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오락실은 정말 별세계였다.
50원이던 시절에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스트리트 파이터 2'를 구경하는 것도 그랬지만 100원이던 시절로 오면서 오락실은 정말 별세계가 되었다.
구경만 해도 재밌지만 직접 하는 건 더 재밌었다. 하지만 지금 말로 '잼민이' 시절에 돈이 있다면 어딨겠나. 어쩌다 생긴 100원짜리를 들고 가면 아까워서 한두 시간 구경하다가 가장 오래 할 수 있는 게임을 골라서 겨우 한판하고 나올 때가 많았다.
어느 날 친구가 오락실을 가자고 했다. 자기가 시켜주겠다고.
당연히 좋다고 따라갔다. 그리고 그 친구는 오락실에서 구석에 있는 사람들이 자주 하지 않는 오락기로 갔다. 그러더니 혹시 주인아주머니가 오는지 보라고 했다.
무슨 소린가 해서 망을 보는데 그 친구는 주머니에서 '똑딱이'를 꺼냈다. 어디 부서진 가스레인지에서 주워왔다고 했다. 똑딱 소리 한 번에 코인이 하나씩 올라가고 우리는 정말 신나게 했다. 그러면서도 혹시라도 주인아주머니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심장은 쿵쿵 뛰고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게 나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친구는 다음에도 또 같이 오자고 했지만 나는 그 뒤로 그 친구와 오락실을 가지 않았다.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우리 집에도 컴퓨터가 생겼다. 그 당시에는 부모님이 정확히 말씀 안 해주셨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막내 작은 아버지께서 사주신 거였다. 형은 안타깝게도 고등학생이 되어 자취를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컴퓨터는 내 차지가 되었다. 나는 컴퓨터로 신나게 게임을 즐겼다.
당연하지만 게임들이 전부 쉽지는 않았고, 당시 유행하던 게임들을 실력만으로 깨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 '치트'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특정 문자열을 FF 00 이런 것들을 바꿔서 값을 변경하면 게임을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치트를 해서 게임을 깨고 나면 후련한 적은 별로 없었다. 우리는 치트가 게임을 즐기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적어도 게임의 목적에 맞게 즐긴다면.
시간이 지나 온라인 게임이 생기고, 핵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핵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치트를 쓰지 않는 이유와 똑같았다. 치트를 써서 게임을 하면 일시적으로 좋을지 몰라도 결국 게임을 '규칙 안에서' 즐길 수가 없었다. 그건 공정하지 못한 게임이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핵을 쓰는 것을 비난했다. 그럼에도 핵을 쓰는 사람들은 있었다. 심지어 지금도 있다. 그 사람들은 게임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다르다. 공정한 경쟁의 승자를 원하는 것이 아닐 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게임을 진지하게 즐겨달라고 하면 게임에 왜 그리 진지하냐고 이야기들 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진지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게임은 시간을 들여서 하는 거였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나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자본들 중 유일하게 남들보다 많지도 적지도 않게 가질 수 있는 자본이었다.
어릴 때는 집에서 게임을 하다가 들키면 난리가 났기 때문에 부모님이 안 계신 시간 이외에는 게임을 할 수 없었다. 그나마도 부모님이 금방 돌아오실 것 같을 때는 안 걸리게 치울 자신이 없으면 게임을 할 수 없었다. 콘솔 게임기는 그랬다. RF 단자를 통해서 TV에 연결해야만 했기에 부모님이 갑작스레 돌아오시면 치우다 걸렸다. 그래서 나에게 게임을 하는 시간은 소중했다.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이가 먹어서 타지로 떠나게 되어서야 마음껏 게임을 하게 되었지만 시간은 여전히 소중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 생활을 하다 보면 게임을 할 시간이 모자랐다. 그렇게 겨우겨우 시간을 내서 게임을 하는데 핵을 쓰거나 '트롤'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시대는 과금의 시대다. 과금은 사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졌다.
'Pay to Win'. 돈을 쓰면 이길 수 있다. 유튜버나 BJ들은 게임에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이나 수억을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람들은 돈이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즐기는 것은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것이 불만이거나 재미없으면 안 하면 그만 아니냐고 한다.
이제 치트는 의미가 별로 없다. 치트는 혼자서 즐기는 게임들에서 쓰던 거였다. 타인과의 경쟁이 있는 게임에서의 치트는 그냥 돈이다. 돈을 많이 쓰면 충분하다.
'가챠'라는 일본어가 일본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활발하게 쓰인다. 정확히는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거지만 누구나 가챠를 알고 있다. 일종의 뽑기다. 우리가 어릴 때도 볼 수 있었던 데굴데굴 철컥하고 나오던 그 뽑기를 가챠라고 한다. 그리고 그 뽑기를 누군가는 수천만 원 수억 원을 지른다. 게임 업계는 당연히 환호성을 지른다. 감사한 고객님들이다.
나는 젊은 꼰대가 아니라 그냥 꼰대다. 나이가 먹었으니 꼰대라고 하는 건 아니다. (심지어 가챠계의 큰손 아저씨들은 보통 나보다도 더 나이가 많다) 그리고 내가 꼰대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내가 꼰대라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시절의 우리는 치트를 부끄러워했다. 그냥 실력으로 게임을 클리어하는 사람들을 더 부러워하고 인정했다.
지금의 우리는 과금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돈이 많으면 더 강하고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인생은 쭉 그런 거였으니까. 게임이 오히려 리얼한 인생의 영향을 받은 것뿐이다.
인생은 게임과는 다르다. 하지만 우리가 세금을 걷고 사회를 구성하여 복지와 법률을 통한 규제 따위를 하는 이유는 뭘까. 의무교육이 생기고, 최저임금을 보장받는 이유는 뭘까. 근로시간을 법으로 제한하려는 이유는 뭘까. 누군가에게 치트가 있다 하더라도 그 차이를 줄이기 위한 방향으로 사회를 굴린다. 아니 굴려야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지금은 입으로는 공정을 이야기하지만 누구나 그러한 차이를 그냥 받아들이거나 인정한다. 있는 사람은 '과금'을 해서 더 위로 올라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치트키'가 있다면 그걸로 '과금'을 땡기기만 하면 위로 올라가도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이 꼭 잘 살지 않는다. 과금을 하거나 줄을 잘 잡고 있으면 잘 살 수 있고, 우리는 그걸 인정하는 사회가 되었다. 황금만능주의, 물질만능주의라는 말을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플렉스를 이야기하지 과소비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이 나오는 드라마는 거의 다 망한다. 웹소설도 남주가 가난하면 안 팔리니까 안 쓴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한다.
물론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도 잘 살 수 있는 가능성은 존재한다. 쉽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