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은 어디서?
우리는 대부분 여행을 좋아한다.
지금은 누구나 해외여행을 쉽게 생각해 보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해외여행의 조건은 매우 까다로웠다.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여행은 해외여행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그 시절에도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했다.
산을 가고, 바다를 가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중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여행의 요소 중 하나는 '기차를 타는 것'이었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좋아한다.
새마을과 무궁화가 점점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SRT니 KTX니 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KTX를 '특별한 여행요소'라고 기억하게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주 인생을 레일에 비교하고는 한다.
물론 그 이외에도 수많은 것들에 비교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한번 궤도에 오르면 그 길을 쭉 따라가기를 바란다. 굳이 수많은 갈림길을 만나거나 바꾸지 않아도 목적지에, 최소한 목적지 근처를 향해서 가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레일을 답답해한다.
의외로 내 마음대로 멈추거나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공포스러운 일이다. 수많은 영화에서 열차가 공포의 클리셰로 작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대학을 나오면 의외로 정해진 레일이 있었다.
대학을 나오면 당연하다는 것처럼 취업이 되었고, 그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큰 차이가 없었다. 어디로 가든지 일을 꾸준히 하고 버티다 보면 그 회사와 함께 자신도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괜히 공무원이 비 인기 직종이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고시생들처럼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레일로 갈렸다. 시험을 통과해서 성공과 부와 권력을 누리게 되거나, 아니면 실패해서 타인보다 몇 년 이상 뒤쳐진 삶을 살거나.
그 시절에는 대학을 안 가더라도 나름의 정해진 레일이 있었다. 공장으로 갈 사람들은 공장으로 갔고, 바로 아르바이트와 일들을 전전하면서 차근차근 자리를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시절은 젊은데 일을 안 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뭐라도 하고 있었으니까.
뭐라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차피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끼리는 격차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거기다 격차가 있었다 하더라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그걸 알 수도 없었다.
인터넷이 있던 2000년대 초반, 서울에서 피시방 아르바이트가 3500원에서 4000원 정도의 시급을 받을 때 지방은 1500원에서 2000원 수준이었다. 인터넷이 있는 시대였는데도 말이다.
인생이라는 열차에서 같은 칸에 탄 사람들만 보던 사람들은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다른 모든 칸, 그리고 다른 모든 열차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는 럭셔리한 1등 객실을 타고, 누군가는 KTX와 SRT를 타는데 나만 느리게 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나만 서비스가 좋지 않은 불편한 입석 열차를 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열차에서 내리려 한다. 하지만 열차는 그렇게 쉽게 서지 않는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어떻게든 열차에 내렸을 때다.
인생이라는 레일은 생각보다 막막하다.
그나마 역에서 내렸을 때는 다행이다. 하지만 역에서 내렸다고 해서 그 역이 전부 다른 열차로 환승할 수 있는 역이 아니다. 무작정 걸어서 다른 레일이 나올 때까지 가기에는 레일을 벗어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알 수 없다.
그들이 봤던 다른 열차는 이미 처음부터 열차에 탄 사람들을 보여주지 레일을 건너거나 열차를 바꿔 타는 법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심지어 그런 법을 보여준다고 현혹하는 것들은 대부분 사기다. 그들의 원래 있던 차비와 물건을 탈탈 털어버린 뒤에 역과 역 사이의 레일에 던져버리고 유유히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게 '레일을 걷는 사람들'이 생긴다.
막상 기차에서 내려서 '레일을 걷게 된다면'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내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속도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으며 가지 못하는 것은 싫었을 거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레일에 버려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을 거다.
코인, 주식, 부동산, 수많은 방법으로 사람들은 다른 열차로 건너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렇게 건너뛴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끽해야 수많은 사람 중에 진짜로 그걸 성공한 사람은 아주 가깝지도 않은 지인에 지인의 케이스뿐인데도 말이다.
결국 그들은 그나마 있던 밑천과 기차표를 털린 채 레일에 주저앉는다. 그들은 한참이 지나 다가오는 다음 기차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이전의 열차를 보냈던 걸 후회할까. 지금이라도 다음 열차가 무궁화가 아니라 더 느린 열차라도 올라타기를 원할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그걸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KTX나 SRT를 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거기다 이미 자기와 같이 가던 사람들은 한참 가버렸으니 지금에 와서 그들보다도 늦게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느린 열차에 남은 사람들을 비웃으며 내렸던 사람이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는 거다.
그럴 때야 말로 큰 용기와 굳은 마음 가짐이 필요하다. 욕망은 쉽게 사람을 움직이지만 욕망이 사그라들면 두려움만이 남는다.
선택과 결정이라는 건 가끔씩 너무 막막하고 불안하다.
어릴 때는 답답할 때 가끔 이유 없이 기차를 타기도 했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다. 심지어 출발시간과 도착시간도 정해져 있다. 입석이 아니라면 자리도 정해져 있다. 왜 그게 그리 마음이 편했을까.
아무리 목적지와 출발시간, 자리가 결정되어 있어도 인생을 비행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해외여행과 비행기에 익숙한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인생은 여전히 레일 위다. 어떻게 얽혀 있더라도.