 불안해집니다. 정말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많은데 못 풀어먹는 것일까? 사실은 젊은 사람들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줄 아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의 변화 속도가 내 경험을 '감가상각' 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집니다. 












 40대 50대들은 자신들이 나이가 들면 경험에 의해서 높은 자리에 가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실제로 예전에는 그런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그리고 여전히 그런 구조로 가는 곳도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경험이 그들의 자리를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그 나이에 그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예전과는 달리 경험만이 아니라 끊임없는 발전과 공부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 단지 시간이 되고 버티다가 그 자리에 간 사람들이 윗자리에 앉게 되면 끔찍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보통 망하는 조직들이 그렇게 합니다. 


 결국 나이 든 중년층은 그동안 쌓여왔던 경험이라는 자본은 감가상각 당하고 '해야만 하는 일'들은 가족이 있으면서 늘어만 가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의 숫자가 줄어가는 위기에 빠집니다. 발버둥 치고 어떻게든 남들이 '할 수 없는' 나만이 '할 수 있는'일들이 있어야 경쟁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청년이 아니라 그 연령대가 가장 문제입니다. 경쟁력은 없어졌고 책임만 크거든요. 


 결국 시간은 항상 모자랐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도, '해야 하는 일'을 하기에도 말이죠.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이든 해야 하는 일이든 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 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걸 '배움'이라고 부르죠. 그래서 '배움에는 끝이 없다'라는 말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배우지 않는 자는 도태됩니다. 지금처럼 '무한 경쟁' 사회라면 말이죠. 그리고 그걸 위해서 또다시 시간을 지불해야 합니다. 심지어 '대출'도 '할부'도 안 되는 시간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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